서락연

[서락연] 일몰

세계의 공백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은 아늑하다. 강박적으로 써 내려가던 검은 글씨들도 뭉개지듯 번져서 결국 새까맣게 변해버렸으니, 이제 그 위에 떨어진 잉크가 타인의 세계에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창조하지 못한 세계들이 뒤엉키다 숨통을 얽는 포이보스처럼 되었기에- 도망친 다프네처럼 그 어디의 월계관이 되어 나는 여기에 있다.

" ···. "

초점이 흐린 눈으로 본 창문에 해 질 녘의 해가 어지럽게 산화한다. 지고 있으나 뜨고 있음과 다르지 않은 순간의 경이로움 아래 너절한 모습으로 현상에 대한 예찬마저 버거워진 정신과 몸을 온전히 의자에 기대며 생각했다. 이대로 노을에 몸을 던져 타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차피 이 세계의 주인공은 없다. 완성도 높은 각본의 주인공처럼 살아가려 했으나, 뜻하지 않게 펜을 잡은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망쳐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야 비로소 해방이며- 또한 몰락인 것이다. 아무것도 적을 수 없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으니. 나무에서 분리된 월계관처럼 잠시 그 영광을 누리다 빛바랜 잎사귀 따위가 되어 짓밟힐 것이다. 영원한 영광이라는 것은 해피엔딩과 같아서 창조된 세계 속에서나 가능한 것. 현실은 지고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이 결국 죽고 잊히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완벽이란 것을 갈구하던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그렇게 되어버릴 것이다.

'서락연'이란 인물은 결국 서술되지 않은 세계의 공백이다.

그것을 몰라 분수에 넘치는 것을 탐했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에 이르러서야 깨달을 수 있는 지독한 진실.

그래. 일몰에 몸을 던질 용기가 없기에 그 찬란한 순간을 놓쳤고, 사무치게 두려운 밤이 찾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써 내려갔다고 생각했던 종이는 밤이 던진 물감마저 침범하지 못할 만큼 하얗다. 그곳에 있던 세계는 결국 세워지지 못하고 떠돌다 흩어졌다. 종이 위에 머무르던 신은 영겁과 같은 공백에 죽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 가련한 신을 위해 어떤 묘비를 세워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시선의 물감만 종이에 헛되이 쏟았다.

여전히 종이는 공백이다.

시선에 담긴 색도 텅 빈 공백이다.

긴긴 나날 동안 홀로 하얗게 바래다-

결국에는 한 줌 흙으로 바스러질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정말...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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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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