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Days

BETTER DAYS 03

료켄유사♀

쓈's Universe by 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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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요약 -  쿠사나기와 아이의 서포트로 유사쿠는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다.

"진심이야?"

"정말?"

아오이와 타케루가 동시에 물었다. 아마 둘이 올해 겪었던 일 중 믿기지 않기로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유사쿠는 그저 '리볼버에게 청혼했어.'만 말했는데. 유사쿠와 료켄의 긴 인연에 대해 아오이와 타케루는 들은 바가 없으니 둘이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그들에게 료켄은 넷 테러집단 '하노이의 기사'의 수장이자 하노이의 탑 사건 이후로 공투한 적이 있지만 결국 '로스트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의 아들이었다. 타케루는 직접 료켄과 싸워 아픈 감정들을 연소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급격히 친해졌다던가 호감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료켄에게 청혼을 했다. 유사쿠가. 링크 브레인즈를 구한 영웅, 플레이메이커가. 충격적이다. 다들 아무 말을 잇지 못하다가 옥상의 찬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아오이가 침착하게 물었다.

"후지키군, 어째서 청혼을 한 거야?"

"료켄과 결혼하고 싶었으니까."

"에에?"

"흠흠! 그건 당연한거지. 후지키군.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가장 궁금한건 '왜 하필 그와 결혼하고 싶은가'야."

"좋아해서."

유사쿠는 어제 내린 결론을 (딱히 그렇지 않아보이지만) 힘들게 말했다. 그저 사실을 말 하는 것 뿐인데 왜 힘든지 유사쿠는 모르지만. 유사쿠의 대답에 다시 둘은 깜짝 놀랐다. 역시 올해 겪었던 일 중 놀랍기로는 다섯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없는 유사쿠가 남을 좋아하게 되었다니, 그것도 리볼버를! 다시 옥상에는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사실 유사쿠는 둘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히 복도에서 셋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점심 시간에 옥상에서 할 이야기가 있어.'하고 속삭였다. 유사쿠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하길래 큰일이 난 줄 알고 타케루와 아오이도 점심시간에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큰일은 맞았다. 예상했던 큰일과는 다르지만 더 큰 큰일. 그 놀라움과 충격의 소용돌이에서 나오기 힘들었다. 특히 타케루가. 유사쿠를 동경하고 링크 브레인즈에서 플레이메이커의 버디로 활동하던 그이다 보니 머리에 불이 난 것 같았다. 괜히 플레임이 무척 보고 싶었다.

"이게 키쿠가 말했던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제일 싫어하는 배우와 결혼해서 무척 속상하다'는 그런거구나."

"음. 비슷하긴하네."

"저기, 유사쿠.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 녀석이 받아 들였어?"

일순 타케루의 본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의아하거나 태클을 걸지 않았다.

"료켄이 거절했어."

"아……"

"그래, 당연히 거절해야지! 그도 그럴게… 아, 어, 음…… 어어… 미안, 유사쿠."

"이해해."

"그럼 어떡할거야? 후지키군."

"그걸 잘 모르겠어."

거절한다. 유사쿠의 귀에 다시 료켄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젯밤 내내 료켄의 목소리 때문에 가슴이 아렸다. 이번에도 그러기 시작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아오이와 타케루는 이것이 잠깐 반짝하는 사랑이거나 달콤함에 헤메이는 꿈같은 사랑이 절대 아니란 예감이 들었다.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해선 유사쿠의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둘은 그렇게 눈빛을 교환하고 유사쿠의 양 옆에 가까이 붙어 앉았다. 친구처럼. 아니, 우린 너의 친구야. 너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어. 그런 뜻으로 등을 도닥였다. 온기가 유사쿠의 등을 따스하게 지탱해준다.

"유사쿠. 너희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 줄 수 있어?"

"어디서부터?"

"아주 처음부터."

유사쿠는 선뜻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만 시작하기 앞서 둘에게 사과했다. 료켄은 '코가미 키요시'의 아들로 그는 아버지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 코가미 키요시가 일으킨 비극의 피해자인 타케루와 피해자의 친구인 아오이에겐 그런 료켄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거북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놀랐던 둘에게 사과했다. 둘은 괜찮다며 다시 등을 두드려주었다. 고마워서 말 할 수 있는 한 상세히 이야기했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친구들은 유사쿠가 얼마나 료켄을 좋아하는지 실감했다. 유사쿠가 어디서 어떻게 사랑에 빠진지는 당사자도 모르지만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동시에 료켄이 어제 한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을 강하게 알 수 있었다.

이건 유사쿠의 짝사랑이 아니다. 료켄도 유사쿠를 좋아한다. 호감이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떠올리자 친구들도 가슴이 무척 아팠다.

유사쿠는 료켄이 곧 자수한다는 것을 모른다.

쿠사나기씨가 아이의 반란이 끝나고 말 해줬다. '유사쿠랑 아이에게는 리볼버가 자수한다는 얘기 하지말아줘. 리볼버 녀석이 부탁했어." 아까 타케루가 실수로 말할 뻔 했지만 굳은 표정으로 당부하던 쿠사나기씨와의 약속이니 최대한 지키고 싶었다. 전언을 들었을 당시 왜 리볼버는 유사쿠에게 알리는걸 원치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이제는 안다. 리볼버는 유사쿠가 사실을 알면 큰 충격을 받을거라 예상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받을 충격과 상처일지라도 최대한 늦혀주고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리고 싶어한다. 사건의 피해 당사자이자 링크 브레인즈의 위기를 막은 유사쿠에게 반드시 알리는 것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끝까지 숨기고 싶어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사쿠를 위한다. 무엇보다, 어제 료켄이 든 이유에는 청혼을 거절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이유가 없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혼하고 싶지 않다.' 어느 이유보다도 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유사쿠조차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이유. 상처를 주면서 거절하지만 료켄은 자신이 유사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든 걸 종합하자 도저히 료켄의 마음을 단순한 호감이나 소중함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이번 행동들은 비합리적이고 효율이 낮지만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가장 그렇지 못 할 때는 역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둘이 생각한 이유 역시 어찌보면 말이 안 되는 끼워맞추기에 가깝다. 하지만 인간이란, 인간의 감정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아오이와 타케루는 료켄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서로 사랑하는데 둘만 모르는, 서로 상처받는 그런 사랑을 하는 유사쿠가 안쓰러웠다. 마음이 어둡기가 하늘과도 같았다. 짙은 회색 빛으로 꾸덕꾸덕.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말이 없는 유사쿠를 사이에 두고 둘의 눈빛이 빠르게 오고갔다.

'자수 한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료켄이 사실은 유사쿠를 좋아한다고 말 할까?'

어느 쪽도 그렇게 좋은 방안이 아닌 것 같았다. 곧 큰 한숨과 함께 결론이 났다. 이것은 유사쿠과 료켄 둘이 풀어야 한다. 어차피 받을 상처, 어차피 받을 충격. 그것들을 덜기 위해서는 유사쿠가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한다. 그러면서 알아야 한다. 남이 깊게 참견할 일이 아니다. 쿠사나기씨도 그렇게 생각해서 더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망설이는 유사쿠의 등을 밀어 주는 거야. 자신이 료켄을 좋아한다는걸 깨닫고 다시 청혼할지 고민하는 유사쿠를 지지해주는 거야.

유사쿠에게서 많은 은혜를 입은 둘은 그렇게 결심했다. 후에 받을 상처와 충격을 같이 나눌 친구로서도. 그것이 유사쿠를 위하는 것이다.

아오이가 먼저 유사쿠의 손을 잡아주었다.

"후지키군, 이제야 알거같아. 후지키군이 얼마나 리볼버를 좋아하는지."

"……"

"그리고…… 망설이고 있는 거지? 그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지."

유사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케루도 유사쿠의 손을 잡았다.

둘의 손이 참 따뜻하다.

"물론 녀석의 의사도 중요하지. 하지만 역시 유사쿠에겐 유사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거 아닐까?"

"정말 청혼을 받아들이는건, 그건… 후지키군도 알고있겠지만 힘들거야. 그래서 더 망설이는 거고."

유사쿠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친구의 따스함에 아렸던 가슴이 많이 나아졌다.

"우선은 유사쿠 네가 마음을 전하는게 좋을 거 같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끝내 못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아도, 그게 가장 후회없고 마음이 후련할거야."

"상처는 우리와 함께 나누자. 괜찮아. 유사쿠."

용기를 얻은 유사쿠의 눈에 맑고 굳센 빛이 감돌았다. 마치 따스한 햇빛이 유사쿠를 비추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고마워 손을 꼭 잡았다.

말하는 거야.

좋아한다고.

결혼하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고.

결심한 유사쿠가 계단으로 힘차게 달려나갔다.

**

"리볼버님, 말씀드리기 죄송하오나 로그아웃 하셔야 할 듯 합니다."

"무슨 일이지?"

네트워크 속 꽁꽁 숨겨진 하노이의 아지트에서 자료들을 승인하던 리볼버에게 스펙터가 매우 송구스러워하며 로그아웃을 권했다. 물론 지나치게 넷에 오래 있으면 육체에 좋지 않기 때문에 서로 로그아웃을 권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곤란해하는 스펙터의 모습은 흔치 않았다. 무언가 매우 곤란한 일이 발생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후지키 유사쿠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 정문은 분명 닫혀있을텐데 넘어서 들어온건가? 그건 됐고…… 후지키 유사쿠, 어제 그렇게 거절했는데 또 오다니……"

올 것을 예상해서 아주 정문을 닫아버렸는데 정말 숙적에 걸맞은 끈기다. 리볼버는 혀를 찼다. 그런 점도 좋지만 이럴때에는 힘겹기 그지없다. 되도록 유사쿠와 만나고 싶지 않으니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이 없다. 알아서 보내라고 했다.

"네, 물론 그리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듣질 않아서 문을 걸어잠그고 왔습니다."

"그래. 그렇게 내버려두면 눈치를 봐서 돌아가겠지."

"……리볼버님."

료켄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 알면서도 그가 직접 내려가 대응하길 권한 이유가 있었다.

"5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데도."

"하아……"

해도해도 너무한 끈기다. 유사쿠의 끈기에 여러 번 고생했던지라 잘 아는 편인데도 이번엔 정말 두 손 들었다. 서둘러 로그아웃했다. 현실에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비가 세차게 오기 시작했다는 알림은 받았다. 그게 5시간 정도 전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줄곧 비가 내린 셈이었고, 스펙터가 무시했던 시간까지 합하면 거진 반나절을 밖에서 서 있었다는 뜻이었다. 가을이 겨울로 바뀌어가는 시기, 낮조차 바람이 서늘하고 비는 무척 차갑다. 우산을 쓰고 있겠지만 밖의 한기는 오래 견디기 힘들 것이다. 급한 마음으로 내려가 벌컥 문을 열었다. 갑자기 열린 문에도 놀라지 않은 듯한 유사쿠와 눈이 마주쳤다. 해는 이미 졌고 도시의 불빛이 구름 속에 산란되지 않을 만큼 어두운 하늘 탓에 평소보다 더욱 어둡지만 유사쿠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똑똑히 보였다. 놀랍게도 유사쿠는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손에는 가방도 우산도 없이 부케만 들려있었다. 아주 푹 젖은 유사쿠의 입에서 작은 입김이 나왔다.

"료켄. 나…"

"바보같이!"

료켄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고함에 놀랐는지 유사쿠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똑바로 마주보던 눈동자가 옆으로 슬쩍 비켰다. 그 모습이 미안했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 속상했다. 유사쿠가 이렇게 추운 빗속에서 오래 서있던 것도, 그런 행동을 한 원인이 분명 자신이라는 것도. 낮고 거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쳐버렸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돌아갔어야지! 너도 내가 열어주지 않을거라 생각했을 텐데! 뭐하러 미련하게 계속 서 있던 거냐!"

"비는 상관없어. 언젠가 열어줄 때까지 서있을 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걸 미련하다고-"

"그래도 방금, 네가 문을 열어줬잖아. 오히려 내 예상보다 빠른데?"

"……"

유사쿠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료켄은 꽉 잡고있던 문의 손잡이를 놓쳤다. 유사쿠는 아무것도 의도하거나 노리지 않았지만 료켄은 하나하나 반응하고 있었다. 냉정을 잃고 문을 연 것도, 잠시 사랑에 뽁 빠진 것도. 괴롭다. 얼른 보내야한다. 아무 우산이나 꺼내주고 보내려 했지만 그때 유사쿠의 아주 작은 콜록 소리가 들렸다. 료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유사쿠의 손목을 붙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잡힌 살이 매우 차갑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집 안은 은은하게 간접등만 켜져있었지만 멀리서 지켜보던 스펙터가 손짓하자 금방 밝아졌다. 조명이 켜져 양말이 남긴 흙탕물 발자국이나 옷에서 후드득 떨어진 빗물들이 선명해도 료켄은 신경쓰지 않고 성큼성큼 욕실로 직행해 유사쿠를 밀어넣었다.

"당장 씻어. 옷은 건조 시켜 줄 테니 저쪽 바구니에 벗어 놔. 속옷까지. 수건은 이쪽이다. 맘대로 써."

유사쿠가 대답하기 전에 부케를 가져가며 욕실 문을 쾅 닫았다.

료켄은 부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젖은 손을 괴로운 가슴에 얹었다.

결국 유사쿠를 집 안까지 들였다. 그 날까지 접촉하지 않기로 결심했건만. 부케를 보아하니 또 청혼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유사쿠가 청혼하는 것도 괴롭고 그런 유사쿠에게, 사랑하는 유사쿠에게 험한 말로 상처를 주며 내쫓아야 하는 것도 괴롭다. 아니다. 나는 결심했다. 유사쿠와 떨어져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저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렸다. 내일 예보로는 맑다는데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나쁘다.

번쩍, 너머에 번개가 쳤다.

창문에 비친 료켄의 가슴에 창이 박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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