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카구] 여름의 부정맥
제가 둘이 사귀는 걸 똑똑히 봤슈
여름의 쨍쨍한 햇빛이 카부키쵸를 내리쬐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무더위는 금세 숨을 턱 막히게 만들고 이글거리는 바닥 위를 걷기 싫을 의욕을 잃어버리기 딱 좋은 날이었다. 그런 무더위 속에 여기 의욕을 잃은 두 경찰이 있었다.
경단 가게 앞에 앉아 정겨우면서 귀에 거슬리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눈 앞에 있는 여름의 빛을 쫘악 머금고 있는 거대한 나무를 풍경을 삼고, 달짝찌근한 경단을 입 안에서 열심히 굴리고 있는 이 둘은 진선조의 오키타 소고와 야마자키 사가루 되겠다.
오키타와 야마자키는 덥고 불편한 진선조 겉옷을 벗어, 소고는 무릎 위에, 야마자키는 자신의 오른쪽에 놓고 오늘 같은 날에 순찰을 시킨 부장 히지카타를 열심히 욕하고 있었다. 야마자키는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에 단팥빵을 안 먹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오키타는 히지카타는 더위에 쪄 죽으라는 비슷한 말을 반복하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햇살이 참으로 눈부신 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분홍색 경단을 쏙 하나 빼 입안에 넣으며 소고가 생각했다. 소고가 올려다 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방해물 없이 쏟아지는 햇빛이 얄상궂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햇살에 소고는 문득 누군가를 떠올린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어슴프레한 느낌에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한 심장에 그는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시끄러운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소고가 경단을 다 먹은 빈 작대기를 내려놓으며 야마자키에게 말을 툭 뱉었다.
"어이, 야마자키. 요즘 나 심장이 정신없이 뛰는데 이거 부정맥이겠지?"
갑작스런 오키타 대장의 말에 야마자키는 먹던 경단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고 말았다. 야마자키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더듬거리며 다시 되물었다.
"네? 심장이 정신없이 뛴다고요?"
"어, 커피를 10잔은 들이킨 것처럼 뛰어."
"그거 정말 이상하네요. 대장의 심장은 돌덩이인줄 알았는데."
"무슨 뜻이냐."
"아, 아뇨! 아무것도!"
야마자키가 깜짝 놀라며 양손을 급히 저었다.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야마자키가 생각하는 소고의 이미지가 어떤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자꾸 뛰면 정신없을 텐데 순찰 끝나고 그늘 아래서 쉬는 건 어때요? 요즘 더워서 그런 걸수도 있잖아요."
소고는 야마자키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평소에 달리 조금 멍해보이는 눈으로 알 수 없는 먼 곳을 바라보더니 자켓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가... 그럼 부탁한다 야마자키."
자켓을 어깨에 걸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단 가게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고의 뒷모습을 보며 야마자키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엣, 잠깐만요 오키타 대장! 뭡니까 모든 걸 다 저한테 떠맡기는 그 말은! 순찰 안 돌아요!?"
"환자는 쉬어야하는 거야."
야마자키의 쨍알쨍알한 목소리에 동요하는 기색 하나 없이 소고는 그대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
소고는 한참을 걷다가 한적한 공원에 다다랐다. 야마자키한테 쉰다고는 했지만 마땅히 쉴 장소를 못 찾아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걸어다녔다. 소고의 이마에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소고는 이마에 있는 땀을 소매로 한 번 슥 닦는데 순간 눈 앞이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사우나에 마실 것 하나 없이 2시간 동안 불가마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아니, 아직도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문득 그의 눈에 푸른 하늘로 힘차게 가지를 뻣고 있는 나무를 발견했다. 푸른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그늘이 참 시원해보였다. 소고는 고민하지도 않고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나무 그늘로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시원해지는 것 같았고, 몸과 얼굴이 식어가기 시작하자 졸음이 쏟아져왔다. 소고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풀밭 위로 편하게 다리를 뻗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선선한 바람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그 공간엔 자기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을 깨는 것은 그의 심장소리였다. 나무 그늘로 들어가 쉬려고 하는 동안에도 심장은 시끄럽게 뛰고 있었다. 그에겐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 만큼이나 거슬렸다.
'심장이 시끄러워서 잘 수도 없네...'
이렇게 지쳤고, 눈꺼풀도 무거웠는데 도저히 편안히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심장소리를 계속 나무라며 필사적으로 자려고 했다.
서서히 흐려져가는 그의 의식 속에서 그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목소리의 주인인 여자는 새하얀 배경에서 그에게 부드럽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술이 선명하게 보이며 다정한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자장가처럼 울렸다.
'소고 왜 그러니? 잠이 안 와? 그럼 누나랑 같이 잘까? 이리 와 소고.'
시끄러운 심장소리가 점차 자자들며, 소고는 깊고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사다하루, 왜 그러냐 해?"
소고가 잠들고 30분 뒤, 소고가 자고 있는 나무 옆의 산책길을 걷고 있던 카구라가 사다하루에게 물었다. 사다하루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코를 킁킁거리며 무언가를 찾으며 제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다하루의 얼굴을 빤히 보던 카구라는 거대한 사다하루 꼬리 뒤에서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카구라는 익숙한 누군가를 확인하기 위해 사다하루의 옆으로 걸어가며 고개를 뺐다. 카구라는 곧 익숙한 누군가가 그다지 보고 싶은 사디스트 왕자 소고인 것을 알았다. 카구라는 사다하루를 길가 옆에 잠시 있으라고 하곤 소고가 있는 나무까지 걸어갔다.
카구라가 소고의 코앞까지 왔는데도 소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곤히 잠에 빠져있었다. 소고의 자고 있는 얼굴은 얄밉기 그지 없었다. 이 자고 있으니 멀쩡해보이는 꼬맹이의 고운 얼굴선과 곱게 감겨있는 긴 속눈썹을 보고 있으니 속이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속이 시꺼먼 꼬맹이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분명했다.
"망할 사디 왜 여기서 자고 있냐 해? 점심 산책에 방해다 해."
카구라는 소고의 뺨을 꾹꾹 찔렀지만 소고는 카구라의 손가락에 맞춰 고개만 움직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이~ 사디~ 세금도둑~ 일어나라 해~"
카구라가 소고의 귓가에 대고 말했지만 귀마개로 끼고 있는 건지 반응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귀마개나 이어폰은 끼고 있지 않았다. 평소같으면 일어나고 카구라한테 독설을 퍽퍽 날리고도 남을 녀석이 곤히 자고만 있으니 이 녀석 유체이탈이라도 하고 있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카구라는 무언가가 번뜩인 얼굴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매직을 꺼내 소고의 얼굴에 들이댔다. 얼굴도 하얀 게 검은색 매직으로 낙서하기 딱 좋은 도화지처럼 보였다.
"이건 자고 있는 사디가 나쁜거다 해. 적한테 자는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되는 거다 해."
카구라가 웃음을 참으며 소고의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여기저기에 글자를 썼다. 소고의 얼굴은 어느새 카구라의 낙서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카구라는 고소하다는 얼굴로 끽끽거리며 너무 웃음을 참아서인지 얼굴이 호빵처럼 부풀어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인 이마에 결정타를 남기려 매직을 가져가는데 소고의 땀에 닿은 매직이 검은 물로 흘러내렸다. 카구라의 동그래진 눈으로 매직과 소고의 얼굴을 번갈아봤다. 매직을 확인해보니 수성이라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카구라는 그것보다 소고의 뺨에 맺혀 떨어지고 있는 검은 물에 시선이 갔다. 차가운 땀방울이 수성매직에 닿아 더 선명하게 땀자국이 흐르는 자국이 보였다. 자국이 남은 얼굴에 검은선은 장댓비가 내린 거 같기도 했고, 선명한 골짜기가 파인 거 같기도 했다. 카구라의 복잡한 생각에 멍해진 눈동자가 그의 눈꺼풀에 닿았을 때,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 하나가 그의 뺨을 타고 풀 밭 위로 떨어졌다.
"........"
카구라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오늘따라 더 치와와같네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그의 이마에 매직을 가져갔다.
***
해가 뉘엿뉘엿 카부키쵸에 선명한 빛을 마지막으로 깔며 사그라져들고 있었다. 소고의 눈동자에 노을빛이 들어와 천천히 물들어갔다. 그가 마지막까지 눈부신 태양을 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머리야... 몇시간을 잔 거야."
아직 잠에서 들 깬 목소리로 시간을 가늠하며 겉옷을 챙기고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적어도 2시간~3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밖에서 그것도 사람도 없는 공원에서 3시간이나 자다니, 목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네, 라고 생각하며 그가 사람 없는 산책로로 걸어갔다.
"며칠 잠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그가 천천히 기지개를 피며 오래만에 푹 잔 거 같은 느낌을 만끽했다. 이렇게 푹 잔 게 얼마만인지, 용케도 안 죽었네를 여러번 생각하며 진선조로 돌아가려는데 손에 검은 무언가가 묻은 것을 발견했다.
"....... 뭐야 이거."
그는 좀 전에 햇빛을 가릴 때 손에 묻은 것이라 추측하며 다시 한 번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손가락에 알 수 없는 글자가 묻어나왔다. 그 때 엄마랑 지나가던 아이가 소고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소고는 혹시나 하며 근처에 있는 분수대에 얼굴을 비쳐봤다.
소고의 예상대로 그의 얼굴은 수염과 흉터가 가득한 아저씨가 되어있었고 얼굴에 한자가 조금씩 틀린 글자가 가득했다. 소고의 얼굴에 열을 받으며 그 한자가 틀린 글을 보면서 누군지 범인을 바로 예상했다.
"망할 차이나 여자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소고가 살기가 담긴 눈동자를 번뜩이며 입꼬리를 섬뜩하게 올렸다.
소고는 분숫물로 세수를 하며 매직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망할 도S 죽어라.'
'못생긴 치와와.'
'이런 곳에서 자다간 이마에 구멍 뚫린다.'
'세금 도둑 여기서 잔대요.'
삐뚤빼뚤, 자신의 얼굴에 낙서를 하는 카구라의 얼굴이 떠오르자 소고는 울컥하고 속이 올라오는것 같았다. 소고는 마지막 글자를 지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는 동안 해가 거의 다 져갔지만 땅바닥에선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소고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마에서 팔을 내린 그 순간, 팔에 검은 매직이 잔뜩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소고는 혹시 하며 다시 분수에 얼굴을 비춰보며 앞머리를 올려보았다.
'...마.'
마지막 글자가 그의 이마에 적혀있었지만 땀에 다 지워져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고의 눈빛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아까 손바닥에 봤던 글자와 팔에 찍혀 뭉개진 글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글자의 조각들이 맞춰지자 심장이 다시 시끄럽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 시끄러..."
벌게진 얼굴은 열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애꿎은 부정맥만 그가 탓했다.
이 밑은... 보너스 글... 대충 대사만 보고 상황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오, 도S 또 여기서 자고 있다 해. 사다하루 여기 있어."
"나쁜 치와와한테 검은 수염 벌을 내려야-"
"잡았다. 경찰 얼굴에 낙서한 놈."
"뭐뭐뭐야! 치와와! 일어나 있었냐 해!?"
"같은 수법에 두 번 걸릴 줄 아냐. 역시 너였군. 차이나."
"무무슨 소리냐 해! 난 오늘 널 처음 봤다 해!"
"어제 근처에 다시마 초절임이 잔뜩 떨어져있었다."
"요즘 꼬맹이들은 모르냐 해~? 다시마 초절임은 올마이티 아이템이다 해."
"사디, 너 얼굴이 빨갛다 해. 너무 더워서 익어버렸냐 해?"
"....... 그래, 요즘 너무 더워서 심장이 말썽이라고."
"심장?"
"직접 들어봐."
"뭐, 뭐하는 짓이-"
"진짜 정신없이 뛴다 해. 너 많이 아프구나 해."
"더 빨라졌다 해!"
"방금 뭔가가 정수리에 닿았다 해."
"낙엽이야."
"다음에 또 내 얼굴에 낙서하면 감방에 쳐넣을 줄 알아라. 차이나."
"카부키쵸 여왕님의 예술작품이다 해!"
'아, 너무 더워서 심장이 망가진 게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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