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의 이야기

쥘 린드버그와 다이애나 샬럿 앨봄

가는 봄이여,

새는 울고

물고기의 눈엔 눈물….

소재주의: 부부 간의 불화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간이동으로 나타난 인영은 비틀거리며 현관 앞의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오른다. 쥘 딜루티 린드버그다. 모자는 간 데 없고 얼굴은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려있다.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꺼낸 열쇠를 구멍에 꽂고 돌리다가 헛손질만 두 번. 문을 다급히 열고 들어가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게 또 한 번. 도합 세 번의 실수 후에야 거실로 들이닥치는데 성공한 쥘이 언성을 높여 외친다. 흡사 발악하는 어조다. “누나. 앤 누나!”

앤Anne이라 불린 여자의 이름은 다이애나 샬롯 린드버그로, 다름아닌 그의 아내다. 잘 준비를 하다 나왔음에도 꼿꼿한 장신엔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여자는 2층 층계참에 서서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드리운 채로 남편을 본다. 이내 계단을 한 발 한 발 걸어 내려오기 시작한다. 하얀 비단으로 짜여진 잠옷 치마의 천이 발치를 스칠 때마다 나는 소리 외엔 완벽하게 조용하다.

그에 반해 쥘은 허둥거린다. 당혹하는 것이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잘 보일 지경이다. 지팡이를 휘두르고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환 마법으로 갖가지 물건을 불러들인다. 거실 한가운데 펼쳐진 짐가방 안으로 옷이며 갈레온 주머니, 보석과 깃펜과 양피지가 빨려들어간다. 얼떨결에 불러낸 꿀 바른 파이가 옷과 함께 처박히는 것을 간신히 수비해낸 손이 온통 끈적해진다. 과자 가루가 흩어지며 깨끗한 거실 바닥이 엉망이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이애나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간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우린 지금 당장 떠나야 해요. 옷 갈아입고, 필요한 걸 빨리 챙기세요. 머리를 염색하는 것도 좋겠네요. 제가 갈색 머리 할게요. 앤 누나는 어떤 거 할래요? 아, 분재가 시들하네. 이거 잊지 말고 물 줘야 한다니깐….”

가져가지도 못할 화분 앞에서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남편의 모습 앞에 다이애나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그의 등이 한층 반듯해진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나 보죠.”

“네. 말도 마세요, 호크룩스가 파괴되었고 마왕님이 엄청나게 화가 나셨어요. 근데 내가 보기엔 못 이기거든요. 목숨이 하나뿐이잖아. 불사조 기사단은 이를 지독하게 갈았고,”

“그리고 당신은 전황이 바뀌자마자 모르가나 가민에게 등을 돌리고 비겁자처럼 도망치려 하는군요.”

아내의 입술에서 마왕의 이름이 경칭 없이 반듯하게 떨어진다. 쥘 린드버그는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오른팔을 부여잡는다. 그는 당혹한 시선을 보내며 따져 묻는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상황 파악 했으면 빨리 짐이나-”

“가세요.”

“…네?”

“당신 혼자 가시라고요, 쥘. 나는 안 가요.”

다이애나는 몸을 돌려 사뿐히 분재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화분을 옆으로 밀쳐낸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화분이 깨지면서 흙과 함께 도자기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쥘은 경악한 얼굴로 바닥에 쏟아진, 지금껏 애지중지하던 소형 나무를 바라보다 고개를 든다. 다이애나는 막 소파에 걸터앉고 있다. 탁자에 발을 얹더니 아무것도 상관 없다는 무심한 얼굴로 꺼내문 연초에 불을 붙인다. 그 모습을 보자 맥이 풀려 더는 항변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한참이나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던 쥘이 간신히 찾아낸 질문이란 이런 것이다.

“…누나가 언제부터 담배를 폈어요?”

“당신은 정말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다이애나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떠오른다. 쥘은 아무런 답도 내놓지 못한다. 여인은 두 손가락 사이에 연초를 끼우고 천장을 향해 연기를 길게 흘려낸다.

“이 집은 나의 공들인 작품이에요. 계단의 구조, 걸려있는 미술품, 창틀을 통해 보이는 정원까지…. 어느 것 하나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저 지긋지긋한 분재만 아니었으면 완벽했고요. 난 이 집을 떠나지 않겠어요. 기사단원들이 내 목을 치러 오면 당당히 고개를 들고 문을 열어줄 거예요. 이곳은 내 자랑이니까.”

“정신이 나갔군요.”

“마음대로 생각해요. 어차피 우린 서로를 사랑해서 함께한 게 아니잖아요, 쥘.”

“…….”

“솔직히 말해서, 난 당신이 왜 날 데리러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다이애나는 미소를 지으며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의도는 명백하다. 보옥처럼 빛나는 새까만 눈이 스무 해 가까이 함께한 남편의 얼굴 위에 고정된다. 이 지경이 되고 나니 저 멍청한 얼굴이 다소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그는 다시금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는다. 쥘을 향한 짧은 턱짓.

“뭐 해요? 이혼 재판을 기다릴 여유라도 있나 보죠? 가요. 떠나라고요.”

쥘 린드버그는 몸을 부들부들 떤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그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왼손 약지의 반지를 빼내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짐가방을 집어든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현관으로 향한다. 다이애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자코 지켜본다. 잠시 멈춰선 쥘은 뒤돌아 서더니 무언가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표정을 한다. 다이애나는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쓰고,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뒤 떠날 뿐이다.

다이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여인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중얼거린다.

“이 비겁한 사람! 자기가 저지른 일을 책임질 용기도, 그간 쌓아온 부를 끌어안고 함께 침몰할 각오도 없지. 당신같은 인간은 아마 평생 행복하지 못할 거야. 잘 도망칠 수 있다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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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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