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982

“피고인 쥘 딜루티 린드버그,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의 행적은 임페리우스 저주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까?”

쥘 린드버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아닙니다.”

쥘 딜루티 린드버그는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붙잡혀 영국 마법부로 신변이 인도되었고 이어진 재판에서 아즈카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채 반 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평생 써오던 소설처럼 화해나 용서를 논하는 글은 아니었고, 대중을 겨냥한 프로파간다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번잡하고 모순적이고 어리석고 비겁한 인간에 대한 소설.

존재하나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을 축으로 삼은 군상극이었다.

자라지 못한 20세기의 소년, 다리에 꼬집은 흉이 남아있는 어린아이,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갈라져야 했던 소녀.

책의 제목은 뒤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소설을 쓰는 과정은 자신의 뼈를 깎아내는 과정처럼 지난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렇기에 디멘터의 안개에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쓰던 중 막히면 일주일 가까이 벽을 보고 미동도 없이 누워있기도 했으며 때로 좌절해 종이를 찢어버리는 일도 많았다.

아문지 오래인 손바닥의 화상으로 괴로워하는 때도 더러 있었다.

책을 완성하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동안 그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설은 53만 982개의 단어와

1463 페이지로 이루어졌으며

21년의 집필 끝에 출간되었다.

그는 면회를 온 친구에게 손때가 묻어 너덜거리는 원고 뭉치를 건네며 ‘불태워도 좋고 발표해도 좋으니 만일 수익이 난다면 전직 기사단원끼리 술 퍼마시는데 쓰든 더 보람찬 일에 쓰든 알아서’ 하라고 부탁했다. 저자의 이름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명은 불필요하며 그냥 쥘 딜루티 린드버그라는 이름으로 내달라고 말했다. 역사가 자신을 심판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 저작은 쥘 린드버그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 중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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