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린드버그와 악의에 관한 단상 (上)

진영공개로그

열람하기에 앞서: ‘현실에서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논리: 파이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군중을 선동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해당 소재에 민감하실 경우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기억은 제가 호그와트에 갓 입학한 신입생일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창이었던 무도회가 별안간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호그스미드를 습격했다나요. 결국 학생들은 전원 연회장에 모였습니다. 바닥에는 주인 잃은 편지들이 낱장으로 굴러다녔습니다. 저희 기숙사를 담당해야 할 우드워드 교수님께서 호그스미드 전투에 합류하시는 바람에 저학년들을 돌볼 사람이 없었어요. 대신에 실버하트 선배와 미슈스티나 선배께서 저희를 진정시켜 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저희는 지시대로 옹기종기 임시 텐트 안에 모여앉아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어요. 죽음을 먹는 자들이 호그와트 안으로 밀려들 게 걱정되었거든요. 그때 린드버그 선배가 텐트의 문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왔어요. 다들 잘 있나요, 많이 힘들죠, 부터 시작해서, 별 일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주무시기 전에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게요. 그렇게 둥글게 웃던 금색 눈동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하늘의 금빛 별이 된 살라맨더에 관한 이야기. 종이를 모으는 족제비 ‘지글’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선배가 해준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천둥 소리를, 바깥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을 전쟁을 잊을 수 있었고, 밤마다 잠에 들 수 있었어요. 연회장에 갇혀 있었던 이틀 간의 기억이 아주 최악으로 남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졸업 학년이 되었죠.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고 했어요. 린드버그 선배가 소설을 출간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마법 세계 전체가 그의 작품에 열광했습니다. 그건 저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책이 재밌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 선배의 다정에 세상이 응답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선배를 작가로서 응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린드버그 선배가 강연을 하러 온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저는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습니다. 서로를 향한 의심과 증오가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선배의 강연은 무언가 다를 줄 알았나 봅니다. 돌이켜 보면 이상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모임의 장소가 순수혈통주의자 친구의 별채에 딸린 온실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 모여있는 것은 주로 슬리데린 학생들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강연을 하기 위해 들어온 린드버그 선배가 느긋한 웃음과 상아색 모피 코트를 걸치고 있다는 점까지. 그러나 저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그저 앉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 아버지께서 순수혈통이셨기 때문에 혼혈인 제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철근과 유리로 지어진 건물은 빛으로 충만했습니다. 어디선가 고요한 물소리가 들려왔어요. 쥘 린드버그 선배는 금빛 단상 위에 올라 우리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온화하고 부드러웠죠. 그런 점에선 제가 처음 선배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입을 열고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W. D. 입니다. 물론 여러분께선 제 소설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고, 몇몇 분들은 저를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만큼은 위글 딜루티라고 불러주세요. 페르소나는 아주 중요하니까요.”

잔잔한 웃음이 군중 사이로 퍼져나갔고, 오직 저만이 영문을 알지 못했습니다.

린드버그 선배는 특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네, 페르소나요. 왜 제가 가명을 써야 하는지 궁금하실 분도 있으실 거예요. 이 일을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렇죠?”

동의하는 소리.

“하지만 아니에요. 결단코 아니죠. 여러분은 우리 시대가 낳은 가장 건강한 인재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음 시대를 이끌어나갈 주역들이에요. 문제는 주역이 아닌 사람들, 시대에 병든 사람들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 질병으로부터 수호할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이곳에 있어요. 그 질병은 바로 공정입니다. 스미스 양,” 그는 가장 앞줄에 앉은 여학생을 가리켰다. “공정이 뭐라고 생각하시죠?”

이제 고작 열네 살 정도일 여학생은 수줍음으로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 공정은 모두가 똑같은 기회를 제공받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맞아요. 훌륭해요. 제가 교수님이었으면 스미스 양의 기숙사에 10점을 드렸을 것 같네요.” 웃음. “사실 ‘공정’이란 아주 훌륭한 가치예요. 사회가 발전하고 있는 동안에는 모두에게 나누어 줄 만큼의 빵이 있거든요. 하지만 사회가 수축하고, 쇠락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마을에는 열 명의 사람과 열 개의 빵이 있어요. 살아남는 데 필요한 빵은 개인당 두 개입니다. 자, 그러면 명예로운 미래의 지도자 분들께 묻겠습니다.”

두 개씩 빵을 먹어서 다섯 명이라도 살아남는 게 옳을까요, 혹은 공정하게 한 개씩 빵을 나누어 가진 뒤 굶어 죽는게 옳을까요?

질문이 던져진 순간 온실의 공기는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음과 기대감은 전기 충격처럼 인파를 관통하고 떨리게 만들었어요. 린드버그 선배의 눈이 만연한 기쁨을 내보였습니다.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는 귓속말처럼 나지막해졌지만, 어떤 우렁찬 선동보다도 훨씬 폐부를 찌르는 그런 음성으로 느껴졌습니다.

“옳음이란 이토록 상대적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제가 쓴 팜플렛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건강한 배타성’입니다. 또한 우리는 머글 혐오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왜곡된 개념인지를 살펴볼 겁니다. 대답을 잘 하시는 분께는 꿀을 바른 토스트를 나누어 드릴게요. 저희 어머니의 레시피라 아주 맛있답니다……. 선배의 목소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 집단적인 광기, 혐오를 신상(神像) 삼은 숭배자들. 공정과 평등이라는 그릇된 전염성 질환에 대항해 자신이 투쟁하고 우뚝 서게 되었다는 생각에 젖어- 환희에 차 있는 나의 친구들! 오, 그들은 발걸음 소리를, 조용히 층계를 내려오는 소리, 눈에 보이지 않는 층계를 내려오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 보다 위대한 미래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속이 울렁거려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바닥이 내게로 닥쳐오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더이상 견디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밖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선배가 걸어나왔습니다. 다음 일정이라도 마련되어 있는 것인지, 한 눈에 보아도 비싼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바삐 걸음을 재촉하더군요. 저는 벽에 붙였던 등을 떼어내고 선배를 급히 따라갔습니다.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연설을 하게 된 건지, 의사에 반한 선택은 아니었는지.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변화시킨 건지.

“선배. 린드버그 선배!”

“아.”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저를 가볍게 일별했습니다. 입가에 작고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아까 밖으로 나가길래 걱정을 많이 했어요. 몸이 안 좋나요?”

“네, 아니요, 그러니까-” 저는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떠듬거렸습니다. “선배께선 아마 저를 모르시겠지만-”

“후플푸프, 오웰, 맞죠? 제가 졸업한지 삼 년이 지났으니 오웰은 내년에 졸업하겠네요.”

그는 저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제 심장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그건 틀림없이 희망과 비슷한 감정이었어요.

“네! 그러니까, 제가,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말문이 막히는 경험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저는 필사적이었어요. 그저 친절을 베풀었을 뿐인 상대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 저런 끔찍한 연설을 할 리가 없다고. “선배께…… 틀림없이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협박이라도 당하신 거죠?” 그가 저를 고요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힘을 주어 다음 말을 뱉어냈습니다.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 힘은 부족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는 이 대목에서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상대에게 무안을 줘야만 하는 사람 특유의 난감한 기색이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눈을 껌뻑였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오웰.”

“네?”

“그런 건 없어요. 그러니까, 사정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고요.”

침묵. 공백.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는 어렵사리 그의 말을 소화한 뒤에야 갈라지는 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어요.

“이해가 잘……”

“누구도 저를 협박하지 않았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물론 제 입으로 나불나불 떠들어대는 말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가장 효과적으로 상대를 선동하기 위해 골라낸 단어들이에요. 제 무기이자 마법이라고 할 수 있죠. 그게 중요한 거예요. 어휘를 어디까지나 수단으로 대하는 것.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믿으려고 지나치게 애썼다간 자가당착에 빠지거든요.” 그는 인상을 쓰면서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그러더니 뒤편에서 쏟아져 나오는 슬리데린 학생들을 흘긋 쳐다보았고, 제 어깨를 한 손으로 쥐더니 정원 쪽으로 이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그가 떠미는 대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요,” 제가 재차 속삭였습니다. 유월의 장미는 붉고 새소리는 아름다웠어요. 저를 정원의 한가운데로 끌어다놓은 그가 후련한 얼굴로 몸을 돌렸습니다. 덥지도 않은 걸까요, 모피 코트가 제자리에서 펄럭였습니다.

“그렇다면,” 쥘 딜루티 린드버그가 말했습니다. “황금옷을 입은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웰, 미움이 어디서부터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1)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소담출판사, 14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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