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빵] 만사휴의 萬事休矣 1

혼전순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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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사이트에 올린 글과 동일. 준수영중 맞습니다.

※ 주의 : 욕설 필터(XX) 사용 안 함. 원작과 다르게 전영중의 아버지가 전영중과 흡사한 외모를 가졌다는 설정. 종교 소재 (창작)

“혼전순결 서약 캠페인 중입니다! 참여하고 애인에게 줄 장미 한 송이 받아 가세요!”

“하늘은 순결을 지키는 자, 결혼해서 아이 낳는 자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순리대로 살다 하늘 갑시다!”

감히 신이 계신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어서인지 평평히 편 손바닥으로 하늘을 향해 찬양하듯 내 뻗은 남자를 따라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언제나처럼 스모그 일색. 죽어서 저곳에 가고 싶진 않다. 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긴 했지만.

최근 악명이 자자한 순리교 단체의 목소리는 반응하지 않는 시민들을 의식해 한층 높아졌다.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발현 여부가 불분명한 미성년자 비형질인을 대상으로 종종 형질에 대한 상식을 가르치는 의무교육이 있었는데, 그 교육이 방금 종료되어 아이들이 막 빠져나오던 참이었다. 먼지가 쾨쾨한 건물에서 호사스런 에어컨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여름의 눅눅한 습도를 버텨내다 풀려난 학생들은 대뜸 등장해 시끄럽게 구호를 외치는 순리교도들의 호객행위가 그저 불쾌했다.

“어디다 손을 대! 손 안 떼? 맞고 싶냐?”

“관심 없으니까 꺼져!”

포교에 대한 반응은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늘 지저분하고, 볼품없던 거리에 차림새 만으로도 그동안의 유복한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순리교도들의 존재는 이 구역 학생들에게 표백 된 이질감이 다가오는 듯한 위화감을 주었다. 교도인들의 불결함을 모르는 새하얀 반 소매 셔츠는 학생들의 해진 교복과 대비되었고, 장미를 든 부드러운 손등과 잘 관리된 손톱은 부를 연상시켰다. 위에서 베풀어주는 은혜 따위를 넙죽 엎드려 감사히 받을만한 놈들은 이때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동네에서 해맑고 기만하는 신자들은 함박 웃음을 무기로 학생들의 가는 길을 멈춰 세웠다.

“그러지 말고, 하고 가세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아하하, 쟤 봐봐. 잡혔어. 좆 못 써본 놈처럼 보이나 봐. 야, 장미 받아 와라 동정 아다 새끼야.”

“아, 씨발. 기분 잡치게!”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신경질 날 일들이 쌓인 몇몇 학생들은 빌미를 주는 순리교도들에게 분풀이를 하려 했다. 나자빠지도록 어깨를 밀쳤다. 침이 섞인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니, 아예 더 나가서 장난감 취급 하려는 애들도 있었다. 특히, 결혼 반지를 낀 중장년 신도가 아닌 앳된 얼굴로 혼전순결 반지를 끼고 있는 젊은 순리교인들이 주목 받기 좋았다. 막상 어깨를 붙잡으면 눈도 못 마주치는 표백된 또래들을 성적인 눈으로 끌쳐 보며 열심히 엄지와 검지로 만든 구멍에 두 손가락을 쑤셔 넣고 손바닥을 은근하게 짓눌렀다. 샌님처럼 얼굴을 붉히는 신자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도 저 정도 숙맥인 애새끼가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선 유독 대가리 꽃밭 천지인 A 구역에서 온 손님들이라는 게 확실해 보였다.

“비켜주세요.”

순리교는 어울리는 구역이 따로 있다. a구역이라고. 순리교는 성 엄숙주의에 기반을 둔 종교라서 결혼, 임신, 출산이 신성시된다. 인간이 신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최고 과업이라 칭송한다. 그 특유의 보수주의적 성향 때문인지 의외로 가장 안쪽 구역의 가장 높은 상류층에 순리교 신도 비율이 높다.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이 종교는 벽이 존재하기 이전에는 이단 취급을 받았으나 바깥과 유리 된 두꺼운 벽이 세워지고, 벽 안에서도 벽을 만들어 구역이 차례로 나누어 지던 시기에 안쪽 구역에서 알음알음 세력을 넓혔다고 한다. 비빌 언덕이 확고한 지금은 공격적인 포교 활동으로 방향을 틀어 가장 바깥인 F 구역까지 대놓고 자기 세력권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주 안타깝게도 순리교는 F 구역에서 장렬한 실패만을 맛보았다.

방금도. 꽃 만이라도 가져가라고 꾸역꾸역 품 안으로 밀어 넣던 장미가 거부하는 손길에 맞고 터져나갔다. 시적인 표현은 모르겠고, 그냥 값 비싸 보이는 새빨간 꽃잎이 돈 아깝게 펑펑 흩뿌려지며 줄기가 꺾이는 모습에 잠깐 눈이 갔다.

한심해. 차라리 그 가격 만큼의 돈을 준다고 하지. 그럼 가라로라도 이름 쓰는 애들이 있었을 것이다. 조건에 맞는 애들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F 구역은 벼랑 끝이었다. ‘아직’ 벽 바깥으로 추방 당하지 않았을 뿐인 사람들이 아득바득 살아남는 곳이었다. 그나마 어린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젊은 녀석들을 순리교의 대표적 뻘짓인 혼전순결주의 캠페인 타겟으로 삼았던 것 같은데, 글쎄.

나 말고 아다가 이 거리에 또 있을 리가.

닳을 대로 닳은 부모들 밑에서는 구를 대로 구른 자식들이 자랐다. 이 포교 활동이 인생 최대의 시련일 저 순진해 빠진 안쪽 구역 교인들보다는 이 녀석들이 더 산전수전 다 겪어 봤다. 애초에 얘네가 귀찮은 형질 교육을 빠지지 않은 이유도 올 출석해야만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 때문인데.

“팔 잡지 마세요.”

가오에 찌든, 누구랑 잤는지 뻐기면서 보란 듯이 허릿짓하는 게 자랑인 머저리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머저리들 잡자고 헛걸음한 멍청한 순리교인들.

무표정으로 비웃어 준 후 슬그머니 잡혔던 팔을 빼냈다. 빼내려고 했다.

“어머, 학생 이거 혼전 순결 주의 반지 맞지?”

“기적이에요! 학생은 기적이자 희망이야! 역시 신께선 F 구역에도 거하고 계셨습니다. 순리 만세! 순리 만만세! 학생,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신께선 학생을 굽어 살피시고 계실 겁니다. 반드시 하늘 갈 겁니다!”

“이것도 인연이지. 혹시 시간 되니?”

어지러웠다. 예상치 못한 폭언 세례에 스트레스 받던 십 몇 명이 반색하며 동시에 달려들었다. 덩치 큰 남학생은 당황해 뒤로 주춤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요. 가 봐야.”

“정말 중요한 일 아니면 우리랑 같이 있어요. 아니, 이것도 다 신께서 안배하신 마주침일텐데 아쉬워서 그렇지.”

“우리가 외지인이라 학생들이 어려워 하나 봐. 이리 와서 같이 혼전 순결이 얼마나 숭고한지 설득해주고, 장미도 나눠주고 좀 그러자. 혼자 하늘 갈 거야? 친구들 다 저 지옥 구덩이에 내버려두고?”

“학생. 그런데 명찰은 왜 가려?”

잘못 걸렸다.

“죄송합니다. 저 정말 바빠요.”

전영중은 튀었다. 키가 축구 골대 만한 남자애가 힘주어 억센 팔들을 뿌리치고, 맘 먹고 겅중겅중 달아났다. 하늘에 데려갈 친구 따윈 없는 전영중은 숨 가쁘게 달렸다.

“아, 오늘 준수 보는 날인데.”

구깃해져버린 셔츠를 야매로 펴보며 볼맨 소리를 냈다. 조금 늦었다. 계단에 발끝을 툭툭 건드리며 숨을 고르게 정리했다. 누구보다 조급한 주제에 조급해 보이는 건 또 싫어서. 어차피 실제로 준수를 만나는 일도 아니었다. 준수의 새 사진을 하나 얻는 날이다. 그것 뿐인데 호들갑 떨기 싫었다. 물론, 완전히 늦게 도착해도 사진은 남아 있을 것이다. 가방을 고쳐 매고, 옷 차림새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뛰어 오는 내내 실컷 욕했던 순리 교도들. 거기엔 전영중도 포함이다.

아버지와 자신 모두 그 종교의 교리에 기대어 살고 있으니까.

아니, 인생을 걸었으니까.

-딩동.

성준수네 가족들은 순리교도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라.”

“오랜만이네요. 전영중 학생.”

다행이었다. 가지 않았다. 최대한 평이한 톤으로 인사를 받아준 아버지 뒤에 선 저 사람은 성준수의 부모가 보낸 대리인이었다. 빈틈없는 정장차림으로 낡아 빠진 집 한가운데에 ‘서’ 있다. 죽어도 더러운 소파에는 앉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정이 든 전영중을 위해 몇 분 정도 허비할 인내심은 있는 하는. 나이스한 개새끼가 따로 없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영중은 이 사람을 마음 놓고 대한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리인의 눈을 통해서 전영중은 관찰되어 성준수와 성준수의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사소한 흠도 잡히기 싫어 평소에도 집을 환기하고, 모범생스럽게 자신을 가꾸었다. 그러니 F 구역에 들락날락거리던 초반엔 집에 들어서기도 꺼려했던 사람이 저렇게 우스운 호의를 이젠 보여주는 것이겠지.

전영중은 A 구역 주민에게도 으…스럽게 들리지 않게끔 최대한 포장한 일상을 스몰톡으로 가볍게 소비하며 준수의 사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여전히 준수는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네가 항상 그렇지 뭐. 전영중은 단정히 믿음을 줄 수 있는 웃음을 지으려는 노력이 찍힌 사진을 넘겼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을 성준수의 편지를 챙겼고, 며칠 동안 고민하며 적어 내려간 편지를 드렸다.

이러한 준수의 무심함에 전영중은 대리인이 떠나기 전 급하게 온 것이었다.

준수의 이야기는 준수의 뒷모습만 찍힌 사진도, 텅 비어있는 편지도 아니라 대리인의 입에서만 나왔다. 가령 이런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준수는 어떻게 지내나요?”

“준수 도련님은 여전히 농구에 빠져 살고 계십니다. 전영중은 학생은요?”

“저는 그만둔 지 오래 됐잖아요. 손에 쥐는 방법도 까먹었어요.”

“으음, 도련님도 그러셔야 할 텐데요. 요즘 집안 분위기가 꽤.”

걱정 보다는 번거로움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대충 타협하고 살면 편할 텐데, 그러지 않는 도련님 덕분에 고생 좀 한다는 투였으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듯했다. 전영중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준수가 성적을 꼬라 박았나? 아니면 뭐 농구공을 애들 머리통이라도 맞춘 거야? 뭐가 됐든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면 안되지. 무조건 성준수가 잘못했을 거 같아 마음 속으로 쉴드 쳐주지도 않았다.

아, 역시 됐다. 미련하게 아직 버리지 못한 농구화가 찬장에 남아있었는데 아무래도 완벽하게 그만두려고. 남편이라도 성적 잘 받아와서 밀어줄 맛이 나는 똑부러진 놈이어야 준수 걱정 덜 하실 거 아니야. 내 말이 맞지?

“하하, 준수는 한 번 몰입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성격이니까요.”

“뭐, 예전부터 그렇긴 하셨죠.”

준수는 준수가 좋아하는 일만 했으면 좋겠다. 같잖은 서방짓, 내조라고 깔아뭉개질 바람이라도 괜찮았다. 대신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준수에게로 향한 가업에 대한 기대를 이쪽으로 받아올 수 있도록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 지금처럼 앞뒤 없는 준수가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자칫 선을 넘는 발언이라고 느껴질까 봐 뒷말을 삼켰다.

‘그래 봤자 F 구역 주제에.’

그 말. 전영중은 잊지 못했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주문. 처음 집에 방문한 대리인이 자꾸 질문하는 전영중의 아버지에게 했던 말 실수를 전영중은 잊지 않았다. 건방, 지다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 뒤에 또 오죠.”

한 달 어치의 대화는 워낙에 단조롭게 사는 준수 덕에 금방 끝나버렸다. 아직도 농구를 좋아한다는 성준수는 요즘 무슨 플레이에 관심이 있는지, 슛 성공률은 좀 변했는지 성준수와 직접 대화하면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겠지만, 농구 팬도 뭣도 아닌 일반인에 불과한 대리인은 그런 거 몰랐다. 캐내는 건 불가능했다.

아쉬운 마음을 꾹꾹 접고서 활짝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별 소득 없이 배웅을 했다. 설렜던 마음이 도로 침잠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성준수를 사랑한다.

속절 없이 사랑하고 있다.

만난 적은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하나 뿐인 아버지에게서 어려서부터 성준수 이야기만 들었으니까.

이야기의 끝은, 항상 성준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끝났으니까.

성준수를 아끼고, 보호해야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성준수. 성준수. 성준수.

왜냐하면 성준수는 전영중의···.

W. DN

아버지에게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순리교인으로써 교리와 세상의 순리대로 살아 신이 복을 주셨는지 A 구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사업가였다고 했다. 인생이 가장 빛나던 시기는 곧, 우정이 전부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와 터무니 없는 약속을 했다. 서로의 자식이 순리교의 교리에 따라 결혼할 수 있는 행운을 타고 난다면 결혼시키자고. 친구와 가족으로 엮이고 싶다는, 참 대단한 우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업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망쳐져 버렸다. A 구역에서 단숨에 F 구역으로 내쳐졌다. 자세히는 모른다. 아버지는 유독 술을 마시면 자기한테는 잘못이 없다고 중얼거리며 괴로워했다. 이미 임신해 계셨던 어머니는 사랑으로 아버지를 따라 F 구역으로 오셨고, 의사도 변변치 않은 곳에서 전영중을 낳다 돌아가셨다. 그걸 계기로 아버지는 망가졌다. 도박과 범죄로 바닥 아래에 더 바닥이 있음을 실천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어떤 약속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걸 붙잡기로 했다.

그래서 작디작던 전영중에게.

“전영중. 똑바로 들어. 우리가 비록 F 구역에 있지만, 평생 여기서 살 건 아니야. 알지?”

“준수랑 결혼해서.”

그래. 성준수 그 벌써 이쁘장해서 오메가가 될 게 뻔한 애랑 결혼하게 되면 아빠랑 영중이랑 뭣 같은 F 구역을 나가서 A 구역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어떡해야 한다고?”

“몸 다치지 말고, 몸 굴리지 말라고 했어요.”

“함부로 좆이든 후장이든 싸구려로 놀려대는 F 구역 새끼들이랑 우리 깨끗한 영중이는 차원이 다른 존재야. 독실한 순리교도 답게 떳떳하게, 깨끗하게, 응?”

“아빠, 근데 몸 굴리는 게 뭐에요?”

“하하, 영중아. 그게 뭔지 궁금해? 근데 어떡하지? 영중이 나이에 그걸 아는 것도 걸레 창놈 새끼 같은 거야. 아빠가 걸레 창놈 아니니까 영중이도 걸레 창놈 새끼 아니지? 뭔지 몰라도 되겠지?”

“네에.”

전영중은 몸 굴리지 말라는 말에 길이나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게 아주 조심하면서 걸었다. 바보같이.

나중에서야 몸 굴린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더 많았다.

세상에는 X와 Y의 조합으로 구성된 성별 외에도 형질이 존재했다. 형질은 기본적으로는 알파, 베타, 오메가로 나뉘고 또 열성과 우성이···. 하여간 복잡했다. 다 패쓰하고. 전영중이 고려해야 할 부분은 간단했다. 어떤 조합이어야 전영중과 성준수가 순리교 교리에 따라 결혼할 수 있는지.

순리교에서는 임신할 수 있는 성별과 형질의 조합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야 결혼, 임신, 출산이 베스트인 종교라서 그랬다.

일단, 성별.

성준수와 전영중은 둘 다 XY(남성)였다,

이건 즉, 둘 중 하나라도 오메가 형질이 발현되어야 결혼이 가능해진단 뜻이었다.

둘 다 남자라면, 알파와 알파, 알파와 베타, 베타와 베타 조합은 임신이 안 되니 순리교에선 결혼하지 못한다. 오메가가 한 명이라도 껴 있어야 한다. 비슷하게, 만약 둘 다 여성(XX)이었다면, 둘 중 하나는 알파여야 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아무 거리낌 없이 결혼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게 동성 간 결혼은 이토록 까다로웠다.

그래서 전영중은 자신이 오메가로 발현하기를 바랬다. 그러면 결혼은 확정이다.

그러나 전영중은 아버지는 남달랐다. 한때였으나 촉망 받는 인물이었던 그는 포부가 컸다. 순리교에서도 차등이 있었다. 임신이 가장 잘 되는 이성간, 더해서 알파 오메가의 결혼이 가장 축복 받았다. 하나는 이루지 못할 조건이 되었으므로 나머지 하나라도 이루어야 했다. 아버지는 준수가 오메가, 전영중은 알파가 되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계획은 그럴싸했다. 사진으로만 접한 성준수는 어렸을 때부터 뽀얗고 이뻤다. 희미한 초점의 사진으로도 보였다. 막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이쁘면 그림자도 이뻐 보인다고. 오메가의 자질이 보였다. 벌써 인기가 많다는 건 좀 아쉬웠다. 사실 오메가든 뭐든 성준수가 못생긴 편이 전영중에게는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 적도 있다. 전영중은 성준수가 이미 좋았는데, 성준수 얼굴만 보고 꼬이는 애들이 많다고 하니 싫었다. 지금은 마음을 바꿨다.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한 성준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결혼해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좋았다.

전영중은 또래보다 키가 쑥쑥 컸다. 어깨도 쩍 벌어지고, 허벅지에 근육이 오밀조밀 붙었다. 알파스러워지는 전영중은 아버지에게 큰 기쁨이었다.

“전영중, 준수가 이번에도 아무것도 안 썼니? 하하, 걔는 오메가가 분명하다니까. 오메가 답게 미래의 남편한테도 꼬리 치는 거 봐라. 얼마나 더 안달 나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다 같은 순리교 안에 있으니까. 준수도 널 딱 보게 되면 아무도 안 쓴 구멍에 박아달라고 다리 벌리고.”

“아버지, 그만 하세요.”

“너도 지 오메가 챙기는 게 참 알파 답구나. 끼리끼리라서 아버지는 벌써 행복하다, 하하.”

그런데 최근 아버지가 신경이 예민해졌다. 전영중도 아버지의 미세한 태도 변화에 조금씩 불안함을 감지하고 있었다.

전영중은 성준수를 안다. 앞만 바라 본다. 그런 준수가 옆에 전영중이라는 낯선 것을 두고 싶어할까. 부모가 정해줬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준수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일 것 같기도 하다. 추측으로 우려를 가려둔다.

···준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준수 부모님의 배려로 결혼 전에 미리 친해지라며 대리인을 통해 사진과 편지의 교환을 시키기 시작했을 때도 건성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전영중이 농구를 좋아하고, 성준수가 농구를 좋아해서 편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도 있었지만, 과거였다. 전영중의 아버지와 전영중은 거진 성준수네 부모님께 미래를 담보로 지원 받는 처지였고, 그 분들은 농구를 그닥 좋게 여기시지 않았다. 스스로 눈치가 보여 흥미를 잃은 척 했다.

곧이 곧대로 적을 수 없어 그만 둔다고만 편지에 썼더니 그러냐. 세 글자만 적혀진 편지가 도착했다. 그때 속상해서 태어나 딱 한 번 빈 편지지를 보냈다. 그 이후로 준수의 편지지는 아무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성준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교환의 형식을 맞추기 위해 아무 사용인이 준비해둔 것일 터였다.

활자로도 화를 내지 못했다. 성준수가 읽지 않는 자신의 편지를 누가 확인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불안했다. 모르는 사람이 읽게 될 자신의 비참한 몸부림이. 실제로 아주 어렸을 적 편지는 가족들과 같이 읽었다는 말을 지나가듯 듣고 난 이후엔 더더욱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영중은 성준수가 어려웠다.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대리인은 약속한 날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져 집은 곧 살얼음판이었다.

전영중은 그 위에 아슬히 서 있었으나 몇 달 후 결국 얼음 물에 온몸이 풍덩.

“영중아, 시발 성준수가 알파로 발현했다네? 우리 조졌다, 그치?”

느껴질 리 없는 추위가 주위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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