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

미열 서장.

센루/오메가버스/궁중물/후궁공황제수

달콤한 숨결 by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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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 황위에 오른지 20년 만에 황제는 죽음을 맞이했다. 2년 간 시달린 병환으로 잔뜩 지친 표정을 한 사내는 저를 데리러 찾아온 사신의 닦달에 못 이겨 차마 감겨지지 않는 눈을 감았다.

그 뒤를 이어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옥좌에 오른 루카와 카에데는 사내이면서도 회임을 할 수 있는 음인이었다.

미열

서장.

수도에서 ‘센도 가의 도련님’이라고 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굳이 ‘아키라’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그 명칭 하나로 누구를 뜻하는지 다 알아들었다. 센도 가에는 여러 명의 도련님이 있었으나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도련님이란 ‘센도 아키라’뿐이었다.

센도 가의 도련님은 둘 이상이 모이는 자리라면 반드시 화제에 올랐다. 그때마다 모든 이가 그와의 친분이나 그마저도 되지 못하는 작은 연결고리를 자랑하고 싶어 했다. 예를 들면, 우리 이모가 센도 가 저택 근처에 살아서 매일 아키라 도련님을 본다, 내 동생의 친구가 센도 가의 도련님이 자주 가는 음식점에서 일해서 가끔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뭐 이런 식이었다.

준수한 외모, 뛰어난 재능,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존중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꺾이지 않는 기개를 가진 센도 아키라는 18살에 조촐한 성인식을 치루었다. 그날부터 센도 가 저택 앞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개중 대다수는 혼인단자를 건네려는 매파들이었다.

센도 아키라가 유명한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았으나 가장 강력한 사유는 그가 백 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우성 양인이기 때문이었다. 우성 양인은 음인은 물론이고 같은 양인도 회임시킬 수 있으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신체가 건강하고 머리가 영특하며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 소문이 수도를 넘어서 제국 곳곳에 널리 퍼지면서 그에게 집안의 음인을 시집보내고자 하는 집안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하지만 그 일로 하도 주변이 시끄럽다보니 센도 가에서는 아키라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혼인단자를 받겠다, 그 전에 보내는 가문은 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문에 다들 안달복달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마음 놓고 혼인단자를 넣는 것이다.

“센도 아키라와 혼인할 상대라고 한다면 사실 황제 폐하밖에 없지 않겠어?”

수도, 아니 온 제국민들이 센도 아키라를 차지할 음인은 과연 누구일까, 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센도 가를 응시했다. 센도 가만큼이나 쟁쟁한 명문가는 물론이요, 지전이 넘쳐나서 방석으로 깔고 이불로 덮고 잔다는 대부호 가문에서도 센도 아키라를 탐냈다. 음인이 없으면 입양을 해서라도 시집보내고자 하였고 정실은 바라지도 않으니 첩으라도 받아달라고 사정하는 가문이 부지기수였다.

온 나라가 센도 아키라의 혼인 문제로 떠들썩하고 각종 유언비어까지 둥둥 떠다니니 사람들은 농으로 말하였다. 이 소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신붓감은 내년에 성인이 되시는 황제 폐하뿐이라고.

황제를 비웃거나 낮잡아 보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센도 가가 어떤 가문을 선택하든, 다들 비슷한 신분이라 쉬이 포기하지 않을 터다. 그러니 혼인으로 인한 잡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다른 가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분을 지닌 상대와 혼인하는 것뿐인데, 기라성 같은 명문가를 억누를 수 있는 신분을 가진 음인은 제국 내에서 황제,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러니 황제에게 장가를 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침 황제도 내년이면 성인이니 혼인을 올리기에 딱 적당한 나이였다.

사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저 농으로 하는 말일 뿐, 현실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황제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건데 센도 아키라와 황제가 혼인할 가능성이란 턱없이 낮았다. 두 사람이 절절하게 사랑하는 사이라고는 해도, 센도 가 출신인 태후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그 주제가 화제에 오르면 다들 황제와 혼인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하면서도, 끝에서는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하고 부인하는 식이었다.

“센도 아키라는 황제의 명을 받들라.”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센도 아키라의 성인식이 끝나고 약 넉 달이 지났을 무렵, 성인이 될 날을 고작 세 달 남겨 놓은 황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한 자신을 대신하여 수렴청정한 태후에게 허락은커녕,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칙명을 센도 가로 보냈다. 저택으로 찾아온 좌통정* 미야기 료타는 황제의 명이라고 하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자들에게 힘찬 목소리로 황제가 적은 명을 읽었다.

“센도 아키라를 정2품 비로 봉하니, 익월 보름에 입궁하라.”

* 작품 속 관직 및 내명부 체계는 명나라를 참고로 하였습니다.

* 좌통정 : 황제의 칙명과 조서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부서로 통정사를 으뜸으로 하며 좌통정은 바로 그 아래 직책. 황제의 명을 받아 칙령을 옮기고 반포하는 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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