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큘러스 전력

리버스

레이디버그 436회 전력

하늘이 너무 파래서 꼭 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맑은 날인데, 왜 갑자기 그날이 생각났던 걸까? 그날은 비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서로의 소리를 모두 잡아먹을 만큼 컸잖아. 혹시 기억나?

학교에 오게 된 날부터 행운으로 향하는 길이 트인 기분이었어. 자유를 얻고, 학교에 가게 되고, 새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좋았어.

처음에는 클로이의 친구라는 이유로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지만, 니노를 시작으로 하나 둘 씩 마음을 열어줬어. 네가 더 신경 쓰였던 것도 그래서였나 봐. 내가 오기 전에 클로이에게 가장 시달렸던 게 너라고 들었어. 그래서 클로이의 친구인 나를 오래 경계한 것도 이해가 갔어. …물론 다른 오해도 있었고.

사실 바로 오해를 풀지 못했던 건, 그때의 내가 진실을 밝혀버리는 게 친구인 클로이를 파는 짓이라고 생각해서였어. 조금 바보 같았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친구를 사귀고 사람을 만나는 데 너무 서툴렀어.

그래도 너는 그때부터 한결같이 상냥해서 내가 인사를 하면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도 받아줬어. 나는 그냥 거기서 만족할까 싶다가도, 다른 친구들을 볼 때는 짓는 미소가 내 앞에서만 사라지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어. 친구들 앞에서의 너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동시에 올곧고 강인해. 그러니까 그런 너의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건 당연한 일이라고도 생각했어.

그러니까 그날은 내가 정말 오래 기다려왔던 기회나 다름없었던 거야.

처음에는 맑았던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이 마냥 밉기만 했어. 우산을 챙기면서도 일기예보가 틀렸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

너도 알겠지만 우리 아빠는 걱정이 좀 많으셔. 어차피 학교 바로 앞까지 차를 보내시면서 비가 오면 꼭 우산을 챙겨주실 정도로. 물론 직접 전해주시는 일은 없고, 항상 경호원을 통해서 주시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날은 처음으로 아빠의 과도한 고집에 감사할 만한 날이었던 것 같아.

당연히 비 때문에 한 발짝도 걸어 나가지 못하는 너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어. 그 순간에는 너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하지만 곤란함에다 불편함까지 겹친 네 얼굴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변명 같은 말이 나와버렸어.

진심과 진실이 뒤섞여서… 모든 게 낯설었던 게 여실히 드러났던 게 오히려 내 말에 신뢰를 더해줬을지도 모르겠네.

너와 그렇게 오랫동안 마주 보고 있었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지. 웃는 모습을 본 것도. 나는 웃느라 조금 접힌 눈매 사이에, 어두운 날씨 때문에 조금 짙은 색이 된 네 눈동자를 보면서 내일은 맑은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평소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웃으면서 인사해 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너를……

댓글 1


  • 행복한 청설모

    파리 매일 천둥번개 치고 비 와야한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북부 겨울에는 날씨 흐린데 아드리앙이 겨울에는 마리네뜨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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