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큘러스 전력

대체불가?

레이디버그 전력 413회

주제 [너의 빈 자리]

"언제까지고 파리를 지키는 영웅이고 싶어."

그렇게 말했던 게 징조였을까? 막연한 생각이라고 넘기며 농담을 던졌던 것이 후회됐다. 물론 잡는다고 잡혀줬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도라도 해볼걸.

파리에서 레이디버그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셋이고, 그 중 영웅이 둘이다. 그 가운데 하나라면 당연히 존재감이 큰 건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다. 문제는 남은 영웅 중 하나가 그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점이다.

블랙캣은 당장 혼자 싸우게 된 것보다 레이디버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를 더 걱정했다. 레이디버그가 있었을 때도 파괴에는 신중했고, 힘에 취해 날뛰는 악당을 유인하는 데는 요령이 생겼다.

'이제 틈을 봐서 무기를 빼앗으면 돼. ···하지만 어떻게 틈을 만들지?'

예전엔 자신이 틈을 만드는 쪽이었다. 레이디버그는 적절한 순간을 잘 포착했기 때문에 합이 잘 맞았는데.

고민하다 잠시 감상에 빠진 사이 악당이 공격해왔다. 급하게 고대의 재앙을 발동하려 하려던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요요가 날아왔다.

"잠깐! 내 파트너를 상대하려면 날 먼저 이기라고!"

"지각이다, 레이디버그! 오자마자 나에게 미라큘러스를 빼앗기게 되다니 안타깝구나!"

"원래 주인공이 마지막에 나타나는 거 몰라?"

새빨간 수트와 뛰어난 유머 감각과 전투 센스. 날아오는 공격을 간단하게 피하던 레이디버그는, 등장하던 순간부터 들고 있던 행운의 부적으로 순식간에 적을 제압한 다음 무기를 빼앗아 블랙캣에게 던져줬다.

"블랙캣, 지금이야!"

순간 넋을 놓고 있던 블랙캣이 얼른 고대의 재앙을 썼다. 상황은 생각보다도 쉽게 끝났다. 레이디버그가 와준 덕분에 우려와 다르게 파괴된 것도 복구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러모로 때가 잘 맞았다. 만약 기습에 고대의 재앙으로 대응했다면 검은 나비를 없앨 방법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악당의 허를 찌를 수 있었어. 역시 블랙캣이야!"

"칭찬은 고마운데 넌 누구야? 레이디버그가 아니잖아."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맞아. 나는··· 편한 대로 불러, 일시적인 대체자니까. 레이디버그가 영웅일 수 없게 됐을 때를 대비한 임시방편이지."

"임시라면 레이디버그가 다시 돌아온 다는 거야?"

"응. 언제라고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했어."

블랙캣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의 호칭도 그렇고, 악당이 레이디버그라고 불렀을 때 부정하지 않은 것도 일부러 그런 것이 분명했다. 파리에 레이디버그의 부재를 알리고 싶지 않은 거다. 블랙캣이 눈치챘기 때문에 순순히 털어놓긴 했지만, 만약 눈치채지 못했다면 비밀에 부쳤을 것이 유력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나라고 원해서 대체자가 된 게 아니니까. 나도 어제까지는 평범한 시민이었거든?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에게 지킴 받는 쪽이 익숙하고 편하단 말이야."

하지만 말과 다르게 임시 레이디버그-블랙캣은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는 영웅 일을 몹시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능숙했다. 요요를 수족처럼 다루고 행운의 부적이 내는 수수께끼를 손쉽게 풀어냈다. 블랙캣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레이디버그가 되는 연습이라도 했나 봐. 제법인데?"

"칭찬 고마워. 연습한 적은 없지만 연구는 많이 했었지. 난 레이디버그의 팬이니까."

블래캣의 삐딱한 태도에도 임시 레이디버그는 긍정적이었다. 팬이라면 이 순간이 기쁠 만도 했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의 일상이 그에게는 직업 체험의 순간 정도로 느껴졌을까. 그래서 더 독특한 전투 방법이 나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마음에 안드는 나날이었고, 인정하기도 싫었지만 블랙캣은 점차 임시 레이디버그와 합을 맞추는 데에 익숙해졌다. 왜 레이디버그가 그를 대체자로 삼았는지도 이해는 갔다.

"블랙캣, 지금!"

"어림 없다!"

"······!"

임시 레이디버그의 작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겼다. 기습에 실패하며 당한 역공에 행운의 부적이 파괴됐다.

"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알고 있어. 으으, 어떡하지?"

"당황하지 마! 넌 레이디버그잖아. 내가 시간을 끌고 있을 테니까 안전한 곳에 숨어.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는 거야."

"알았어···!"

오랜만에 긴장감이 들었다. 이 감각도 익숙했던 적이 있었는데. 손끝에 맺힌 긴장을 털어낸 블랙캣이 악당에게 돌격했다.

"혼자 싸우는 게 버거워 보이는데?"

"너만 하겠어? 넌 파리를 부숴보는 게 처음이지만, 난 언제나 파리를 지켜왔거든."

여유부리기는 특기였다. 시간을 버는 동안 레이디버그가 상대의 허를 찌를 준비를 해줄 테니까. 하지만 임시 레이디버그는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괜찮을까? 다시 돌아와서도 평정을 되찾지 못하면 곤란한데.

"슬슬 지루해. 레이디버그는 언제 오는 거지?"

"나 찾았어?"

기시감이라고 해야 할까?

멀리서 날아온 요요가 방심한 악당의 허를 찔렀다.

"기다리게 한 만큼, 더 재미있게 해줄게!"

그렇게 말한 것치고 싸움은 시시하게 끝났다.

"고생했어, 블랙캣."

"그 애는? 안전해?"

"어? 바로 알아보는구나. 역시 내 파트너야. 그 애는 안전해."

중요한 구성요소가 빠져도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

"말 없이 가서 미안해.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급한 사정이 생겨 버렸거든."

"그만큼 나를 믿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고마워. 언제나 이해해줘서."

레이디버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블랙캣은 자신이 느낀 것이 기시감이 아니라 반가움과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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