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적애착궤도와 범우주적살별프로토콜

[아나오비] 변칙적 애착 궤도와 범우주적 살별 프로토콜_04

베이더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으나 빌어먹을 모래 폭풍은 베이더가 나아갈 때마다 그를 밀어내기 위해 거칠게 몰아쳤다. 마치 자신이 저 둘에게 다가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포스를 폭풍의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잠재우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포스를 잡아먹으며 더더욱 몸집을 키우는 듯했다.

결국 베이더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작아져 가는 두 인영을 바라보며 들끓는 분노를 느껴야 했다. 무능한 자신을 향한 분노, 자신을 거부한 오비완을 향한 분노, 오비완을 채간 또 다른 자신을 향한 분노. 포스의 어두운 면에 빠진 지금 분노라는 강렬한 감정은 그를 강하게 만드는 원천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조절이 어려울 정도로 강한 분노를 느끼면 베이더는 이성을 잃곤 했다.

한바탕 거칠게 몰아쳤던 폭풍이 잠잠해질 때쯤, 주변에서 컥! 하는 신음과 함께 으득, 하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섬뜩한 소리가 주변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베이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볼 뿐이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던 모래 알갱이가 서서히 사그라지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체 수십 구가 모래를 뒤집어쓴 채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의 반절은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사지가 괴이하게 꺾여 있을 뿐만 아니라 갑옷 틈새를 비집고 새빨간 핏물이 울컥울컥 흐르고 있었다. 또 다른 반절은 그저 목이 꺾인 채 죽어 있었다. 제국군에서 오래 종사한 사람들은 이 현장을 보자마자 눈치챌 것이다. 사지가 뒤틀린 이들은 모래 폭풍에 휘말린 이들이지만, 깔끔하게 목만 꺾인 시체는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한 베이더 경이 모래 폭풍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생긴 것이라고.

처참한 현장 한 가운데에 서있는 스톰트루퍼 K씨는,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를 보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제국군에 들어온 뒤로 온갖 전장에서 굴러다닌 탓에 시체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끔찍한 현장도 많이 봐왔는데, 왜 자신이 겁먹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옆에 있던 동료들이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한낱 고깃덩이로 변했기 때문에?

아니, 전장에서 동료의 시체와 마주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었고 이보다 끔찍하게 죽어 있는 동료를 보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에 K는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시야에 잡힌 건 아까와 달리 붉은 테두리를 띈 황금빛 눈동자였다. 딱 보기에도 분노에 휩싸인 것 같았지만, 그와는 대조되게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무미건조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음에도 그는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는 듯이 미세한 변화조차도 없었다. K는 그런 베이더의 반응이 더욱 무서웠다. 그가 사람이 아닌 괴물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거부감이 있건만, 그는 그런 기본적인 본능조차 없는 것 같았다.

K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공포의 근원을 알아챘다. 같은 편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절망. 상사가 툭하면 부하들을 죽인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K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도망친다면 무자비한 상사는 자신을 가만두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어쩌면 자신의 무덤은 제 주변에 널브러진 사람들처럼 사막 한가운데가 될지도 몰랐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다잡고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기다리는 것, K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뿐이었다.

베이더가 천천히 손을 들자 K의 몸이 쑥 그에게 날아갔다. 정확히 K의 목을 잡아챈 베이더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함교에 전해. 그 새끼들을 내 앞으로 끌고 오라고.”

최대한 화를 참고 있다는 듯이 그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기괴했다. 물론 숨이 막힌 K는 거기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베이더의 명령을 한 글자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베이더가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자 K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갑옷에 달린 통신 장치를 조작했다. 베이더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스타파이터에 몸을 실었다.

목이 점점 따갑고 속이 불쾌하게 화끈거렸다. 베이더는 당장 데바스테이터 호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데바스테이터 호 복도에 거친 기침소리가 울린다. 폐가 타오르고 피가 연소하는 느낌은 베이더의 정신을 헤집었다. 기도와 목 아래로 넓게 입은 화상은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해도 지금처럼 그를 괴롭혔다. 이 고통을 느끼면서 그 날의 분노를 뼈에 새기는 건 어느 덧 그의 일과 중 하나가 되었으나 오늘은 그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오비완 때문 일 수 있었고, 어둠에 물들지 않은 또 다른 자신 때문일수도 있었고, 아니면 타투인의 빌어먹을 기후 때문일수도 있었고 셋 다 일수도 있었다.

한가지 다행인 건 갑옷도 걸치지 않은 채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방금 전 자신의 명령 덕분에 함선에는 경비 인원만을 남기고 대부분이 사막에서 구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 복도도 베이더가 주로 사용하는 복도였기 때문에 이 곳으로 올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즉, 마음 놓고 흐트러져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발을 옮길 수록 고통이 점점 심해졌다. 베이더는 덜덜 덜리는 팔로 복도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복도 건너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기계음이 섞인 딱딱한 발소리는 베이더의 귀에 익은 소리였다. 베이더는 그제서야 안심하듯 벽에 기대 주저 앉았다,

“오, 주인님. 너무 늦으셔서 이 3PO가 나와봤어요.”

“…3PO….”

금색의 수다쟁이 드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는 제 주인이 복도에 주저 앉아있는 모습에 바로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베이더의 몸을 자신에게 기대게 만든 드로이드는 바로 그를 방으로 데려갔다. C-3PO는 베이더의 몸에 조치를 취하고 곧바로 박타용액이 가득한 탱크에 그를 집어넣었다. 박타 탱크에 들어가자 살갗과 기도, 속을 뜨겁게 태우던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해서 베이더의 분노까지 잠재우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이 사라지자 분노가 치솟았다.

머리를 헤집던 고통이 가라앉자 베이더는 곧바로 눈을 감고 방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오비완의 절망으로 물든 청회색 눈동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맑은 파란 눈을 자랑하던 또 다른 자신. 그렇게 고통받아도 꿈쩍 않는 스승이나 아직도 제다이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멍청한 자신도. 전부 다 징글징글해서 부셔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징그러운 것은,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던 제 옛 스승의 눈빛이었다. 타인의 희망에 매달려 두 눈을 반짝이던 자신의 옛 마스터. 그 반짝이는 눈은 언제나 베이더가, 아니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간절하게 원하던 눈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오비완은 단 한번도 아나킨을 그런 눈으로 봐준 적이 없었다. 포스의 밝은 면에 서서 공화국을 위해 헌신할 때조차 받지 못한 그 눈빛을 포스의 어두운 면에 물든 베이더에게 편린이라도 던져주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베이더는 그 맑은 청회색 눈에 영원히 떨쳐낼 수 없는 짙은 절망만이 자리잡길 원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그 어떤 이도 오비완에게서 희망이 깃든 눈빛을 받을 수 없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그 청회색 눈을 빛낼 줄 안다면, 차라리 그의 아나킨 스카이워커에게나 지어주지. 그의 유일한 파다완은 아나킨이지 않은가. 제다이 몰락한 지금 그 누구도 오비완의 파다완이 될 수 없으니 ‘오비완 케노비의 유일한 파다완’이라는 명제는 아마 영원하리라. 그런데도 그는 겉껍데기만 같은 또 다른 아나킨에게만 매달렸다. 자신의 희망이라도 되는 듯한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베이더 안의 아나킨이 절망과 배신감에 허우적거렸다. 베이더는 처음으로 무능하다고 여긴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동정했다.

베이더는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질투로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쿵쿵 울리는 심박수와 주변을 감싼 포스가 사납게 요동치며 온갖 사물들을 기이한 모양으로 어그러트렸다. 탱크밖에 있던 3PO가 안절부절 못한 채 제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자신을 오비완의 앞에서 잔인하게 죽여버리고, 절망에 허우적 거리는 스승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취하리라.

*     *     *

벤이 씻고 나오자 모닥불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아나킨이 보였다. 익숙한 네이비색 천과 그 위에 늘어진 공구, 그리고 드라이버를 들고 있는 아나킨은 무척이나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에 벤은, 그가 무엇과 씨름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 짐작대로 아나킨의 못마땅한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망가진 광선검이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벤은 버릇대로 소리를 죽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집중을 방해한다고 해서 아나킨은 단 한번도 싫은 소리나 짜증을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스승 된 도리로서 제자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걸 도와주고픈 마음이 퐁퐁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 역시 스승인 콰이곤에게 그런 배려를 받으며 공부해올 수 있었기에, 그 배려를 자신의 제자에게 베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간을 좁히고 드라이버를 든 채 분해할 기계를 노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건 몇년만이던가. 벤은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이 모습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아무 고민 없이 자신의 제자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과거의 평화를 그리워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한참동안 아나킨을 바라보던 도중, 퍼뜩 갑자기 고개를 든 아나킨의 눈동자와 벤의 눈동자가 얽혔다. 아나킨은 벤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동공을 크게 키우곤 황급히 제 앞에 있던 광선검과 공구를 천으로 감싸 옆으로 치웠다. 대충 주변을 정리한 아나킨은 손질하던 고기와 채소가 담겨있는 냄비에 반타유를 붓고 불 위에 올려 두었다.

“미안해요 마스터. 마스터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미리 끓여 두려고 했는데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사과할 일은 아니란다. 그나저나 광선검, 고칠 수 있겠니?”

“아, 그게….”

아나킨은 냄비를 휘젓다가 한쪽으로 치워 둔 짙은 네이비 색 천을 바라보았다. 아나킨의 눈동자가 아쉬움에 잠긴다. 제다이는 자신이 쓸 광선검을 직접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손수 디자인하고 재료를 골라야 했으며, 광선검의 핵이 될 카이버 크리스탈까지 자신을 선택한 크리스탈의 시련을 통과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제작하는 과정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이 갈 수밖에 없었고 아나킨은 다른 제다이보다 그 애착의 정도가 심하긴 했다.

“힐트는 괜찮은데 안에 있는 카이버 크리스탈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시무룩한 어조로 말하면서도 아나킨은 어느 새 보글보글 끓어오른 스튜를 그릇에 담아 벤에게 내밀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냄새는 가끔 노숙할 때마다 그가 끓여준 스튜과 똑같은 포근한 냄새를 풍겼다. 벤은 요리를 못했다. 그건 벤의 과거인 오비완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에너지 캡슐로 끼니를 해결했던 탓에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만드는 요리마다 새까맣고 텁텁한 맛을 풍기니 그간 어머니의 요리에 익숙해진 아나킨이 오비완의 요리에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비완과 함께 처음으로 임무를 나간 날, 둘은 작전상 노숙을 해야 했던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에 아나킨은 반짝이는 눈으로 제 스승을 바라보았다. 사원에서 제공되는 밥은 어머니의 요리처럼 포근하지 않았다. 맛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비완이 직접 요리를 해준다고 했을 때, 아나킨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마스터라면 어머니의 요리처럼 포근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 기대감은 오비완이 내민 거무죽죽한 죽과 대면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색은 그래도 맛은 훌륭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을 다 잡았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쿰쿰한 냄새에 아나킨은 그 생각을 접어야만 했다. 맛없는 음식을 살기 위해 억지로 입에 밀어 넣으며, 아나킨은 맛있는 요리가 먹고 싶다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 각종 요리책을 섭렵했다.

만듦새는 물론 포근한 맛까지 똑같은 스튜를 입에 넣으며 벤은 이 사막 어딘 가에 묻혀 있을 자신과 아나킨의 광선검을 떠올렸다. 이제는 쓸 곳이 없는 쇳덩이는 아무리 예전에 아꼈다고 한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골칫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시련을 통과해 크리스탈을 얻고, 수많은 시간을 들여 성심성의껏 검을 만들었다고 해도, 벤은 더 이상 광선검을 소중하게 여길 수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누군가에게 줘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반란을 꾸몄다 궤멸한 제다이의 유품 따위 가지고 싶어하는 이는 없겠지만, 지금 벤의 앞에는 이 은하계의 일원이 아닌 이가 있었다. 그것도 포스의 밝은 면에 서서 평화의 수호자로서 임무를 행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대였다.

“그렇다면 내 광선검을 가져가거라.”

“마스터 걸 주겠다고요? 왜요?”

“제자가 곤경에 처했는데 어느 스승이 그걸 그냥 지켜만 보겠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기뻐요. 아마 지금 저보다 기쁜 사람은 전 은하계를 뒤져봐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마스터의 크리스탈은 안 받을 거예요.”

아나킨의 단호한 거절에 벤의 손이 뚝 멈췄다. 그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아나킨을 바라보았다. 아나킨은 제 몫의 스튜를 떴지만 한 입도 대지 않았다. 그 대신 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의 얼굴에 벤은 손가락만 바르작거렸다. 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그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의미였다.

“…이유가 있느냐?”

“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오랜 시간 동안 봐왔던 마스터의 광선검이 제 손에 있는 게 어색할 거 같아요. 그리고 순전히 제 욕심이지만, 일룸에 가서 당당하게 시련받고 제 크리스탈을 얻고 싶어요.”

“그럼, 일룸에 갈 방법은 있고?”

“음…. 그건 앞으로 생각해야죠.”

즉 쉬운 길을 마다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겠다, 쳤다. 광선검을 거부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아나킨스러운 대답이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제국의 눈에 띄지 않고 타투인에서 일룸까지 가는 여정은 험난하겠지만 그런 제자의 각오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 자체가 아직 벤이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마스터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라 입이 썼다. 게다가 그의 집중을 깨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발소리를 죽이지 않았던가? 벤은 아마 영원히 이 스승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아나킨이 멋쩍다는 듯이 웃으며 수저로 스프를 의미 없이 휘저었다. 평소라면 음식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하겠지만, 잔소리할 여유는 없었다. 동굴 호수의 차가운 물은 그간 벤을 방해하던 잡념을 씻어버리기에 적합했다. 잡념에 억눌려 있던 사고가 조금씩 돌아간다. 제다이가 몰락한 뒤로 머리가 이렇게나 가벼운 적은 처음이었다.

일단 수중에 우주선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은 없다. 아나킨이 가지고 있는 기계 부품을 팔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합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부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과 아나킨의 얼굴은 이미 제국군에 의해 전 은하계에 수배령이 내려진 상황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붙잡힐 게 뻔했다. 벤은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더욱 어두워진 하늘과 짙은 어둠이 깔린 사막. 부디 이 상황이 자신들을 숨겨 주길 바라며 입을 열었다.

“피곤하진 않니?”

단순히 상태를 묻는 것처럼 보이는 이 평범한 질문은 오비완과 아나킨이 마스터와 파다완일 때 사용했던 사인 중 하나였다. 이건 또 다른 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아나킨 역시 그 말의 진의를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뛰쳐나가도 괜찮을 만큼 쌩쌩해요.”

“그래, 역시 젊은 게 좋긴 좋구나.”

벤은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과 어조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자신이 세운 계획에 확신을 가진 스승과 그 계획을 진중한 표정으로 들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제자. 이 순간은 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옛날의 어린 마스터와 더 어린 파다완을 떠올리게 했다.

*     *     *

질리도록 괴롭히던 고통이 가라앉자 베이더는 박타 탱크의 버튼을 포스로 눌렀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탱크에서 나온 베이더의 몸이 지지대에서 대롱거렸다. 언제나 느끼는 굴욕감이다. 주인이 나온 걸 확인한 C-3PO는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부드러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의수와 의족,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갑옷의 착의를 도왔다. 그의 현 스승인 황제는 베이더에게 착의와 탈의를 도와줄 기계를 준비해주었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대부분 C-3PO에게 맡겼다.

베이더는 C-3PO의 다소 분주한 움직임을 보다가 제 몸에 한 겹, 한 겹 걸쳐지는 갑옷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위압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새까만 갑옷은, 그가 무스타파의 뜨거운 용암에 끔찍한 상처를 입으면서 상처를 진정시키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처의 치유’가 아닌 ‘상처의 진정’이었다. 갑옷에 기능을 추가해준 황제는 베이더의 끔찍한 화상을 치료해줄 생각이 없었다. 황제는 베이더가 화상의 뜨거움 속에서 상실의 고통을 복기하길 바랐고, 그와 동시에 오비완을 향한 분노와 집착, 애증을 키워 가길 바랐다. 그 감정이야말로 선택받은 자를 삼킨 어둠의 양분이 되어 주리라 의심치 않았다.

베이더 역시 시디어스의 의도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굳이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자신을 삼킨 어둠이 원하는 게 오비완을 향한 분노, 오비완을 향한 집착, 오비완을 향한 애증이라면 기꺼이 내어줄 생각이었다. 오비완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 따윈 아무것도 아니리라.

생각에 잠겨 있던 베이더는 문득 소리 하나가 비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갑옷도 없이 사막에 나간 행동에 화나 삐릭삐릭, -귀여운 소리와는 달리- 욕설을 내뱉어 줄 성질 사나운 드로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또 다른 친구인 작고 푸른색 드로이드의 부재에 베이더는 또 다른 친구인 금빛 드로이드에게 물었다.

“3PO, R2는 어디로 갔지?”

“말도 마세요. 아침부터 메인보드에 이상이 생겼는지 온갖 험한 말을 내뱉으며 방을 나간 뒤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아침이라는 말에 베이더는 시간을 확인했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박타 탱크에 들어갈 때만 해도 느지막한 오후를 가리키던 시곗바늘은 어느새 저녁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비완에게 정신이 팔려 자신의 드로이드가 자리를 이탈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3PO는 투덜투덜하면서도 중간중간 문을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말은 퉁명스럽게 해도 자신의 친구가 걱정되는 듯 보였다. 비록 철로 만들어진 피부와 구리로 이루어진 혈관, 노란 피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함께 지내며 쌓은 유대는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더한 반응을 보이며 걱정스러움을 내비치는 드로이드 덕에 베이더는 아이러니하게도 제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뭐,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오겠지. 내가 없으면 함선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오, 걱정이라뇨? 걱정시키는 녀석 따위 걱정한 적 없어요!”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걱정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괜히 꼬투리 잡았다간 이 수다쟁이 드로이드는 한 시간 동안 자신이 걱정하지 않았다는 걸 연설 수준으로 늘어놓을 게 뻔했다. 날 때부터 언어에 재능이 있던 옛 스승이 아니고서야 만들어질 때부터 언어에 특화된 드로이드를 말로 이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갑옷을 다 입힌 C-3PO가 마지막으로 흉흉한 투구를 씌우자 이질적인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딱정벌레처럼 새까만 갑옷은 이제 걸치지 않는 게 어색할 정도로 베이더의 일상에 녹아 들었다. 아까보다 편해진 숨을 몰아쉰 베이더는 자신의 방을 뒤로 하고 함교로 향했다. 자신이 박타 탱크에 들어가 있는 동안 어떤 보고가 올라왔는지 알아보고 그걸 토대로 사막에 나갈 참이었다.

“아, 베이더경. 안 그래도 모시러 가던 참이었습니다.”

함교로 들어가자 문 쪽으로 다가오던 장교가 말했다. 그가 이끈 곳으로 향하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작은 상자를 그에게 내밀었다.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이곳 저곳이 문드러진 낡은 상자를 베이더가 받아 들자 장교가 바로 스톰트루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다이가 그동안 생활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동굴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입니다.”

“네! 지뢰가 묻혀 있는지 탐색하던 중에 발견했습니다.”

하얀 갑옷을 입은 스톰트루퍼가 얕은 떨림이 서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개 스톰트루퍼는 물론 대부분의 부하가 자신의 앞에만 서면 두려움에 벌벌 떤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베이더는 굳이 그 떨림을 지적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공포보다, 제 옛 스승이 묻은 것으로 추정이 되는 이 상자에 깊은 관심이 갈 뿐이었다.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은 했나?”

“네, 피 묻은 천과 작은 인체 조직으로 확인됩니다.”

“…인체 조직이라고?”

다소 위화감이 느껴지는 단어에 베이더가 되물었다. 피 묻은 천이야 오비완이 다쳐서 난 핏자국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체 조직은 어디 살점이 뜯긴 게 아닌 이상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손가락이라도 잘라서 넣었나? 그렇다기엔 아까전에 본 그의 손은 거칠긴 해도 열 손가락 다 붙어있었다. 무엇보다 얼마나 중요한 인체 조직이길래 땅에 묻어가면서까지 보관하는 거지? 곧이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장교의 조심스러운 보고에 베이더는 누군가가 제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 느낌을 받아야 했다.

*     *     *

식사를 마친 벤과 아나킨은 동굴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고 사막으로 나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사막에서 보냈지만, 여전히 사막의 밤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 지 모르는 사막 강도나, 터스켄 약탈자, 그리고 뼈 채 녹여 버리는 사나운 사막 생물들이 득실 거리는 게 바로 타투인의 사막이었다. 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풍경에 미간을 찌푸렸다.

두 개의 태양이 쨍쨍한 낮에도 버젓이 범죄가 일어나는 곳인데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되면 얼마나 더 잔혹하게 변하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일개 도적들뿐만 아니라 제국군이라는 새로운 방해물까지 이 사막 곳곳에 있기 때문에 벤의 신경은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요, 당신은 너무 무모한 면이 있어요.”

그는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까 전 자신이 광선검을 사막 어딘가에 파묻어 놨다는 말을 듣고는 계속해서 저 상태였다. 벤은 제다이 기사단이 몰락하고 제국의 제다이 사냥이 계속되는 한, 광선검을 가지고 있어봤자 하등 도움되지 않는다고 십분 설명했다. 하지만 아나킨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기사단이 몰락한 것보다 스승이 광선검을 사막 어딘가에 파묻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줄이야…. 벤의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반응이지만, 아나킨 답다면 아나킨 다운 반응이긴 했다.

뭐, 여기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나킨의 얼굴을 보자마자 옥죄여 있던 긴장에서 훅 풀려버린 자기 자신이었지만.

“나이트 파다완 일 적 생각 못 한다더니, 네가 파다완일 때를 생각하렴. 다 너 보고 물든 거란다.”

“파다완은 마스터의 거울이라는 사원 속담도 안 들어 보셨어요? 제가 누굴 배웠겠어요. 게다가 저는 당신처럼 광선검을 사막 어딘가에 파묻어 두진 않는다고요.”

“말했잖니. 가지고 있어봤자 목숨만 빼앗긴다고. 그리고 나는 네 진짜 스승과 달리 더 이상 제다이가 아니야. 그저, 겁쟁이일 뿐이지.”

“당신이 정말로 겁쟁이라면 제가 일룸에 가겠다고 했을 때 같이 가주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 말솜씨가 제법 늘었구나. 내 말에 대꾸를 다 하고.”

“제가 매일 누구랑 대화한다고….”

대화를 잘만 이어 나가던 아나킨은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고 왔던 길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아나킨?”

“잠시만요. 스피더 소리가 들려요.”

평소와 달리 다소 경직된 목소리에 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나킨은 벤의 손목을 잡고 커다란 암석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아까 낮에 사건이 있었던 허허벌판과는 달리 이곳은 바위와 커다란 돌이 많았고, 몸을 숨기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벤이 조용히 귀를 기울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피더 특유의 엔진음이 들렸다. 벤의 귓가에 닿는다고는 해도 무척이나 작은 소리라 일반인은 듣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아나킨은 그보다 먼저, 벤이 들은 소리보다 더욱 작은 소리를 기민하게 잡아챘다. 아나킨의 감각이 예민하다는 건 그와 함께 지낸 순간부터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마주한 사실이라 제법 낯설게 느껴졌다.

스피더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곧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얀 갑옷을 입은 두 명의 스톰트루퍼. 광선검을 되찾은 뒤에 만났다면 모를까, 수중에 무기가 하나도 없는 지금으로선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낼 정도로 달리던 두 스피더가 벤과 아나킨을 살짝 지나친 시점에서 멈춰 섰다. 두 사람을 발견한 건 아니고, 그냥 휴식 차 멈춘 듯 보였다.

그냥 지나가길 바라며 둘을 노려보듯이 보고 있던 벤을 향해 아나킨이 말했다.

“마스터, 저 스피더 필요해 보이지 않아요? 갑옷도 그렇구요.”

“뭐?”

“왜 그렇게 놀라요? 이 사막 어딘가에 마스터가 묻어둔 광선검 상자를 찾고, 제국인지 뭔지의 함선에 침투해서 하이퍼 스페이스가 가능한 비행선 하나 빼돌리는 게 마스터의 작전이잖아요. 갑옷이랑 스피더가 있으면 훨씬 수월할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험한 사막을 두 다리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스피더를 타고 다니는 게 효율적이었고,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제국 함선에 잠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딘가에 잠입하기 위해서는 그곳과 분위기를 맞추는 게 가장 기본 작업이다. 저들이 입고 있는 제국군의 하얀 갑옷은 감이 좋은 베이더의 눈은 몰라도 다른 제국군의 눈을 쉽게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모든 건 아나킨이 일룸에 가서 망가진 광선검을 고치기 위한 여정 중 하나일 뿐이다.

“포스를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될지는 모르겠구나.”

“그건 걱정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당신이 제자를 어떻게 키워냈는지 구경하고 있으세요. 이제 슬슬 제 효도 받으실 때도 되셨잖아요.”

“효도라니? 난 아직 정정하단다. 그리고 계속 너한테 의지만 하고 숨어만 있으면 포스를 어떻게 쓰는지도 까먹을 거다.”

“마스터, 제가 파다완일 때 너무 조급하지 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급하게 굴다간 잘 될 일도 그르친다고요.”

“그건, 그렇지만….”

“당신이 저를 제다이로 만들어준 것처럼 저도 제다이가 아닌 당신을 제다이로 만들어 드릴게요. 약속해요.”

스승의 눈에 제자는 언제나 9살밖에 안 된 꼬마로만 보였다. 아나킨과는 10년을 넘게 부대끼고 산 탓이었다. 게다가 제자는 아무리 해마다 나이를 먹어도 철이 없었고, 가끔가다 나오는 무모한 어린아이의 버릇 때문에 더더욱 9살 꼬마와 겹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아이를 제자로 데려오면서 아이에게 했던 약속을, 이제는 다 자란 아이에게 듣게 되다니.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이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다.

“그래. 생각해보니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지. 얼마나 대단하게 자랐는지 봐주마.”

아나킨은 제 로브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이러니까 같이 임무 나갈 때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고 있으니 언제나 말 안 듣고 멋대로 뛰어나가던 무모한 꼬마가 생각나는구나.”

“그런 건 안 떠올리셔도 돼요.”

벤이 일부러 짓궂게 말하자 아나킨은 멋쩍게 웃고는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제국군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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