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n] 글

Falling Down 6

underneath 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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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파출소에는 낯익은 이들이 낯설게 방문하였다. 그들은 멜레멜레의 할라와 아칼라의 라이치였다. 요 며칠동안 나누는 순무를 달래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터라 예고도 없이 오랜만에 만나는 손님들을 미적지근하게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달래준다는 명분도 갖다붙이기엔 민망할 정도로 둘은 어떠한 관례처럼 눈이 맞으면 잠자리를 가졌다. 전날 밤에 해놓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적도 있었다. 즐거운 고통마냥 몸 곳곳엔 근육통이 따라다녔고 청년의 어딜 어떻게 만지면 좋아하는지도 알게 될 정도였다.

"두분이서 어쩐 일이래?"

나누가 미리 교육시킨대로 방문객이 오자 순무는 재빨리 파티션 너머 침실로 도망쳐서 숨어있었다. 순무가 없어지자 나옹들이 할라와 라이치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놀아달라고 울어댔다. 할라는 손을 저으며 그들을 쫓아냈다. 성큼성큼 걸어서 업무용 책상을 사이에 두고 나누 앞에 마주선 할라는 잠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라이치도 할라를 뒤따라와 말없이 그 옆에 섰다.

"아니, 오랜만에 보는데 표정이 왜이리 살벌하십니까."

설립된 지 얼마되지 않은 알로라 리그의 경기 개최는 내년 봄이었기에 실제로 각 섬의 대표들과 얼굴 마주칠 일은 당분간 드물었다. 다들 생업을 살아가느라 바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온 것과 할라의 진지한 표정에 나누는 위기감을 느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인가?"

할라가 불쑥 꺼낸 말에 나누는 눈썹을 찡그리고 무슨 말인지 해석하려고 했다. 기본적으로 파출소를 벗어나지 않기에 사람들 사이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 큰 소동이 아니면 잘 모른다. 아마 그 소문이 나누에 대한 것이기에 두사람이 찾아온 것이리라.

"자네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다던데."

"예?"

"이런 말 드리긴 좀 그렇지만… 사생아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전 섬에 소문이 퍼져있어요, 나누님."

라이치의 말에 나누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가 전에 순무와 말리에 시티에서 밥을 먹고 쇼핑한 것, 며칠 전에 말리에 정원에서 느긋하게 산책한 것이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사람들은 참 웃기다. 이상한 소문을 내서 헐뜯고 자극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옛날부터 게으르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태도가 섬의 왕답지 않다며 나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고작 청년과 함께 있던 것만으로도 갖가지 이야기를 지어내다니 대단한 정성이다.

"…그럴리가요. 여기서 혼자 산 지가 벌써 몇십 년인데."

관광객들 중 닮은 사람들을 보고 다들 착각한 거 아닙니까? 능청스레 웃으며 그렇게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알로라 사람답지 않은 이목구비, 백발에 붉은 눈이 그리 흔한 외모는 아니지."

할라의 대답에 나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의 말대로 나누는 알로라에선 유난히 두드러지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가 한 말처럼 몇십 년을 한 곳에서 살아왔으니 얼굴은 온갖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는 셈이었다.

더이상 나누가 대꾸하지 않자 할라는 혀를 한 번 차고 몸을 돌려 파출소에서 나갔다. 라이치는 나누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본 적이 없으니 믿지 않겠지만, 아무튼 조심해주세요. 아칼라 사람들에겐 아니라고 할 테니 울라울라 사람들에게도 잘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라이치도 떠나자 나누는 즉시 표정이 굳어졌다. 숨겨진 자식이니 사생아니 참으로 웃기지만 이대로 놔둘 수만은 없었다. 오해를 풀고 질낮은 소문을 잠재워야했다. 고민에 빠져있던 나누는 오랜만에 멜레멜레에 있는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 이런, 그들도 추잡한 그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숨겨진 자식이란게 혹시 순무인 거 아니냐고 묻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휴대전화 너머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한숨은 왜 쉬는데? 그럼 애가 안에만 처박혀있어야 돼?"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하면 그게 아니라 순무의 몸에서 뿜어지는 에너지때문에 혹시나 비스트들이 나타나 위험해질까봐 그렇다고 대답해온다. 최근, 나누는 순무와 육체적인 정을 통하는 데에 몰두하느라 그 사실에 대해선 잊고 있었기에 아차했다. 더는 대들지 않고 알아서 조심하겠다는 말을 남긴 뒤 통화를 종료했다.

하마터면 멍청한 짓을 저지를 뻔했다. 순무가 여태 불안해하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다시 떠올린 나누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불안을 잠재우는 데에 외부에서의 활동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활발해지고 좀 더 많이 웃고 들뜨는, 그 나잇대처럼 엉뚱한 실수도 많이 하는 청년이 되기를 바란다.

그 때, 순무가 파티션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제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누는 손님들 갔어, 하고 대답했다. 순무가 나타나자 나옹들이 울어대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누는 나옹들을 쓰다듬어 주며 활짝 웃는 순무를 보고 생각한다. 저 아이를 숨겨야겠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면식이 있는 기자에게 연락을 하여 소문이 더 과장되기 전에 오해를 풀도록 일간지에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에 알로라 일간신문의 기사를 읽은 나누는 만족스러우면서도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기분이 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생각나지 않았으나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었다. 떠도는 소문에 대해 나누가 얘기해주었기에 소문의 내용을 알고 있는 순무에게 모국어로 기사를 읽어주었다. 다 읽어주면 순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걸로 오해가 풀릴까요?"

아침을 먹다만 순무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는 나누를 쳐다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라 나누는 기사까지 냈으니 괜찮을 거라고 대답해준다. 고향지방에서 관광을 하러 온 나누의 친척. 일단 이렇게 매듭지어놓으면 누구든 쉽게 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순무는 자기때문에 나누에게 억지스러운 꼬리표가 달린 것에 대해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나누는 그를 옆자리로 불렀고, 순무가 옆에 앉자 두 손으로 갸름한 얼굴을 감쌌다.

"고개 들어."

주욱 찢어진 눈망울은 이미 그렁그렁했다. 대답대신 순무가 눈을 꼬옥 감자 투명한 눈물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나누는 엄지손가락으로 그것을 쓸어서 치웠다. 눈물을 보이는 걸 성가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눈물을 보이게 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하면 순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훌쩍거렸다. 소년. 이리와. 나누는 팔을 펴서 그를 안아주었다.

이상하게 날이 갈수록 순무가 작은 일에도 과장스럽게 반응하며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누는 그저 아직 마음 속에 불안한 것들이 많아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겨짚을 뿐이었다. 청년이 진정성을 띄고서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기에 그런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순무의 얼굴을 놓아준 나누는 이제부터 남들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 최근처럼 추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다 순무는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한 감추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판단했다고 설득하면 순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오후에 순무는 비좁은 침실에 들어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나옹들의 발톱때문에 눈꼽만한 구멍이 뚫린 바지들을 꿰매면서 다른 옷들도 봐주는 중이었다.

그동안 나누는 또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바로 신문을 보고서 오랜만에 파출소로 찾아온 동료들이었다. 순무의 상태에 대해 그가 더는 기억나는 것이 없는지, 머리가 아프다든가 하는 징조를 보이는지 물어보았다. 조금도 없었다고 대답하면 약간 실망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난 이제 쟤를 밖에 내보내지 않을 거야."

동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통화했을 때와 다르게 갑자기 태도가 변한 나누에게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 하는 짓을 보니 퍽이나 뭐같아서 도통 데리고 다닐 수 있어야지. 다짜고짜 그딴 엉뚱한 소문을 내면 누가 좋아하겠어?"

"순무도 그걸 이해해줬어요?"

리라가 묻자 나누는 순무의 눈물을 떠올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살던 시대가 다르다 해도 신변보호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어."

"아, 그러고보니 요전번에 본부에다 폴로 추정되는 아이가 있다고 보고를 올렸는데……."

그 말에 나누는 눈썹을 꿈틀댔다.

"과거 기록, 그러니까 우리가 일하기 훨씬 전이지. 그때의 기록도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왜 그런 짓을 했어?"

"…뭐?"

핸섬이 흠칫하고 신경질적인 말투의 나누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은 보호자인 자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동료들이 멋대로 일을 진행한 것에 화가 난 나누도 인상을 찡그렸다.

"왜 멋대로…!"

"하지만 좀 오래된 일이야! 아직 본부에선 연락도 없고 우린 네가 그 아이를 숨겨두려고 할지 몰랐지!"

아아, 나누는 작은 신음을 내뱉고 책상 위에 있던 담뱃갑을 손에 들었다가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보고서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두었다.

"왜 그러는 거야? 우리가 잘못이라도 했어?"

핸섬과 리라가 본부에 폴에 대한 자료들을 요청한 점, 폴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했다고 보고한 점이 화근이었지만, 현역인 그들이 메뉴얼대로 일을 처리했기에 동료들을 나무랄 수 없었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괴상한 소문이 생긴다는 이유로 청년을 숨기려는 자신이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그는 굉장한 모순과 딜레마에 빠져서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만약 본부에서 조사하러 여기까지 온다면… 그 생각에 더는 초조함을 견딜 수 없어진 나누는 결국 책상 위에 올려둔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손을 뒤통수로 돌려 연기가 바깥으로 나가도록 창문을 더 크게 열었다.

"아니, 잘했어."

그렇게 내뱉은 말투는 좀전과 달리 싸늘했다. 나누는 둘이 긴장한 것이 눈에 보였다. 그들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할 일들이 많다면서 슬슬 자리를 피했다. 쌩하고 나가버린 핸섬과 달리 파출소를 완전히 나서기 전, 리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늘 이성적이고 냉철한 리라답지 않게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누는 그런 그에게 손만 한 번 슥 들어보였다. 괜히 여유있는 척을 한 것이다.

동료들이 다시 멜레멜레를 향해 돌아가자 나누는 자기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해서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엘리트라 일컬어지던 사내는 어디가고 지금은 굉장히 꼴사나운 늙은이가 하나 앉아있었다.

"아저씨…?"

"아, 별 일 아냐."

어느새 나온 건지 순무가 침실에서 나와있었다. 큰 소리가 나서 걱정했다고 하면서 파티션을 드륵 밀고 다가온다. 나누는 싸운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 싸운 건 아니었고 나누가 먼저 으르렁대며 싸울 뻔 했다. 동료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저기… 국제경찰 본부에 저라는 존재가 알려지면 어떻게 돼요?"

늘 앉는 왼쪽 자리에 푹 앉은 순무가 물어오자 나누는 담배를 태우며 한숨을 쉬었다.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고 겪고 싶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직접 물어보니 말문이 막혔다. 나누는 왼손을 들어 순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 여린 마음을 가진 청년이 낯선 곳에 끌려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무채색 눈동자가 여전히 호기심에 차있기에 나누는 입을 열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러길 바래야지.

순무는 자기도 가고 싶지 않다며 나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나누는 순무의 어깨를 탁탁 두드려주며 이 순간만큼은 자기도 이렇게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라고 했던 대답과는 다르게 그럴 일이 생겨버렸다. 동료들이 다녀간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누는 그들에게서 연락을 받게 되었다. 본부 쪽에서 사람을 파견해 알로라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누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거에 겪은 일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본부에서 폴이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지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신체검사, 체내 에너지 발원점 조사 등 갖가지 검사를 당하게 되고 몸에서 발원되는 에너지량이 적합한 수준이라 판정되면 홀을 여는 미끼가 될 수도 있었다. 그동안 별다른 소동이 없었기에 청년의 몸에서 뿜어지는 에너지량은 적을 거라 생각되지만 만약 조사 후에 그 수준이 일정 한도에 도달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미끼가 되어버린다면, 청년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것은 실제로 나누와 핸섬이 젊었을 때 팀을 이루고 알로라에 왔을 때 직접 경험한 것이었다. 그 때는 순전히 핸섬의 잘못이었으나 둘은 함께 징계를 받았고, 괴로워하며 정신 못차리던 핸섬을 두둔하던 나누는 면직당하고 알로라로 좌천되었다. 그 때부터 다들 꺼려하던 17번 도로의 파출소의 담당을 하고 있다.

동료들은 이제 순무가 기억을 찾을 수 있게 됐으니 잘 된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나누는 자신의 속사정까진 말 못하고 그 애가 아직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밤엔 잠도 혼자 못 잔다고 둘러댔다. 이것은 거짓말에 가까웠다. 매일밤 순무가 잘 잘 수 있도록 어루만져주며 쓰다듬고 귀여워해준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순무는 슬슬 어둠을 극복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항상 나누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지만 이제는 먼저 잠들기도 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 칼같이 냉철하던 나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의아해했다. 순무가 파출소를 떠난다면 나누에 대한 의심과 소문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 것이고 순무도 빠르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누가 순무를 넘겨주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아니 됐고, 다른 얘긴 없었어?"

초조해진 나누는 전화를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몇번씩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짧게 깎은 손톱이 손바닥 살을 꾹꾹 누르자 간지러웠다. 본부 사람들은 우선 핸섬과 리라를 만나 자세한 보고를 듣고 파출소로 찾아올 예정이었다. 나누는 곁눈질로 파티션을 쳐다보았다. 저 너머에 잘 숨기면 절대 들키지 않겠지. 그러면서도 동료들의 의구심처럼 갈등이 되었다. 순무를 위한다면 본부로 보내어 그가 기억을 찾도록 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순무가 그곳에서 겪을 일들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혹시나 미끼라도 되어버린다면….'

게다가 나누도 '현역'이긴 하지만 파출소나 관리하고 있기에 미끼를 따라 현장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청년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죽을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넘기든 넘기지 않든, 양쪽 다 순무에게 미안한 일이라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화 너머의 동료들은 나누의 고충을 이해하긴 하고 있었다. 순무가 아직 나누의 보호에서 벗어나기엔 이르다는 그의 변명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순무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우선시했다. 그것이 '현역'인 그들에게는 제일이었다.

나누는 일단 통화를 종료했다. 순무를 숨기면 보고를 올렸던 동료들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나누는 결국 순무를 본부에 넘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순무에게는 조만간 본부에서 사람들이 올 테니 조심하라고 말해두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나누는 또다시 동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본부 쪽에서 멜레멜레로 가지 않고 곧바로 파출소로 향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식사를 하며 일간 신문을 보던 나누는 깜짝 놀란 나머지 큰 소리를 내고 말았고, 나누의 목소리에 놀란 나옹들은 재빠르게 의자 밑이나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놀란 것은 순무도 마찬가지였다. 커피를 마시다가 내뱉을 뻔한 그는 가까스로 커피를 삼킨 뒤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누를 쳐다보았다.

"이미 서면으로 보고를 받아서 시간 절약하는 셈이겠네?"

나누는 인상을 찌푸리고 물었다. 핸섬은 그렇다고 봐야지, 라고 대답해왔다.

[그런데 나누, 자꾸 피하려는 건 좋지 않아.]

"…나도 알아."

[그럼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

나누는 이 새파랗게 어린 녀석과 뒹굴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어떻게 말하나 싶어서 궁금해하진 말고 일단은 냅두라고 대답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는 고민에 휩싸인다. 순무가 나누에게 무슨 일이냐며 괜찮냐고 물어왔다. 나누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순수하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보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나누가 다른사람과의 대화에서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처음 봤기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한동안 말없이 최후의 수단만 생각하던 나누는 단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당장 짐 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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