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후
독백
그 애 머리가 굽어진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던 이유가 심한 곱슬머리여서가 아니라 묶었다 푼 자국이 남은 것이었음을 나는 바보같이 한참을 지나서 알았다. 비행 중 묶은 머리에 헬멧을 쓰고선 한참을 상공에 있다 내려오면 묶었던 모양대로 굽을 수밖에 없지. 대충 풀어 엉킨 머리를 풀기 위해 손가락을 꼼질 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드디어 내가 미쳤지. 우습다고만 생각했던 그 머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얇은 가닥가닥 사이를 노니는 손가락이며, 바람에 날리는 잔머리를 멍하니 보다 보면 색소 옅은 머리칼을 한 번 쓸어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게 굴면 뒤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선 네 친구가 날 처리하겠지. 불사조라는 콜사인에 걸맞게 날 노려보는 눈빛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다. 눈치라고는 조금도 없는 네게 다가가기까지 헤쳐나갈 난관이 참 많다.
“뭘 그리 빤히 봐.”
“네 머리.”
“보지 말란 뜻이잖아. 맥락 못 읽어?”
팔을 뻗어 닿기에는 먼 거리에서 더 가지 못하고 눈으로만 닿는다. 크게 굽은 머리칼 속 작게 웨이브 진 머리칼이 잔뜩 엉켜있다. 땋고 꼬아서 잔뜩 복잡하게 틀어 올린 머리를 한 번에 풀어내려니 그렇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양손에 쥐고 뜯는 걸 보다못해 말리려 다가간다.
“이리 와 봐.”
“뭐야? 네가 와.”
슬쩍 들고 있던 음료를 넘기고 뒤로 가 선다.
“머리를 그렇게 막 푸니까 엉키는 거 아냐. 포크라도 가져다줘, B?”
“왜 갑자기 찾아와서 시비야?”
“프라푸치노도 갖다 바치고 엉킨 머리도 풀어주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어? 그런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멍청하게 넘어가는 네가 웃기면서도 혹여나 나 말고 다른 놈들에게도 이럴까 불안하다. —가 뭐랬더라. 괜히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그랬던가? 저도 모르게 동생에게 하듯 챙기게 된다 그랬던가? 겉으로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인어공주님의 왕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우스울 뿐이다.
날 뒤에 두고 네 앞의 동료에게 조잘대는 모습이 퍽 연인처럼 보일 것 같아 기분은 좋다. 비행이 끝난 직후의 흥분에 아직 홍조가 가시지 못한 네 뺨이 음료를 머금고 우물거린다. 슬쩍 손끝으로 건드려보려다, 얌전히 그 뒤편의 머리카락이나 걷어준다. 그것마저 간지러웠을까, 어깨를 움츠린다. 그 모습이 마치….
“다 됐어.”
“오, 빠르잖아? 종종 부탁해?”
아, 진정하자, A. 저 말갛게 웃는 애를 데리고 뭘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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