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n] 글

그들 사이의 미지수 2

underneath 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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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오른손에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들고 나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나누가 했던 말-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겠다던 말에 어떻게 대답했더라?

사실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당황한 나머지 멍청하게 나누를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 표정을 보고 나누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끊임없는 생각들은 순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순무는 이불을 품에 꽈악 안고 얼굴을 묻었다. 그래봤자 좋은 향이 날 뿐이었다.

순무가 실컷 괴로워한 뒤 일어나서 토요일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후, 나누도 작은 방의 침대에서 깨어났다. 키우는 고양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밥을 달라며 끊임없이 이마를 툭툭 쳤기 때문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뒤 협탁에 올려두는 담배와 라이터를 주머니에 쑤셔넣은 나누는 하품을 하며 방을 나섰다.

우선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고, 미지근한 물로 대충 세수를 했다. 그런 다음에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올 것을 그랬다. 어제의 회식때문에 갈증이 나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순무가 생각난 나누는 밤새 조금 자란 턱수염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그를 떠올렸다.

선생님이라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순무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누는 대답을 재촉하듯 눈썹을 한 번 올렸다 내렸다. 순무는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뭐 그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본 순무의 얼빠진 표정에 피식 웃음이 삐져나왔다. 또 이렇게 그를 생각하자 실없는 웃음이 나와버린다. 그리고는 어떻게 됐더라…… 아, 잘 가라 하고 헤어졌었지. 술 다 깨신 것 같으니 이만 가서 쉬라고 하면 순무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누도 그 길로 돌아와선 늦게 왔다는 고양이의 잔소리를 듣고 잠들었다.

사실 그렇게 더 있을 수 있었지만, 둘이 어색해질까봐 빨리 돌아온 것이었다. 또한 계속 거기 있으면 권수나 다른 교사들이 지나가다 볼 수도 있었기에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는지, 왜 이렇게 되어 가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깊이를 몰라 발이 닿이지 않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다. 그와의 관계를 그렇게 느낀다면 나는…….

나는 두려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 그러나 자신과 순무 사이에서 느끼는 것은 두려움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계속 친해져도 될까……."

아무도 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마음 속에서 맴도는 말은 귀로 직접 들어야 생생하기 때문이다.

친해지면 자신에 대해 알게 될 것이 많다. 그것은 나누가 사회 속에서 타인을 만날 때마다 꺼려하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교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이끌리게 하는 순무와 이런 자신이 더 친해져도 될지 다시금 고민이 된다. 적당히 거리를 두기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 사람이랑 있으면 이상해진단 말야.'

손가락 끝으로 톡 쳐서 재를 날려보낸 나누는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현재 모순적이게도 순무와 벽을 두고 싶어 하면서도 그 벽을 허물어버리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언제나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왔다. 오히려 그게 편했는데, 순무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외롭게 살았더니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가 됐나.'

또래보다 꽤 일찍 철든 나누는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똑같았다. 함께 성장하고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은 중요한 시기마저 친구를 적게 사귀며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이제는 몸이 외롭다며 아우성치는 걸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어가자 마음에도 변화가 오는 모양이다.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친하게 지내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월요일이 되자 나누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는 졸졸 따라다니며 놀자고 부르지만 출근 준비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 끈질긴 성격은 아닌지라 고양이는 나누가 관심을 주지 않자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아직 온기가 남은 침대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일찍 일어난 데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슬슬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했다. 초임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과한 업무들과 병행하기에 서둘러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면도를 하면서, 일찍 출근하면 순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했다. 높을 확률로 놀랐다가 농담을 할 것이다. 교무 부장인 권수는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당분간 부지런히 출근해서 아무 소리도 못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이 시간엔 사람이 별로 없네.'

버스 창문 너머 보이는 정문에는 순무도, 학생부 부원도 없었다. 아직 지각 단속을 할 시간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나누는 소수의 학생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후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그리고는 언제나와 같은 걸음걸이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게 오랜만이라 약간 긴장된 채 교무실로 들어가면 앗, 하고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지 않아도 아는 나누는 속으로 웃었다. 재빠르게 둘러보면 권수는 자리에 없었다. 얼굴에 아무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서 자리로 간 뒤, 옆자리의 순무에게 인사를 했다.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오세요?"

"이제 슬슬 중간고사 준비 해야죠."

"아아……."

준비했던 대답을 하면서 바라본 순무는 이미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서 서류를 보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순무의 눈동자가 어딘가로 향한다.

"단추."

그의 한 마디에 나누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가슴께를 한 번 보았다.

"이 시간은 아직 좀 쌀쌀해서요."

아무렇지 척을 유지한 나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지었다. 작은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 기뻤다.

곧이어 출근한 권수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나누를 보더니 흠칫했다. 오늘도 월요일부터 늦게 오냐며 혼을 내려 했을 것인데, 일찍 와서 열심히 일하는 걸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본 순무는 권수의 표정이 어땠는지 메모지에 써서 나누에게 슥 내밀었다. 메모를 읽은 나누는 고개를 숙이고 남몰래 웃었다. 어쩐지 한 방 먹인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순무와 더욱 친해져도 괜찮을지, 마음을 다잡지도 못한 채 학교는 중간고사 준비 기간에 돌입하게 되었다. 같은 교과목을 담당하는 수학 교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짜며, 시험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배워갔다.

방과 후에 가끔 남아있기도 했는데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교사들이 드물었기에 나누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느긋하게 일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이따금씩 출퇴근용 옷으로 갈아입은-분명 퇴근했을 것인 순무가 교무실로 다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의 손에는 자잘한 간식 거리가 들려 있었다.

"곧 끝나서 가려고 했는데."

"이왕 왔으니 받으세요."

나누는 머뭇거리다가 순무가 내민 것을 받았다. 괜히 미안해져서 묻는다.

"일부러 다시 오신 거에요?"

"그건 아니고, 지나가다가 들렀어요."

퇴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누는 두어번 눈을 꿈뻑거린 뒤 다시 평소처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순무는 곧 가실 거면 기다려 주겠다고 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면 이런 차림으로 옆에 앉아있는 게 오랜만이었다. 체육 교사인 순무는 출근하면 언제나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모든 체육 교사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티셔츠 위에 데님 셔츠를 걸친 캐주얼 스타일의 순무가 교무실에 있는 것은 꽤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언제나 지적하는 단추! 와 달리 모든 단추를 풀고서 소매도 손목까지 걷고 있었다. 무심코 핏줄이 불거진 손등을 한 번 쳐다보게 된다.

순무가 기다리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워진 나누는 내일 해야지,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교내를 벗어나며 나름 직장 선배인 순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매일 아침마다 둘이 마주치는 정문을 지나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선생님은요?"

"전철 타고 다녀요."

여태 궁금하지 않았기에 순무가 어떻게 출퇴근을 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누는 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 감사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저어……."

그러나 순무는 인사를 하지 않고 입을 오물거렸다. 나누는 왜 그런지 궁금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데 마침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고 있었다. 나누는 다급하게 내일 보자는 말만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손을 흔들어 차창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순무에게 인사를 날렸다.

'꼭 도망친 것 같잖아…….'

분명히 무언가를 말하려는 표정이었는데.

손에 든 휴대전화형 포켓치를 보며 덜컹거리는 버스 소음을 듣고 있자 멍해진다. 그러자 빈 머릿속이 순무로 가득 채워진다. 급하게 가서 미안해요.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말았다.

집에 돌아가서도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작게 입술을 뻐끔거리던 순무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물어보고 싶지만, 동시에 그럴 용기도 나지 않는다. 계속 순무에 대해 신경쓰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되어 갔다.

그런 껄끄러운 헤어짐 이후, 둘 다 갑자기 바빠져서 대화가 줄어들자 조금은 편했다. 일에 집중을 하면 사사로운 것들에 대해선 잊어버리는 법이다. 정말로 도망친 것처럼 되었지만 그렇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나누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고민거리처럼 죄책감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순무 또한 나누처럼 권수를 비롯한 체육 교사들과 시험에 대해 토론을 하고, 맡은 업무를 처리해갔다. 처음으로 하는 일들이 힘겨운지 부쩍 말수가 줄어든 나누가 신경쓰이기도 했다. 같은 교과목이 아니라 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 번 집에 놀러가도 되냐는 말을 꺼낼 타이밍을 못 잡겠어.'

허둥지둥 헤어졌던 그 날, 순무는 그렇게 묻고 싶었다. 나누가 사는 곳이 호연 어디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방은 어떤 식으로 꾸며놓고 사는지 궁금했다. 교통 수단에 대해 물었기에 자연스럽게 질문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정신없이 바쁠 때였기에 느긋한 시기에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프로그램으로 중간고사 시험지 채점을 하는 나누의 얼굴은 언제나와 같이 멍해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순무는 옆에서 기웃대며 어떻냐고 물었다. 수학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았기에 나누는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순무는 소리죽여 웃었다.

"알고 보면 꽤 재밌는 과목인데."

나누의 투정부리는 듯한 말투에 순무는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생정도 됐으면 웬만해선 새로운 학문에 빠지는 게 어렵다고 봐야죠."

"그렇죠."

"저는 오래 앉아있는 체질이 아니었어요. 고향이 산 위에 있던 마을이라 항상 여기저기 돌아다녔거든요. 책 읽는 건 좋아하지만 문학 수업처럼…… 깊이 파고드는 건 안 좋아했어요. 커서도 그렇더라구요."

"어울리시네요."

싱긋 웃는 나누의 단답을 끝으로 순무도 입을 닫았다. 나누도 학생 때 어떤 아이였는지 묻고 싶었지만 교무실 내에 듣는 귀들이 많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소중한 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같은 욕심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그를 자신만 알고 싶은 그런 욕심 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순무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듯한 애매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나이도 같고 자리도 바로 옆이고 자신보다 느긋하고 차분하여 동경할 만한 사람. 알고 싶은 것이 많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자꾸만 잘 해주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 부담스러워 할까봐 다가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한 걸음 내딛으려 하다가도 시큰둥해 보이면 다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어딘가 예민한 듯한 나누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은 순무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뒤로 숨겼다.

그러나 그 마음이 계속 커가며 숨길 수 없는 크기가 되어 가고 있음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다. 무엇을 먹고 커가는지는 알 수 없는 미지수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둘만 되었을 때, 드디어 순무는 용기를 냈다. 나누와 마주보고 앉은 채 선생님은 학생 때 어떤 학생이었는지를 물었다. 하필 그런 질문을. 물을 마시는 척 한 나누는 잠깐 시선을 피했다.

"그냥 조용하고 평범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았어요."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은 빈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대답한 나누는 눈동자를 올리고 순무를 쳐다본다.

"선생님이야말로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저보다는 재밌는 학창시절을 보내셨을 것 같아요."

순무가 좋아하는-누구나 호감을 가질 듯한 미소로 물으면 가만히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어려웠다. 이렇게 되는 게 아닌데…… 라고 생각한 순무는 사고뭉치였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툭 하면 산으로 올라가서 놀다가 다치고, 동네 어르신들 집에 불쑥불쑥 찾아가 배짱좋게 간식을 얻어먹고, 부모님에게 거의 매일 혼나는, 정말로 천방지축이었다. 꼬맹이 순무가 커서 어울리지도 않게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교무 부장님이요?"

나누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제가 학생 때 특기생이었거든요. 대회에도 나가고 그랬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결국 선수는 못할 것 같아서 때려치고 선생님이 되기로 했어요. 그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권수에게 미움받는 나누마저 그에 대해 인정하는 점들이 있었다. 권수는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교육자였다. 일 처리 솜씨도 빠르고 정확했으며 학부모들에게서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불만을 표정에 드러내며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런 권수가 그를 열심히 따르던 순무를 예뻐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뻔했다.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리며 친해졌겠지. 선수가 되는 길에서 방황하고 좌절한 순무를 가장 가까이서 위로하며 기운을 차리도록 만들었겠지. 청춘이 따로 없구만.

애지중지하는 제자가 질 나쁜(?) 동료와 친하게 지내는 게 눈엣가시라는 건 놀랍지도 않다. 나누는 그렇게 생각하고, 계속해서 순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식사를 했다.

나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순무는 또 그가 요령좋게 빠져나간 것이라고 느꼈다. 어렴풋하게 생각해오던 것이 명확해지자 그의 입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말겠다는 결심이 세워진다.

방어적인 성격치고는 교사들이나 학생과는 무탈하게 지내는 것도 나름 신기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앞으로도 교사로 있기엔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다. 순무는 나누에 대해 이해하며 그가 단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나아가고 싶어도 아직 미지수를 알아내지 못한 그들의 진전없는 관계는 여전했다. 어영부영 여름을 코앞에 둔 오월이 다가오자 이학년들은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성도 지방에 볼 게 많으니 매년 호연에서 성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한다.

첫날은 인주시티를 자유롭게 둘러보고 다음날은 인주시티에서 전통 가극을 본 뒤, 두 개의 탑을 보러가기로 되어 있다. 셋째날은 금빛시티로 가서 라디오탑 견학을 하고 호연으로 돌아오는 간단한 일정이다.

부담임인 나누는 일정표를 받았을 때부터 딱히 가고 싶지 않았다. 고향이기도 하고, 성도에서 살던 학생 때에도 매번 인주시티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갔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도 모두 다 학생 때 가본 적 있는 곳이었기에 헛웃음만 나왔다. 어쩜 복사한 것마냥 똑같은지.

순무는 이학년 지도 교사 자격으로 함께 가게 되었는데, 난생 처음 가보는 성도 지방이 어떤지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나누에게 그곳의 풍경에 대해 묻기도 하고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조사를 하기도 했다.

출발 당일은 날씨도 좋았다. 청량한 하늘과 따스한 기운은 나들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에 반해 나누는 별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비나 오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자신이 부담임으로 속한 반의 학생들이 담임 교사의 지도를 따라 줄을 서고 있는 걸 지켜보다가 저 멀리 순무의 모습으로 눈길을 돌렸다.

순무는 편한 복장을 하고서 학생들을 둘러보며 아프거나 이상이 있는 학생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누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순무를 보다가 이윽고 제정신을 차리고 순무처럼 자신의 학생들을 살펴보았다. 모두들 신난 얼굴로 떠들고 있다. 성도로 가는 수학여행은 싫지만, 순무가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주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해둔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에는 자유 시간이었다. 담임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집합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 뒤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였다. 나누의 담임 교사가 자신과 같이 다니는 게 어떻냐고 권유했지만 나누는 그것을 거절했다.

"제 고향이기도 해서 별로 감흥이 없거든요. 천천히 혼자서 구경이나 할게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담임 교사를 보냈다. 게다가 담임 교사의 전공이 역사였기에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유적들에 끌려다니면서 피곤할 것이 분명했다.

곧바로 나누는 순무를 찾으려 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도 지방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방인 만큼 전 지방 각지에서 관광을 오는 학교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순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역시 혼자서 구경이나 하는 게 낫겠다 싶어 발걸음을 떼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쳤다. 깜짝 놀라 돌아보면 순무가 있었다.

"어디 가세요?"

순무는 생글거리며 물었다. 필사적으로 찾고 있던 인물이 나타나자 나누는 혼자 머쓱해져서 뺨을 긁으며 대답한다.

"어릴 때부터 오던 관광 코스라 지겨워서 아무 데나 구경하려고 했어요."

"그럼 소개해 주실래요?"

"네?"

전혀 예상도 못 한 말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잘 아실 것 같아서요. 저는 여기 오는 게 처음이잖아요."

"그러죠, 뭐……."

이미 나누에게 질문을 많이 한 터라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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