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히카] 녹슨 톱니바퀴
2022.06.08 작성
※ 커미션
〈 녹슨 톱니바퀴 〉
건물이 무너진 틈새로 희끄무레한 빛이 샌다. 약한 빛 아래 푸르른 눈이 깜박이더니 이내 주위를 살폈다. 밝았던 내부는 온데간데없고, 한순간에 폐허처럼 변해 버린 내부와 주위에서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 따위가. 겨우 정신을 차린 엔디미온은 뒤늦게 상황을 복기했다. 일순간 끊어졌던 의식, 그 전에 알 수 없는 충격파가 덮쳤던 기억이 떠올라 그녀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몸을 일으키려 손을 짚으면 그새 삐끗하기라도 한 듯 손목이 아려왔으나 이내 이질적인 감각이 스치며 통증이 사라졌다. 분명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으나, 이 상황부터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시대라 한들, 벌건 대낮에 건물이 무너지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한껏 예민해진 감각 위로 쏟아 부어지는 자극은 지나칠 정도였다. 울음 섞인 신음, 고통에 헐떡이는 호흡 너머 느껴지는 주위의 상황이 가리키는 건 분명했다. 작금의 사태는 인재에 가까웠다. 이전과 같은 충격파가 다시 이곳을 덮치지만 않는다면 건물이 더 무너질 가능성은 없었다. 집중을 위해 감았던 눈을 뜨고, 그녀는 제 양손을 펼쳐 바라보았다.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이질감. 제 것이면서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힘. 아마도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 변화가 찾아왔으리라 확신했다. 제가 센티넬이라 불리는, 이능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도 자신은 그저 평범한 이들 중 하나였다. 분명히 낯선 힘이건만 엔디미온은 이것이 어떤 종류이며,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숨을 쉬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것과 매한가지였으므로.
엔디미온은 어두침침한 실내에서도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기민한 감각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맞혔고, 큼지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따위는 제게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다친 이들은 저들끼리 약속이나 한 듯 한곳에 모여들었고,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엔디미온을 응시했다. 대치하듯 서로를 바라보던 엔디미온과 그들 중 입을 먼저 연 건 결국 그들 중에서도 용감한 누군가였다.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이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자신의 침묵은 불안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입을 연다고 한들 할 수 있는 대답은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한 번 입을 열자마자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엔디미온의 옷 또한 흙먼지로 엉망이라는 사실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돌아오지 않는 대답 위로 쏟아지는 질문은 곧 그 형태를 잃고 두려움만을 올곧이 발산했다. 타인의 감정이야 제 알바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시선이 끌린 상태에서는 자리를 뜨는 것도 어려웠다. 벌어진 입술 새로 짧은 한숨이 샜다.
“모르죠. 휩쓸린 건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탄식이 들려왔으나 이 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들의 시선이 아쉬운 듯 머물다가 곧 흩어졌다. 제가 믿는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는 이들. 엔디미온은 충격파가 터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저 구조를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재앙은 언제, 어느 때에라도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통제되지 않는 재난에 휩쓸리고 싶어 하지 않고, 더군다나 그 원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그건 흘러가듯 살아오던 엔디미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위협, 그 뒤를 잇는 이능의 각성과 폭주. 일련의 사태는 지독한 우연으로 엮여 최악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건물의 외벽이 뚫려 실내인데도 세찬 바람이 불었다. 엔디미온이 걸음을 내디디면, 근처에 있던 모든 것이 그대로 부서졌다. 비명,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내뱉은 욕설 따위는 엔디미온에게 가 닿지 않았다. 텅 비어 무기질적인 푸른 눈은 이곳을 향하지 않고, 그 눈을 마주한 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분노하거나 괴로워하는 표정이었다면 두려움의 농도가 더 옅었을까. 그러나 엔디미온의 낯은 평소와 하나 다를 바 없이 희었다.
희미하게 멀어진 감각으로나마 어렴풋이 제가 근처에 있는 모든 것을 망가트리고 있음을 알았으나 육체의 통제권을 잃은 지 오래였다. 엔디미온은 때늦게 후회했다. 섣불리 걸음을 옮기지 말았어야 했다고. 손가락 하나 제멋대로 까닥할 수 없는 지금, 제 뺨에 닿은 한 줄기 산들바람은 어떻게 그토록 선명한지. 그러나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감각으로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제게 다가오는 사람의 인영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일순간 돌아온 얇은 신경줄에 의문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여전히 진정할 생각이 없는 이능이 겁도 없이 다가오는 이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폭주하는 엔디미온을 저지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이, 에메트셀크는 이리저리 튀는 파편에도 아랑곳 않고 심드렁한 얼굴을 한 채였다. 모처럼의 휴일이라고 생각했건만, 이런 일에 휩쓸릴 건 또 뭐란 말인가. 인형처럼 무표정한 여성의 얼굴은 낯설었다. 새로이 각성한 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지부 소속일 테지. 둘 중엔 전자가 정답일 가능성이 컸다. 힘을 제어하지 못해 제멋대로 날뛰는 중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힘을 발산하려면 처음부터 가진 힘이 강해야 했고, 그렇다면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정을 읽어낼 수 없이 새파란 눈은 오롯은 과연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건지. 다가갈수록 거칠어지는 기파였으나 가이드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 이능은 에메트셀크를 빗겨나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열리는 길.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가 되었을 즈음, 그는 날뛰는 짐승을 대하듯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명백한 실수였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써야 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내뻗어 온 손이 그대로 제 목을 잡아챈 탓이었다. 일순간 막힌 숨통에 컥, 하고 볼품없는 신음이 샜다. 숨이 막히는 것뿐만 아니라, 잡힌 목이 아릿하게 아파 왔다. 어쩌면 목이 부러진대도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충격을 감내하는 중에도 생각할 만큼.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적어도 제정신을 되찾도록 하지 않으면 죽거나, 의식을 잃게 되리라. 내내 뚜렷했던 금빛 눈이 일순간 가물거렸으나 에메트셀크는 정신을 완전히 놓아 버리지 않았다. 악착같이 붙잡은 손, 마주 닿은 맨 살갗을 타고 흐르는 부정형의 힘. 익숙하지 않을 게 분명한 느낌 때문이었던가. 새파란 눈이 이쪽을 올곧게 향하는 동시에 복부에서 격통이 터진다. 그렇지 않아도 흐릿한 시야가 삽시간에 찾아든 통증으로 점멸했다. 처음부터 이를 악물고 있었던 덕에 제살이나 혀 따위를 씹을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었다. 타인의 손목이며 팔뚝을 붙잡은 손에 자꾸만 힘이 풀린다. 자유로운 한 손으로 그녀는 제가 쥐어 잡은 몸을 아무렇게나 갈겼다. 고통보다 앞서는 감각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의식이 거의 끊어질 즈음, 마침내 숨통이 트였다. 메마른 기침을 억누르려 애를 썼으나 별달리 효용이 있지는 않았다. 거센 기파는 어느새 종적을 감추었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이는 고장이라도 난 듯 우뚝 서 있었다.
내뱉으려던 목소리가 엉망으로 갈라져 있음을 안 에메트셀크는 품속에서 꺼낸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제 명함도 아니었고, 그저 단단한 글씨로 각성자 센터라 적힌 센터 자체의 명함이었다. 하얀 명함을 받아 든 이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그저 서 있었다. 이 모든 일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 말간 낯에 에메트셀크는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등을 돌렸다. 어차피 어린아이도 아니었다. 연락처를 전했으니 수습은 저 스스로와 센터가 할 일이었다. 사람이 죽었다면 조금 곤란해질 테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겠지.
권태가 찾아드는 건 금방이었다. 에메트셀크는 매달리듯 붙잡아야 했던 팔의 감촉을 떠올렸다. 아니다. 그건 권태라고 부를 수 없었다. 살갗을 타고 흐르는 힘은 분명 안정적이었고, 오래전에 이와 같은 현상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각성자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일반적인 인간 이상의 힘을 가지고 휘두를 수 있는 이들과 그들이 그들의 능력으로 하여금 과부하가 오지 않도록 하는 이들. 드물게 두 부류의 각성자 각각이 지닌 파장이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들어맞아 짝지어지는 현상을.
그 감각을 착각할 리가 없었다. 아직도 아릿하게 아픈 목을 누르듯 스치는 손길에마저 허탈함이 드러났다. 소위 매칭이라 불리곤 하는 일은 말 그대로 드물게 나타났다. 각성자 대다수는 각성하는 순간부터 은퇴하는 날까지도 매칭을 겪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은 남들이 한 번 겪기도 어려운 일을 두 번이나 겪게 되는가. 그러나 에메트셀크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매칭은 이제는 제게 버겁기만 한 일이었다. 품 안에서 식어가던 체온은 겪어온 그 무엇보다 끔찍했으므로.
제가 함구하면 쉬이 알려지지 않으리라. 알려지더라도 짝을 지어 활동하는 건 순전히 당사자의 의견에 따르게 되어 있으므로 거부하면 그만이었다. 모든 게 피곤했다. 여기저기가 아픈 몸도, 이해할 수 없는 작금의 사태도. 어서 집으로 놀아가 지친 몸을 누이고 싶었다. 길게 늘어지는 한숨, 큰 키에 어울리지 않도록 구부정하게 선 남자는 느릿하게 걸어 현장에서 멀어졌다.
그 일이 있은 지가 벌써 몇 달 전이었다. 누가 봐도 목이 졸린 사람처럼 시퍼렇게 남았던 멍 자국은 진작 빠져 버렸으나 그는 그사이 때때로 목을 만지작거리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그때 그 각성자, 엔디미온과는 같은 지부 소속이 되어 간혹 같은 현장에 나가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그저 어렴풋이 저보다 키가 큰 상대였던 것만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듯, 가벼운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엔디미온의 능력은 지부 내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하는 편이었다. 그건 곧 어지간히 큰 문제가 아니고서는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할 일도, 부상을 당할 일도 드물다는 뜻이었다. 다행히도 엔디미온은 제가 아닌 다른 이들의 가이딩에도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매칭이 이루어지는 각성자 대다수가 짝이 아닌 이들에게 받는 가이딩의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크나큰 행운이었다. 제게도, 그녀에게도.
지금까지도 제가 그녀와 파장이 맞는다는 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간 엔디미온에게도 가이딩을 해야 할 일이 몇 번은 있었고, 그때마다 새로이 확신했다. 에메트셀크는 자주 의문을 품었다. 제 파장은 하나 바뀐 것이 없는데 제 눈앞에 보란 듯 나타난 이가 어떻게 자신과 매칭이 될 수 있는지. 항상 초연한 듯 구는 엔디미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모든 의문이 하등 쓸모가 없음을 알았다. 제가 했던 결심을 무너트리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도. 가이딩에 의존하는 건 분명히 센티넬이었건만, 저만 반대가 된 것 같았다.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남은 과거에 짓눌린 채.
내내 어영부영 지냈다. 그저 그런 직장 동료를 흉내 내어 의문을 삼키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러던 중에 사건이 터진 건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평화와는 거리가 먼 시대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투가 벌어지고, 시답잖은 악당 따위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니 각성자가 폭주해 피해를 주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였다. 그들의 무게감이. 어쨌거나 엔디미온을 비롯해 여러 각성자가 차출되었고, 그녀는 늘 그러했듯 이렇다 할 의사 표현도 없이 현장으로 떠났다.
그게 겨우 몇 시간 전이었다. 사안이 위험할수록, 현장에는 센티넬을 제외한 이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막는다. 가이드라 불리는 각성자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각성자라 한들, 개인의 무력은 대개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으므로. 센터에 앉아 있자면 숨이 막혔다. 먼 과거, 제가 지금보다 미숙했던 시절에 놓쳐야 했던 인연도 꼭 이런 식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결국 마주했던 건. 초조한 끝에 제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가도, 금세 다시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에메트셀크의 신경 줄이 끊어지기 전에 현장에서 연락이 온 건, 작전을 개시한 지 두 시간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현장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분명 완연한 봄이건만, 불어오는 바람이 한없이 스산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며 상황을 지시하는 이들의 다급한 목소리 따위가 귓가를 정신없이 울렸다. 현장 한쪽에 각성자 무리가 모여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이들 틈 사이, 무표정한 엔디미온이 눈에 띄었다. 뺨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지나칠 정도로 선연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에메트셀크는 그녀가 태연한 척을 하는데 통달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처럼.
그러나 이능의 반동에는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다. 엔디미온이라 한들 순간순간 드러나는 고통의 징후마저 숨기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떨리는 손끝이나 유난히 창백한 낯빛, 때때로 내뱉고야 마는 불안정한 호흡 같은 것들. 이름을 부르려 열었던 입술은 아무런 소리를 내뱉지 못했고, 그런 그를 발견한 현장 직원 중 하나가 빠르게 따라붙으며 상황을 일러주었다. 보이는 그대로의 결과였다. 쉽지 않았던 승리.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던 엔디미온의 시선이 다가서는 발걸음에 반응하면, 에메트셀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내밀었다. 차게 식은 손을 감싸 쥔 채, 그는 한참을 침묵했다. 이 정도의 접촉만으로 창백한 낯에 혈색이 돌아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그녀는 제 손을 아주 내맡긴 채 풀어져 있었다. 효율을 높이는 법은 간단했으나, 마냥 쉽지 않은 일이었다. 뺨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것조차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게 지금 제 처지였다.
“할 말 있어요?”
망설이는 제 기색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먼저 말을 건넸다. 어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말은 얼핏 듣기엔 묻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소간의 경험으로 에메트셀크는 그녀의 언어가 내보이는 그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았다. 낭패였다. 어지간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 이가 물어올 정도라면, 제 동요가 겉으로 얼마나 드러났을지가 뻔한 탓이었다. 그는 짧은 숨을 삼켰다가, 느릿하게 내쉬었다.
“너 정도라면 위험한 일을 겪을 일은 드물 테지만,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낮은 수준의 가이딩으로는 분명 한계가 올 거다. 그러니…… 앞으로 너와 함께 행동하게 될 파트너를 찾는 게 좋을 테지.”
내가 아니더라도. 차마 덧붙이지 못한 말은 식상하다 못해 우스웠다. 문장을 내뱉는 내내 끔찍한 기분이었다. 이런 주제에 베테랑이란 소리를 다 듣고 다닌다고, 에메트셀크는 저 자신을 비웃었다. 웃는 것도, 인상을 찌푸린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그는 죄 없는 땅바닥만 노려보았다. 에메트셀크. 수백, 수천 번은 불려 왔을 제 이름이 오늘만큼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겨우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한 건 푸른 홍채였다. 깊이를 알지 못해 차라리 빠져 버리고 싶은 파랑이 오롯이 저를 향했다. 숨을 쉬는 것이 어려웠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처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선을 마주했으나, 제 꼴이 어떨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당신의 가이딩은 다른 사람과는 달라요. 이런 말을 꺼냈다는 건,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
“에메트셀크, 원하는 바를 말해 봐요.”
엔디미온의 어조는 차분했다. 일말의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투, 에메트셀크는 그 단단함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마는 자신을 직시해야만 했다. 빙빙 돌려 말하는 것도, 이런저런 망설임도 부질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그녀의 손을 감싸 쥔 채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파트너가 나였으면 해, 엔디미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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