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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 Chara - A Piece of Pie


둘째 왕자가 독으로 쓰러졌다.

이 사실은 에봇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드리무어 부부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모든 소문들이 그렇듯이, 발 없는 것이 의외로 천 리 길을 가는 법이다.

둘째 왕자는 에봇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다. 두 왕이 갑작스레 데려왔고, 왕의 아들이니 당연히 왕자가 되었다. 그뿐인 얘기지만, 짧지 않은 시간 끝에 겨우 마음을 연 아이가 지독히 앓고 있는 모습은 부부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 아직 어린 몸을 가진 왕자가 맹독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기에, 한창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있던 에봇은 순식간에 침통함에 잠겼다.

파악된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왕성이 개방 - 사실 언제라도 왕성은 방문에 제한이 없었다 - 되었고, 왕자는 준비실에 있던 파이를 한 조각 꺼내와 먹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쓰러졌다. 다행인 것은 사람이 많았기에 구조가 빨랐다는 점, 불행인 것은 이 또한 사람이 많았기에 일어난 일이었을 거란 점이었다.

왕자는 응급 처치를 위해 병원으로 보내지고, 왕자가 먹은 파이는 증거물로서 수집되었다. 들어간 독극물의 성분을 채취하면 경로를 추적할 수도, 해독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밝혀진 결과상으론, 남겨진 파이에서는 독이 검출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추측한 바로는 이러했다 - 범인은 아마 왕자가 먹은 파이 조각에만 독을 넣었을 것이다. 그가 그 조각을 집어들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상황이 이렇듯, 수사 자체는 난항을 겪었다. 애초에 에봇에서 이런 일은 극히 드문 편이었기에 더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왕자가 쓰러진 날 밤으로 돌아가면, 두 왕 - 아스고어와 토리엘 - 은 아이가 다시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은 결과가 채 나오지 않았음에도, 수사 따위는 이미 뒷전으로 밀어둔 뒤였다. 아이의 회복이 먼저다. 범인을 잡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경찰의 일이었고, 그마저도 아이가 죽고 만다면 의미 없는 일이 된다. 그들은 왕자를 두고 속수무책인 의사들 대신 한 사람을 조용히 불러들였다.


부부가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는 방 밖, 복도 저편에서부터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다가왔다. 토리엘은 전혀 빠르다고는 할 수 없는 발소리가 영원히 늘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발소리의 주인은 둘이 얼마나 다급한 마음인지 알까? 그렇기에 사실상, 토리엘은 그를 신뢰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부부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의상으로라도 일어설 필요가 없다고 만류할 법도 하건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은 딱딱하리만치 격식을 차린 인사만을 할 뿐이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빠르게 본론을 꺼낸 남자는, 두 왕이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가볍게 뒷짐을 졌다. 아스고어는 이야기에 앞서, 일단 남자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남자는 그닥 내키지는 않는지 의자를 한번 흘낏거렸지만, 이내 앉고는 다리를 꼬았다. 왕을 상대로 하기에는 무례하고 권위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고, 실제로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었던 토리엘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한 박자 늦게 입을 열려던 아스고어는 조용히 입을 다시 닫았다.

"가스터 박사, 둘째 왕자…, 차라가 쓰러졌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어느 정도는 상대의 대답을 요구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 상대는 조용히 이어지는 말을 기다릴 뿐이었고, 그 기색을 눈치챈 토리엘은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그 아이에 대해 병원에서는 손 쓸 도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이 그 아이를 봐줬으면 합니다."

"물론 결과가 어떻든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그냥 뭐라도 해주고픈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게."

옆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아스고어가 한마디 덧붙였다. 남자, 그러니까 가스터 박사는 잠시간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나라에 오면서 내걸었던 조건."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저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약속하셨던 걸로 압니다만."

수락, 혹은 거절을 예상하던 차에 전혀 다른 이야기로 운이 띄워지자 벙한 표정을 짓던 둘은, 각자의 반응을 한 박자 늦게 내기 시작했다. 토리엘은 눈앞의 남자가 핑계를 대고 있다는 짐작에, 스스로도 어쩔 도리 없이 상대를 쏘아보았다. 그럼에도, 가스터 박사는 꿈적도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게 맡기시겠다면, 제 연구실로 데려가겠습니다. 꺼려진다면 거절하십시오."

감정의 높낮이가 없는 일관된 억양으로, 군더더기 없이 말을 끝낸 가스터 박사는 입을 다시 꾹 닫고는 예정된 대답을 기다렸다. 둘에게 있어서, 그건 꺼려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사는 완벽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상대가 절대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토리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이는 반색할 일이었고, 한시바삐 아이를 옮기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늦은 밤, 가스터 박사는 데려온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의식은 여전히 없었다. 물론, 있는 편이 더 이상할 테지만.

"…부모의 마음."

그는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아스고어에게 들었던 말을 툭 던졌다. 듣는 이도, 들을 수 있는 이도 없었다. 들으라고 한 말도 아니니 큰 의미는 없었지만. 그 '부모의 마음'이란 것도 가스터의 흥미를 돋울 만한 소재는 되지 못했으므로, 그는 곧 시답잖은 생각을 밀어내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한 기록을 토대로 필요한 약물이나 도구를 꺼내 오려 자리를 비웠다.

이미 위세척이 진행된 뒤인 터라, 무엇을 섭취했는지 샘플을 채취해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생각하기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조각을 털어보려 환자의 위를 뒤지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에게 증거품으로 넘겨진 파이를 되찾아와야 할까?

…글쎄, 적어도 그 스스로는 그럴 의무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이를 옮겨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가망이 없음을 느끼고 마지막을 집에서 맞게 하려 한다는 소문은 벌써부터 돌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듯 딱히 뾰족한 수는 없었으나, 사실 뾰족한 수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가스터 박사는 이미 아이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판단했다. 환자는 곧 의식을 차리고, 회복기에 접어들 것이다.

카트 위에 철제 트레이가 시끄럽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시각, 드리무어 가족의 거실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빛이 환했다.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탓이다. 누구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거나 집 안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이제는 식어가고 있는 황금꽃 차가 그들을 진정시켜 주지 못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 그건 약이 아니니까.

토리엘은 소파 속에 있는 내내, 한가지 생각에 붙잡혀있었다. 그의 아이가 먹고 쓰러진 파이는 자신이 만든 것이다. 물론 독을 섞어 넣지도, 실수로라도 독이 들어갔을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하지도 않은 일로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은 강인했다. 하지만, 파이에 누군가가 일부러 독을 섞어 넣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구운 직후에 파이를 방치해두지 않았다면?―

"엄마?"

토리엘은 번쩍 정신이 든 듯이 옆을 돌아보았다. 옆에는 부부의 또 다른 아들이 서 있었다. 외출복을 벗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부부와 달리 파자마 차림이었지만, 역시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같은 모양이었다.

"…아스리엘? 아가, 잠이 안 오니?"

그 순간 토리엘의 모든 관심은 아이에게 쏠렸고, 순식간에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물든 엄마의 눈빛을 본 아스리엘은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그런 건 아닌데…, 차라는 괜찮겠죠? 곧 나을 수 있는 거죠?"

아이는,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거짓말까지 했음에도 정작 자신의 말에서는 걱정하는 티를 숨기지 못했다. 이런 걸 능숙하게 숨길 수 있는 사람이 그 몇이나 되겠냐마는, 어린아이답다면 어린아이다운 행동이었다. 그것을 본 토리엘은 자신의 걱정은 잠시 접어둘 때라는 걸 느꼈다. 그러고는 아이를 두 팔로 안고, 볼을 부볐다. 그가 알고 있는, 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차라는 괜찮을 거란다, 아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겼거든……, 그러니 이제 자야지? 그 아이가 깨어났을 때, 기운 없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니."

아이의 등을 살살 쓸어내려 주던 토리엘은, 말을 마치며 팔을 풀기 전에 한번 꽉 안아주었다. 그러곤 눈을 마주치자, 아이는 조금 기운이 난 듯, 안기기 전보다 확연히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그럼, 엄마도 잘 자요. …아, 아빠한테도 자자고 할게요!"

그러고는, 토리엘의 뺨에 사랑스럽게 입 맞추고 정원 쪽으로 달려 나갔다. 시름을 잠깐 잊을 수 있었던 토리엘은, 기특한 듯이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먼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밝으면 차라의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손을 잡고, 이름을 불러주면 조금이라도 빨리 깨어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름을 불러주는 것 따위로 의식을 돌려놓으려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기력 낭비에 불과하다. 환자의 가족들이 찾아오자 잠시 자리를 비켜주며, 가스터가 한 생각이었다. 물론 자기 위안으로 삼기 위해서라면 나쁠 것은 없었다. …하기사, 설령 그조차 아니라 한들 참견할 가치 같은 게 있을까? 지나가는 생각으로 끝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또한 낭비가 될 뿐이었다. 낭비의 연속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그는 그것을 인지하고, 겉으로라도 존중할 의무가 있었다. 그 또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상.

환자의 회복 양상은 순조로움.

가스터는 차트의 공란에 글씨를 휘갈겨넣고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비슷한 날이 몇 번 연속되었다, 사고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가스터 박사는 어느 날,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을 보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이는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듯이 몸을 침대에 누이고 있었고,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렸다. 며칠은 꼬박 누워있었던 것 치고는 건강한 모습에, 그는 조금이나마 만족스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건강까지는 아니라도, 식사 대신 수액이라도 맞히고 있었으니 곧 죽을 상태만큼은 아님이 자명했다. 가스터는 아이의 목을 마저 회복시켜 주기 위해 물이 들어있는 잔을 건넸다.

"몸은 좀 어떠니?"

"…아저씬 누구야?!"

잔을 받아 들자마자 싹 비워낸 아이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쩌렁 소리를 높였다. 가스터는 아이가 화나거나, 경계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조금 놀란 것뿐이다. 딱히 진정시켜 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러니,

"글쎄, 네가 알 필요는 없는 것 같구나."

착실한 대답은 해주지 않기로 했다.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하곤, 옆구리에 끼워뒀던 차트에 뭔가를 적어넣는 모르는 어른을 눈앞에 둔 아이는 다시금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아이는 '아니지! 필요하지!'라는 둥, 반론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평소'에 부합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못 했을 뿐이었다. …랩코트의 가슴에 이름이 수놓여져 있다는 것조차 발견을 못 하고 있지만, 그 또한 평소가 아니라 경황이 없었다고 둘러댈 수 있으니, 평범한 사람의 삶이란 이 얼마나 단순한 것일까.

"별다른 이상도 없는 것 같으니, 네 가족에게 연락을 하마. …오래 걸리진 않을 게다, 늘 이 시간대에 면회를 왔으니."

이상이 없다기엔 고장이라도 난 것 같은 모습이었던 아이는, 가스터의 말을 듣곤 정신이라도 반짝 돌아온 것처럼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의사 선생님?"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었던 것 같지만."

가스터는 아이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고는, 더 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그의 예상대로, 머지않아 드리무어 가족이 도착했다. 꽤나 서둘러온 듯 허둥지둥한 그들은, 가스터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곧장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아빠! 아즈!!"

병상에 누워있던 아이는 기침을 하면서도 소리 높여 가족들을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세 명의 포옹에 거의 끼어들어 간 꼴이 되어, 짜부라지기 직전에야 가스터가 만류해 주는 것에 목숨을 건졌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행동을 조심하렴. 그리고 독성 물질이 입힌 내상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을 테니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게다. 어차피 며칠씩이나 공복 상태였으니 가벼운 음식부터 차근차근 적응해 나가게 되겠지만 말이다. …혹시 속이 아프진 않니?"

"음……, 괜찮은 것 같아! 그런데 초콜릿은 먹을 수 있어?"

"먹고 싶니? …조금만 참으렴."

"으악!"

가스터는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짜부라지는 걸 봤지만, 개의치 않은 채로 더욱 나쁜 소식들을 하나둘 전해주었다. 물론, 아이에게나 나쁜 소식이지 다른 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말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는, 이내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해오는 아이의 가족들에게 사무적으로 몇 마디를 툭툭 대꾸할 뿐이었다.


"차라, 아가. 그때 파이가 이상하진 않았었니?"

토리엘은 충분히 시간을 가진 뒤에야 아이에게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쓰러진 사실에 대해 아이 스스로는 그렇게 충격을 받지도 않은 듯했지만,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은 조심하지 않을 이유가 못 되었다. 어찌 됐건, 얼마의 시간을 거쳐 다시 건강해진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파이가 사각사각거렸어. 풀 냄새도 나고. 그런데 그냥 크리스마스 특별 토핑인가? 하고 먹었어."

"세상에나."

토리엘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옷에 흘리는 일이 없게 팔을 샥 치우고는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걸 어떤 나쁜 놈이 넣었단 거지?"

평소라면 고운 말을 쓰라 한 소리 했을 토리엘은, 그럴 여념도 없는지 아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오히려 아이가 괜찮다 다독이는 듯 그의 팔을 토닥이기 시작했으니, 보기에 나쁘진 않았어도 묘한 꼴이었다. 

"어쩌면 또 미나리아재비가 들어있었던 걸 수도 있겠구나…."

토리엘은 작게 중얼거렸다. 제대로 듣지 못한 아이가 되물었지만, 토리엘은 생각에 빠진 듯,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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