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3 - 과제 2

Ederlezi by Ederle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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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희는 이렇게 말하겠지. ”난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안 봐도 뻔하다.”

반박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가로막혔다. 데얀은 잠시 케이드를 노려보았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곧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으며 힘을 스르르 풀었기 때문이다. 곧 소심한 반항이 튀어나왔다.“

“‘무엇이든 말한다면 도와줄게.’라는 말은 무책임해요. 케이드, 당신이 모든 것을 도울 수 있어요?”

“하지만 말하기 전에는 모르지. 혹시 너의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해결책을 알 수도 있잖아?”

데얀은 바로 이런 사람이 난감했다. 거칠게 내칠 수 없게 말하며,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 데얀은–이미 제 성깔이 제법 드러나서 실패한 것은 알지만-적당히 좋은 학생으로 머물고 싶었다. 제게 문제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그러기에는 데얀을 너무 잘 알았다. 6년은 너무 길었다. 데얀은 이곳의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숨길 수 있다는 희망을 점점 버렸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려면, 실제로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저 이상적인 사람인 척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하지만 데얀은 데얀이 아닌 것이 될 수 없었다.

데얀은 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잼과 쿠키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무언가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을 기분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듣고서 절대로 웃지 말아요.”

“절대 그렇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나는 내가 싫어요.”

케이드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려 깊게 고려하는 것처럼 질문의 여운을 더듬었다. 사슴 탈에는 놀라는 표정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사실 그 침묵을, 데얀은 동요로도 읽을 수 있었다. 데얀은 속으로 박자를 셌다. 2분의 3박자가 네 마디 정도 흘러갔다.

“그건, 몰로조프가 너희를 두고 ‘괴물’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니?”

“아니요, 그 말은 내게 상관없어요.”

그런 ‘인간 이하’의 말에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케이드가 말하기 전에 데얀은 딱 잘라 말했다. 데얀은 세상에 괴물이 너무 많음을 이미 알고 있다. 데얀의 기준에 의하면 몰로조프 또한 괴물이다.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것들. 괴물이 괴물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닿고는 한다. 모든 문제는 이 지점에서 생긴다.

“나는 자꾸 화가 나요. 혹은 두려워져요. 날카롭거나 민감하게 굴어요. 괜히 내 일을 언급하는 것 같아서 찔려요. 그 때문에 애들과 부딪히기도 했고, 지적을 듣기도 했어요.”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부터 알고 싶은데, 이유는 알겠니?”

데얀은 곧장 답했다.

“알아요. 내가 지나왔던 시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이곳의 아무도 고쳐줄 수 없고,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그 시간. 그 어느 누구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댄다고 해도 바뀔 수 없는 삶의 궤적. 그 어린 세월이 선언한다. 너는 평생 이러리라고. 6년의 시간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데얀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보다 더 자신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에요. 나는 그 순간이 두려워요.”

데얀은 입술을 깨물면서 세상은 아카데미와 같을 수 없다. 데얀은 선의를 믿지 않는다. 안전망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무서운데도 동시에 화가 나는 이유는 뭘까? 총 든 무리에 둘러싸였을 때, 괜히 신경을 긁어서 첫 번째 희생자가 되는 이유는 뭘까? 가장 지혜롭지 못한 길을 택했다는 자각도 없어 뻗어가게 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가끔 나스챠가 부러워요. 그는 마음대로 성질을 내고 다녀요. 그리고 눈치도 안 보는 것 같아요. 나도 차라리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 녀석처럼 되는 건 며칠 전 일을 생각하면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될 수는 없어요.”

데얀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덟 살의 데얀과 열한 살의 데얀과 열여덟 살의 데얀은 다르다. 그러면 어떠한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데얀이 이미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라면, 해서 그것을 고칠 수 없다면 대신 무엇에 날카로워지는지 결정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정의하는 것들이 싫어요.”

데얀이 예민하게 구는 것은 전부 데얀의 과거에 담겨있었다. 그것은 데얀을 구성하다 못해 데얀을 정의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 정의를 데얀 역시 은연중에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상대의 말의 어느 부분이 자신을 찔렀다고 결정해버린다.

이런 내가 싫다면, 혹시 세상이 자신을 가리킬 지표라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남이 알고 자신이 아는 정의를 데얀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돌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방법이 있다면.

“나를 다른 것으로 정의 내리고 싶어요.”

차는 고요하게 식어갔다. 쿠키도, 잼도 가만히 놓여있기만 했다. 데얀은 쿠키 하나를 집어들어서 끄트머리를 베어 물었다.

둘로 갈라졌다. 이 사이로 자잘한 조각이 갈려 나간다. 도톨한 입자가 혀끝으로 느껴지고 단맛이 휙 뿌려진다. 그렇게 쿠키는 절대 이전의 원형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파괴만이 유일하게 행할 수 있는 변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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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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