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은재x여율(화류도화 후일담)
은재의 품에 안긴 여율은 홍조를 띄운 채로 발을 살짝 버둥거렸다. 그녀의 허벅지부터 번쩍 안아 올린 은재가 본당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자, 깨어 있던 다른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조리 쏠렸다. 여율은 그마저도 어쩐지 쑥쓰러워 은재의 목을 끌어 당긴 채로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가려보려는 듯이 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조차도 귀엽다는 듯이 은재가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왜. 여율은 흘끔 눈동자만 돌려 은재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태연한 그의 얼굴에 여율은 사람들 시선이 신경도 안 쓰이나?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은재는 의외로 사람의 시선에 동요하는 편이 아니였다. 자연스럽게 나라 최고의 화백이 되고난 뒤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태생이 그런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여율은 어쩐지 본당으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유독 길다고 느껴졌다.
“…연제님. 그으, 내려주셔도 됩니다. 무겁지 않습니까?”
그나마 제 발로 걷는다면 이 시선에 절반은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계산 하에 여율은 은근슬쩍 저를 내려주기를 권해보았다. 그렇지만, 은재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국연이 너무 가벼워 걱정스럽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못 먹는 것도 아니옵고…. 연제님이 걱정이 많으신게 아닙니까?”
“당연한 걱정이지 않습니까. 국연이 가장 소중한 이가 되었는데….”
“…저는 그렇게 된지 연제님보다 더 일렀던 걸 아십니까? 심술 부리실 때 조차도 말이죠.”
여율의 말에 은재는 끙, 앓는 소리를 대며 그녀의 허리께에 이마를 툭 기댔다. 그 와중에도 은재는 착실하게 본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내려달라는 여율의 항의는 쏙 까먹은 것마냥 굴며 슬쩍 여율의 둔부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여율은 화들짝 놀라며 괜히 은재의 손길에 몸을 흠칫거리다가 흥, 하고 토라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하늘 쪽으로 쳐올렸다.
그 때, 여율의 시야에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이 보였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여율이 숨을 삼키고 새삼스레 은재를 불렀다. 연제님. 조용하게 불러드는 목소리에 은재가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여율이 시선을 돌리며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었다. 순간에 시선이 마주쳤던가. 은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여율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별이 굉장히, 많습니다.”
“…비밀스레 외출을 하던 날도 이렇게 별이 많았습니다, 국연.”
배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던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둥실둥실, 물 위에 떠 있던 것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그 시간을. 여율은 은재의 말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소리나지 않게 그의 등을 툭, 가볍게 두드렸다. 투정처럼 저를 때리는 손길에도 은재는 하염없이 웃음이 샜다.
“…사실을 말했는데, 국연의 반응이 왜 그러신지.”
“그걸 몰라서 질문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여율은 새침하게 대답하며 습관처럼 입을 삐죽거렸다. 여율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강렬하고 잊기 힘든 기억이였다. 이후에 차가웠던 은재의 태도에 여율은 혼란스럽기도 했으니까. 재차 떨어진 질문에 은재가 다시금 웃으며 압니다, 하고 짤막하게 답했다. 여율은 어느새 자신이 은재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도 잊은건지, 하늘 구경하는 눈이 바쁘게 굴러갔다.
“오늘 유독…, 더 예쁩니다.”
“그렇습니까? 저 또한 지금 보는 것이 절경이긴 합니다.”
은재의 시야에서는 여율의 얼굴이 보일 따름이었다. 달빛에 비춰진 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더 하얗고 말갛게 빛나는 것은 착각일까. 은재는 문득 여율의 몸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여율은 은재의 말에 재차 눈을 흘기다가 저 멀리 보이는 본당의 모습에 다급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진짜 내려주십시오. 작게 항의하며 중얼거린 여율의 말에 은재가 그제야 여율을 품 안에서 내려놓았다. 겨우 제 발로 걷게 된 여율이 치맛자락을 툭툭, 두드리고는 은재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여율이 내민 손을 보던 은재가 손을 뻗어 그대로 덥썩 쥐었다. 제 손을 감싸는 온기에 여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엇갈리며 울리던 두 사람의 발소리가 이윽고 하나로 합쳐지며 고요한 울림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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