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불의 기사> 글 연성

기사와 ���.

나견 홀로 남겨진 세상

나견이 죽었다.

나진이 견습 기사가 되어 떠난 날, 나견은 마을 사람의 손에 죽었다.

모험가를 꿈꾸던 그가 짐을 모두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을 열었을 때, 평소 쌍둥이에게 불만이 많던 덩치 큰 사내가 그를 덮쳤고, 나견은 저항할 틈도 없이 당하고 말았다. 타인에게 쌀쌀맞게 구는 주제에 특출나게 강한 동생과 화재 사건의 범인인 형. 특히 나진에게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그 자는 나진이 떠나는 것을 알고, 그가 몹시도 아끼는, 똑같은 얼굴을 가진 그의 반쪽을 해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자취를 감춘 그를 찾지 않았고, 설령 알았더라도 그 사내에게 굳이 책임을 따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싸늘하게 식어갔다. 몇 일이 지난 후에야 시신의 악취를 맡은 사람들이 그를 땅에 묻어주었다.

형제의 죽음이라는 비보는 전해줄 이도 없어, 나진은 오랫동안 받아줄 이 없는 편지를 쓰고 선물을 보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집에 돌아온 나진은 그의 형제가 끔찍하게 죽임 당하여 무연고자 마냥 이름없는 묘지에 묻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위에는 자신이 보냈던 편지와 선물이 아주 낡고 해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모험가로서, 너는 기사로서 세상에서 만나는거야.”

나진은 기사가 되어 돌아왔지만, 더이상 그가 지켜줄 이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검을 잡았고, 그 날의 일을 떠올렸다.
하나뿐인 가족을 위해 그 결심을 했던 날.
불길에 휩싸이던 마을의 광경.
마주보던 너와 나, 나와 너.

얼마 안 가 마을은 또다시 대화재에 휩싸였다. 화재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타버린 시신들이 산을 이루었다. 이상하게도, 화재 사건이라면 없었을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 누구 하나 성하지 않았다. 검에 베이고 찔린 상흔들과 피로 얼룩진 마을의 건물들. 그리고 동떨어진 곳에 있는, 잘 정돈된 하나뿐인 무덤과 그 위에 놓여진 생화.
그 때 그 날처럼,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목격자조차 없으니까. 한 명, 그것도 명예로운 기사가 이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사람들은 그저 괴한들의 습격이라 여겨졌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며 기사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를 붙잡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떠오르는 태양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얼음이 대지를 매꾸어 아름다웠다. 책 속 풍경에서 언뜻 보았던 얼음 사막. 한 남자가 그곳에 우뚝 서 있다. 머리를 풀어해친채, 가벼운 짐을 들고 한 손에는 낡은 잡지를 쥐고 있다. 넋이 나간 듯 공허한 눈빛으로 일렁거리는 윤슬을 응시한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조용히 중얼거린다.


나는 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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