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불의 기사> 글 연성

어떤 형제의 낙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흔적

오늘은 맑다. 요 며칠간 비가 내려서 어서 그치길 바랬는데, 막상 그치니 너무 습했다. 약간 긴 머리가 옆얼굴에 닿을 때마다 거슬렸지만, 자르려니 아까워서 관뒀다.





마을 애들이 자꾸 시비를 걸고 때린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신경쓰지 말자. 별로 싸울 마음이 들지도 않고, 이길만한 힘도 없었다. 그 애를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대꾸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처받는다. 괜찮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원래 인생에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지.





오늘 조금 늦게 집에 돌아가니 나 대신 미리 사냥해둔 저녁거리가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강하긴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오늘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나도 사냥을 잘한다면 좋았을텐데, 항상 빈번히 실패했다. 내가 괜히 무기를 휘두르다 다칠까 걱정하는 눈치다.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티를 내면 오히려 더 미안해할테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대꾸하며 장난스럽게 활짝 웃었다.





오늘은 라우준 녀석이 말을 걸려고 했다. 난 일부러 모른 척했다. 이미 독립도 했으면서 왜 자꾸 무식하게 쫓아오려는건지.





오늘은 동네 애들한테 심하게 맞은 탓에 눈가에 멍이 들었다. 어쩌다 이리 되었냐는 목소리에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였다. 사실 나도 안다. 얘가 다 알고도 묻는다는 것을. 하지만 난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나 때문에 걱정 끼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냥 혼자 나무에 오르다 떨어졌다고 얼버무렸다. 어설픈 거짓말이었다. 웃어보려했지만 화난 얼굴을 앞에 두고 그럴 용기는 없었다.





나는 왜 이리 약한걸까.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땅이 질척이고 습기가 찬 공기가 짜증났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니 좋았다.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데 그게 왜인지 참 좋았다. 분명 같은 목소리인데도 말이다. 아니 조금은 다른가? 아무래도 좋다. 오늘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안했다.





오늘은 우리의 생일아마도이었다. 딱히 초대할 사람도 없지만 둘이서 조촐하게 축하를 했다. 기념으로 고기국을 끓였다. 하늘도 무심하기만 한 건 아닌지 어제 벌이도 좋았고 사냥도 꽤 잘 되었다. 우리는 서로 생일 축하해! 라고 외치며 그릇을 부딪혔다. 솜씨 좋게 끓인 국은 맛이 좋았다. 우리가 쌍둥이라 정말 기뻐.










오랜만에 일기를 써본다. 하지만 딱히 쓸 내용은 없다. 종이도 귀하니 가끔 생각날 때만 써야겠다. 요즘은 우리 둘 다 잘 안 쓰는 듯하다. 너덜너덜하지만 아마 10년은 더 쓸 것 같다.











오늘 내 눈앞에서 그애가 쓰러졌다.
그의 죽음을 예감한 그 순간, 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이 나와 너, 우리를 위한 길이라 믿는다.











이대로는 안 돼.
난 더 강해져야만 한다.
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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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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