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

소망들

2024.6.20

🎶 by A

짧고 러프합니다 0퇴고...

가이에게 건의하겠다고 결심하고 난 텐조가 가장 고민한 것은 의외로 장소였다. 가이를 찾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쫄쫄이의 선명한 녹색과 보는 쪽을 실명시킬 만큼 햇빛을 튕겨내는 바가지머리, 우렁차게 기합이 들어간 함성은 아무 높은 지붕에나 올라가 내려다보면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듯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집주소도 빤히 알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급닌자들은 공동 아파트에서 한 둥지에 머리 맞댄 새알처럼 옹기종기 모여 지냈으므로. 그러나 대뜸 현관문을 두들기기엔 텐조는 너무 샤이 보이였다 (실제로 암부에서 한동안 텐조에게 붙었던 별명이다). 

나무에 숨은 텐조는 가이와 카카시가 몇 번째일지도 모를 라이벌 대결을 하는 걸 지켜보았다. 오늘은 쿠나이 던지기였다. 나무에 걸어놓은 과녁 중앙에 첫 번째 표창을 명중시키고, 꽂힌 쿠나이 끝에 잇따라 다음을 명중시키기. “아아... 최근에는 초밥 많이 먹기, 열탕에서 오래 견디기, 한 손으로 절벽 오르기 정도였나. 절벽? 먼저 떨어지는 쪽이 지는 거야.” 라이벌 대결의 내용을 텐조가 가끔 슬쩍 떠보면 카카시는 여상히 중얼거리곤 했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쿠나이는 그리 우스꽝스럽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았다. 쿠나이 기술 정도는 아카데미에 들어가기도 전에 완벽하게 연마했을 카카시가 내기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선배는 건성으로 마지못해 어울려 주고 있다고, 적어도 텐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카카시는 대단히 경제적으로 표창을 던졌다. 체력이 그리 넘쳐나는 편이 못되어 절제가 몸에 배어 있었다. 쿠나이 끝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은발이 눈부셨다. 카카시의 몸놀림에서 텐조는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정작 가이는 통 집중하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눈이 마주칠까 봐 텐조는 나무와 한몸이 될 듯이 찰싹 달라붙어 웅크렸다. 목둔의 일환인 양. 가이에게 들킬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반면에 기척에 예민한 카카시는 텐조의 존재를 진즉 알아챘으리라. 텐조의 차크라를 모를 리가 없다. 선배가 자신의 기척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계획이 차질 없이 완수되도록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온도가 다른 물의 경계처럼 충돌하며 천천히 뒤섞였다. 아니, 그 중 하나만이 답이었다. 카카시가 내버려 두는 것이 텐조로서는 다행이다. 이따 저녁에 암부 소집 때 만나서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텐조의 예상은 빗나갔다. 카카시를 보내고 난 가이는 곧장 텐조가 있는 공중을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라이벌 대결이 큰 차이로 카카시의 승리로 돌아가고, 오늘의 불타는 승부를 기리기 위해 당고로 축하연을 열자는 가이의 강권이 연거푸 거절당하고 나서였다. 가이는 아무 두려움 없이 카카시의 손을 잡아끌었다. 카카시는 입으로는 사양하면서도 몸을 축 늘어뜨려 당고 가게 쪽으로 두어 걸음 끌려갔고, 그 광경이 텐조의 마음에 뼈아픈 불을 당겼다. 꿈에서도 잡아보지 못한 손이었다. 자신은 저렇게 덥석 가게에 데려가기는커녕, 선배의 사물함에 당고를 넣어 놓고 모른 척하는 정도나 간신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잠깐 텐조는 포기하고 암부 본부로 돌아갈까, 없던 일로 할까 하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지금부터 텐조가 하려는 것은 가이가 카카시와 대화할 빌미를 또 하나 만들어주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선배를 위한 일이니까... 이내 고개를 내젓고서 텐조는 나무에서 뛰어내린다. 미성숙한 질투 따위로 그르칠 순간이 아니다. 텐조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니까. 코앞에 착지하는 초면의 닌자를 보고서도 가이는 눈썹 하나 움찔하지 않았다.

“가이 씨 맞으시죠.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가 텐조인가 보군. 카카시에게 말은 많이 들었다.”

선배가 가이 씨에게 내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반응이었다. 하려던 말과 카카시가 뭐라고 했는지 묻고 싶은 충동이 꼬여 텐조는 우물쭈물했다. 가이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눈을 찡긋하더니, 우렁차게 외쳤다. 텐조는 고막이 떨어져나갈 뻔했다.

“대단히 믿음직하고 실력도 출중해 장래가 촉망되는 후배라고 하더군! 자네 같은 후배를 두어 행운이라던가.”

그다지 카카시가 할 법한 말이 아니었다. 믿고 기뻐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극적인 태도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과장된 허풍으로 들린다는 게 가이와 처음 마주한 텐조의 가감 없는 감상이었다.

“카카시의 친애하는 후배여. 어떤 용무로 나뭇잎의 푸른 맹수를 찾아왔지?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기탄 없이 말해 보도록!”

정말로 이런 사람을 신뢰하고 어려운 부탁을 해도 되나? 텐조는 갑자기 아리송해졌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밀고 나가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가이가 말을 하다 말고 어물쩍 관두는 걸 용인할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카카시 선배와 어려서부터 잘 알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가이 씨.”

“제대로 듣고 왔군! 카카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진정한 라이벌인 바로 나지. 카카시에 대해 물을 게 있어서 찾아왔나? 존경하는 선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가 보군. 바람직한 청춘의 자세다!”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카카시 선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하면 되지 않나? 심드렁하게 보여도 은근히 제대로 들어 주는 녀석이라고, 카카시는. 분명히 귀 기울여 줄 거다.”

“후배인 제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저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어서요.”

암부는 티끌만큼의 하극상도 용납되지 않는 조직이라는 것을 가이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가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소 갑작스럽지만 부디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가이 씨.”

텐조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텐조는 말을 돌려 하는 재주가 없고 가이는 돌려 한 말을 알아듣는 재주가 없을 것이 뻔했다.

“카카시 선배에게 암부를 나가라고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카카시가 암부에서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나? 그럴 녀석이 아닌데.”

“아뇨,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곁에서 지켜보니 어떤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요.”

“어떤 생각?”

“지금의 카카시 선배가 과연 암부에 적절한 재원인가 하는...”

가이의 눈이 대번에 좁아졌다. 목소리에 의구심이 확연하게 배어들었다. 텐조가 공격 태세를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샌들 두 짝마저 방어 자세로 고쳐 서서 가이는 되물었다.

“무슨 뜻이지?”

“암부에 남아 가혹한 임무를 계속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카카시 선배가 굳건한지 저는 의심하게 됩니다.”

“뭐라, 카카시가? 내 라이벌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내가 아는 그 누구에게 빗대어 손색이 없을 만큼 강인한 닌자라고.”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텐조는 대화가 겉도는 것을 느꼈다. 텐조의 의도가 이상하게 왜곡되고 있었다. 최근에 드물게 카카시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을 때, 가이 씨는 어떤 분이냐고 슬쩍 운을 뗀 적이 있었다. 모처럼 라커룸에서 스쳐 지났을 때였다. 암부 가면을 쥔 카카시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카카시는 꽤 길게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긴 한숨을 쉬며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지.” 했었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텐조를 점점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지? 자네가 카카시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만 들리는데. 카카시는 어떤 S급 임무든지 너끈히 감당할 수 있는 나뭇잎 최고의 실력가다. 같은 부대에서 호흡을 맞춰 왔으면서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했나?”

“가이 씨야말로 카카시 선배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건 기량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선배의 기량이라면 저는 차라리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암부에서 방출된다면,”

“지금 카카시에게 불명예를 권장하는 건가? 이러고도 감히 카카시의 자랑스러운 직속 후배라고?”

“저는 어디까지나 카카시 선배를 걱정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카카시의 거취는 카카시 자신이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다. 그리고 내 라이벌의 판단은 틀리지 않아.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야!”

“아니오, 저는 동의 못 하겠습니다. 가이 씨야말로 카카시 선배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 아닌가요?”

“뭐라고...? 감히 친애하는 라이벌과 나만의 특별하고 두터운 우정을 의심하는 건가?”

“정말 그렇게 특별한 우정이라면 선배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 주셔야죠. 선배의 임무 달성 기록과 눈부신 기량은 전부 스스로를 혹사하고 깎아낸 결과물입니다. 설마 그걸 모르셨습니까, 가이 씨?”

“자네야말로 카카시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닌자의 정도다. 카카시도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선배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을지 저는 정말 모르겠단 말입니다!”

“내 라이벌의 근성을 함부로 낮잡지 마라!”

“근성이오? 그러다가 카카시 선배가 정말 꺾이면 그때는 만족하실 건가요?”

울컥해서 내뱉자마자 텐조는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실언을 했다는 자각보다도 가이가 곧바로 해 오는 공격 때문이었다. 가이는 텐조가 멀리서라도 본 적 없는 노기를 형형히 띠어서, 텐조는 순간 선배보다도 자기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만 했다. 세기의 라이벌 대결이니 할 때의 희극적인 성화가 아니라 뱃속 깊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썩 내 눈앞에서 없어지지 못할까! 나뭇잎 선풍!”

거친 발차기가 질풍을 일으켰다. 더 강한 체술의 전조로 화염 같은 열기가 공중을 적셨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같은 나뭇잎끼리의 다툼일 뿐이니 선을 지켜야 한다는 분별을 찾았는지, 회오리치는 돌풍이 공격의 전부였다. 텐조의 몸이 붕 떴다가 거칠게 밀쳐졌다. 나무에 등을 쿵 부딪히고 떨어진 텐조를 가이는 화가 끓어오르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가이는 한 자 한 자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내 라이벌의 판단을 의심하지 마라. 카카시가 아무리 아끼는 후배라 해도 좌시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가능성을 입에 담지도 마라. 어디서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가이는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돌려 걸어갔다. 텐조는 넘어진 그대로 숨을 고르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완전히 패잔병의 심정이 되어 텐조도 자기 몫의 울분을 삼켜야 했다. 아니, 화낼 건 도리어 이쪽이었다. 가이가 완전히 틀렸다. 가이는 카카시를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카시가 강하다니, 당치도 않은 얘기였다. 텐조가 보는 카카시는 몹시 약한 사람이었다. 카카시의 존재는 텐조가 아는 모든 연약한 것과 관계되어 있었다. 모두가 텐조라고 부를 때 가끔 키노에라고 불러 주는 것을 포함해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이름을 부르는 음성의 나직한 내밀함. 여린 곳에 와 닿아 듣기만 해도 멍이 드는, 가지가 자라날 곳을 어루만지는... 나무가 바람결에 텐조의 머리 위로 이파리를 떨어뜨렸다. 선배의 손길 같다고 생각하고 말아 얼굴이 단번에 새빨개졌다. 한때 카카시는 텐조가 조금만 당황해도 얼굴이 홍시처럼 익어 터질 것 같다고 놀리곤 했다. 요즘은 농담하는 모습은커녕 시선 한 번 맞추기도 힘들어졌지만.

텐조는 얼굴을 감싸고 일어섰다. 가면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그렇게라도 가려야 했다. 텐조는 암부 본부로 돌아가는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선배가 기다리는 곳으로. 손가락 사이로 반짝이는 볕마저 한없이 야속한 봄날이었다.

텐조를 말 그대로 뻥 하고 차 버려 놓고, 가이가 그날 바로 히루젠을 찾아가 카카시를 암부에서 빼 달라고 읍소했다는 얘기를 건너건너 듣게 되었다. 매몰차게 돌아섰던 가이가 텐조의 간청을 귀담아 듣긴 했던 것이다. 텐조의 내면에서 '뿌리'보다 더 낮은 지하까지 내리꽂혔던 가이의 평가가 아주 약간 올라갔다. 그렇다고 카카시가 암부에서 빠지지는 않았지만. 나뭇잎의 지상과 지하를 한 바퀴 죄다 돌아 카카시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만 소문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다. 

카카시는 보란 듯이 위험한 임무에서 더 위험한 임무로 줄타기하듯 뛰어다녔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랭크의 임무만 도맡아서. 텐조조차 동행할 수 없는 죽음의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사륜안은 시간도 계절도 모르고 꺼지지 않았다. 암부 본부보다 위령비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선배는 어느덧 위령비보다 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모습으로 더 자주 만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기는 텐조의 바람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텐조 몫의 임무만으로도 힘에 부쳐하면서도 조마조마해하며 카카시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선배가 꺾여야 만족하겠냐고 가이에게 소리쳤던 것이 예언이 될까 두려웠고 그런 말을 내던진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흐르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던 습관도 결국 서서히 누그러지며 카카시가 텐조를 처음 만났을 때의 부드러움을 되찾고, 마침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나 싶어졌을 때였다. 카카시는 갑작스럽게 은퇴했다. 텐조에게 대장 자리를 물려주고서. 일대의 사건이라 한동안 암부가 떠들썩했다. 텐조는 다른 후임들과 함께 섭섭해했고 선배를 조금 원망하기도 했지만 뜻밖에도 시원함이 더 컸다. 그 모든 소회 위를 휩쓴 감정은 깊은 안도였다. 가이한테 말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자신이 어떤 몫을 했는지, 그게 잘한 일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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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랑 야마토랑 잘 되길 바랐거든.

그렇게 턱 빠질 정도로 놀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집어넣어, 집어넣어.

너희는 비슷한 걸 갖고 있었어. 너랑 야마토를 각각 오랫동안 지켜본 덕분에 알 수 있었지. 주변의 모든 상황이 그냥 놓아 버리고 주저앉으라고 소리칠 때도 넌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면이 있었잖아. 야마토는, 글쎄. 너랑 똑같지는 않은가. 혼란 속에서도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고 들곤 했지. 본인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았고. 너희 둘 다 뭐랄까, 아무리 흙먼지가 잔뜩 묻은 지저분한 유니폼을 입고 있어도 그 뒤 어딘가가 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까. 그래서 너희 곁에선 내가 어둠 속에 있었다는 걸 잊는 기분이 되곤 했는데 말야. 야마토는 그런 면을 잘 표현하는 법을 몰랐지만... 너도 썩 잘 했다고 할 수는 없고 말이지.

암부에 있을 때 나는 기대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나뭇잎에도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때 딱 하나 유용했던 건 나뭇잎이 제공하는 맹목이었달까. 임무에 뛰어들면 나머지는 전부 망각할 수 있는 맹목 말이야. 나뭇잎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 그렇다고 나뭇잎이 내게 준 게 그것뿐이란 뜻은 아냐. 뭐, 쓸데없고 감상적인 얘기지만. 일단 7반을 주었고. 그리고 너와 야마토를 주었고... 모든 문이 동시에 닫히라는 법은 없나 봐. 이제야 말하지만, 암부 시절에 네가 나한테 해 준 걸 내가 야마토, 그때는 텐조라고 불렀는데, 텐조한테 해 주어야겠다고 자주 다짐했었어. 잘 해낸 것 같지는 않아.

어쨌든 둘 다 좋은 사람이고 닮은 점이 많으니까. 다정하고 후배를 똑바로 아끼고. 나와는 달리 너희들은 좋은 선배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해 봤자... 됐다. 잊어버려, 가이. 지금은 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내가 좀더 요령이 좋았으면 징검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텐데. 너랑 텐조의 결혼식에서, 주례는 아니고, 아니, 절대 사양이라니까? 하객으로 앉아 있었을 텐데. 아니, 이챠파라는 지참하지 않지. 너무하네, 가이. 남의 경사에서 음란서적을 떡하니 꺼내놓고 읽을 정도의 몰상식은 아니거든? 그래도 팟쿤은 데려갔겠지만. 다른 닌견들도 마찬가지고.

지금 돌아보면 엉뚱하게도 그 생각만으로 견딘 나날도 있었어. 너희가 축복에 감싸이는 날을 볼 때까지는 정말로 저편으로 끌려가지는 말아야지. 영원히 눈을 감아 버리고 싶어도, 너희를 향해 돌아와야지. 너랑 텐조가 나를 살린 거야. 죽은 사람들에게 빚을 너무 많이 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산 사람들에게야말로.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것도 아냐. 그러니까, 어쨌든.

너희가 결혼하는 건 물 건너간 것 같고. 지금이라도 좀 친하게는 지내지 않을래? 둘이 잘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따 저녁에 같이 일락 먹는 게 어때? 야마토가 사게 할게. 뭐, 한 번쯤은 특별히 내가 살 수도 있고. 너희 은근히 서먹하길래. 이상할 정도로... 둘이 딱히 제대로 말도 해 본 적 없으면서.

어? 해 봤다고?

...뭐라고? 싸웠었다고?

너랑? 걔랑?

농담이지? 농담이 많이 늘었네, 가이...

에이, 야마토랑 싸울 구석이 어디 있다고. 야마토가 얼마나 온순한데. 뭔진 몰라도 이건 네가 잘못했을 거 같다, 가이.

아니라고? 야마토가 틀렸다고? 뭘 틀려? 야마토보다 네가 나를 더 잘 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후배가 나를 안 좋게 말한다고 네 자존심이 상해? 왜?

뭐야, 왜 갑자기 그렇게 흥분하는 건데...

...하하. 아무리 들어도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가이.

알았어, 알았어. 야마토 얘기는 일단 그만하자고, 너나 나나. 그러니까 침 좀 그만 튀겨 주라.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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