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끝
리버스 AU
이엔은 손에 든 책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다지 읽을 마음이 없어보이는 게 명백했다. 한량처럼 소파에서 뒹굴고 있는 동생을 보며 후유코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엔 란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고 들러붙어 있으면서, 전화까지 꺼놓는 모습을 보니 대충 있었던 일은 빤했다. 아까부터 제 전화가 계속 울려대는 것이 더욱 심증을 굳혀주었다. 후유코는 보란듯이 이엔의 앞에서 전화를 받는다. 이엔은 굳이 말리지 않는다. 전화 너머에서 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답지 않게 다소 당황한 어조였다. 이엔 거기 있어? 그래. 나 바로 갈게... 글고 전화가 끊겼다.
후유코는 가방에 몇 가지 서류를 챙겨넣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시려고요?"
"그래. 여기 있다간 별로 못 볼 꼴 볼 것 같으니까."
열쇠를 찰그락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는 그를 이엔은 뒤에서 배웅한다. 곧 조용해지고, 집 안에는 혼자만 남는다. 이엔은 읽던 책을 아예 덮어버렸다. 잠시 생각이 이어진다.
좋아해요, 형님. 고백은 짧았고, 강했고, 당연했다. 이엔은 제대로 고백하지는 않았어도 내내 좋아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해왔고, 란은 조금도 거부하지 않은 채로 기꺼이 그 마음을 전부 받아주었었다. 끌어안으면 안아주었고, 계속 같이 있자고 말하면 그러자고 대답했고, 언제나 상냥하게 뺨을 어루만져 주었고... 어린 시절에 결혼하자는 말에도 어른이 되면 그러자고 대답했으면서. ...이건 그다지 진지하게 믿었던 건 아니지만. 손을 뻗을 때 피하지 않았고, 맞닿은 입술도 피하지 않았다. 그래놓곤, 키스가 끝난 다음에 하는 말이 고작 우린 가족이잖아, 라니!
키스는 왜 한 건데요?
그건... 나쁘지 않았달까...
그럼 사귀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역시 그건...
이따위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이엔은 점점 열이 받았다. 그래서 그대로 짐을 챙겨 집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란이 집 앞까지 쫓아나왔지만 매정하게 택시로 올라타버리고... 와버린 곳은 후유코네 집이었다. 란도 자신이 어디로 향했는지 이미 알 정도로 뻔한 행선지였다. 후유코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 집으로 온 이엔에게 커피를 한 잔 대접했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엔은 짧게 고민했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엔은 몸을 일으킨다. 문이 열리면 다급하게 온 건지 머리가 헝클어진 란이 거기에 서 있었다.
"이엔..."
란은 퉁명스러운 표정의 이엔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이엔과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집을 나간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정말 좋다고 말해주는 이엔에게 지나치게 안심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는 이엔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바라봤다. 그 선명한 금색 눈동자를 피하고 싶었던 건 왜일까? 그럼에도 다가온 입술을 밀어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란은 언제나, 이엔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이엔은 란의 뺨을 감쌌고, 여전히 시선을 맞추고 있었고, 맞닿은 입술은 따뜻했다.
그리고 문득, 비겁한 저울질이 있었다.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서로를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한 쪽에 올려두고, 지금의 고백을 반대쪽에 올려두었다. 실제로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는 확실히 않았지만, 란은 반사적으로 가족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너무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무서웠다. 그냥 이대로 남아있으면 안 될까?
"내가 잘못했어..."
가슴이 선뜩해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란은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멀어지는 게 두렵다는 것도. 저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는 금색 시선이 내내 그리웠다. 여전히 무서운데, 잡고 있던 손이 빠져나간 상실감이 지나치게 컸다. 붙잡는 듯한 눈빛에 이엔이 순간적으로 발끈한다. 그대로 벽에 밀쳐지고, 무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입술이 맞닿았다. 살짝 벌려진 입술 새로 혀가 밀려들어온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보려 애써도, 제대로 숨쉴 수 없어 머릿속이 흐려진다. 무심코 이엔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는다. 괴로운 만큼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떨어질 때는 콱, 하고 입술을 깨물어버린다. 흠칫 놀라며 이엔을 바라본다.
"선택하세요. 거절하면 다음은 정말로 없어요."
가족같은 허울좋은 이야기는 끝이에요. 무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좋아하고 있으니까, 마음을 속이고 가족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부서진 찻잔을 고친다 하더라도 이미 그 예전의 찻잔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누군가가 참고 참아서 영위할 수 있는 관계는 이미 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호즈노미야 란은 그제야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이엔이 가버리는 건 싫어... 가지마..."
두 손으로 이엔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는 이미 너무나 큰 존재가 되어버려서, 도무지 빼앗기고 싶지가 않았다.
"사랑해. 나도 그래..."
비겁한 란은, 이엔이 끝에 끝까지 몰아 붙여야지만 겨우 숨겨뒀던 진심 한 조각을 꺼내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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