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꽃잎 흩날리는 아래
그 날은 기가 막히게 날씨가 좋았다.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산뜻한 기온, 살짝 물기를 머금은 기분좋은 공기. 그야말로 결혼식에 딱 어울리는 날이었다. 란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멍하니 있으면 어깨에 닿아오는 손길이 있었다. 형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달큼하다. 뒤를 돌아볼 때쯤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엔. 대답하듯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가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손을 뻗어 그의 갈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
오늘은 이엔과 란, 두 사람의 결혼식이다.
꽃다발을 안겨주며 건네었던 고백에 그는 기쁘게 웃으며 답했고, 두 사람은 내내 행복했다. 결혼하기로 마음을 나눈 뒤부터는 현실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했으나, 그 과정 자체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여러 업체에 전화를 걸어 견적을 내고, 식장을 물색해 예약하고, 촬영 일정을 잡고, 의상을 골라 빌리고, 초대할 손님을 골라서 청첩장을 준비하고... 그 외에도 자잘한 준비가 잔뜩 있었지만 다소 촉박한 일정에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빨리 결혼하고 싶기도 했고, 마침 란이 이 시점에서 퇴사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남았던 것도 있었다. 오직 결혼 준비만을 위해서 퇴사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작품들이 그럭저럭 괜찮은 수익을 내고 있었기에 슬슬 전업으로 전향할 생각을 하고 있던 김에 타이밍을 맞춘 것이었다.
그 덕분인지 준비는 제법 순조로웠고, 교외의 레스토랑을 전일로 대여할 수 있었다. 정원이 넓고, 예쁘게 조형되어 있기로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식장을 정원과 야외 테라스에 꾸밀 계획이었다. 마침 봄이었기에, 정원 곳곳은 색색의 꽃으로 가득했다.
청첩장을 받은 호즈노미야의 아이들도 대부분 흔쾌히 참석하기로 해주었다. 청첩장을 건네면 놀라거나, 그럴 줄 알았다는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등 다양한 반응이었지만 마지막엔 다들 제 일마냥 기쁘게 웃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네왔다. 초대한 손님이라곤 그 아이들뿐이었기 때문에 규모는 보통의 결혼식보다 훨씬 작았지만 어차피 란도 이엔도 마음을 두는 이들은 호즈노미야가 전부였기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식장을 꾸미는 준비가 끝나면, 이엔과 란은 손을 잡고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섰다. 카메라 렌즈가 번쩍거리며 두 사람을 향한다. 하얀 예복을 입은 이엔은 반짝이는 햇빛과 흰색 장식, 흐드러진 꽃들과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란은 그런 이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이엔이 쿡 찌르며 카메라를 보라고 말해도 한 번 고정된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결국엔 이엔은 뺨을 붉힌 채로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란이 입은 검은색 예복이 너무 잘 어울려서, 이엔도 오래도록 그만을 바라보고 싶은데. 그런 이엔의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란은 살짝 웃고 있었다.
촬영을 마무리할 즈음이면 하객들이 속속 도착했다. 제일 먼저 이엔과 란에게 인사를 건네고, 축하를 하거나 장난스럽게 놀리거나 했다. 오랜만에 모이는 서로가 반가운지 이야기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격식을 차린 결혼식 치고는 다같이 나온 피크닉처럼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객들이 모두 도착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으면 결혼식이 시작됐다.
절차는 간단하게 진행이 됐는데, 사회를 맡은 후유코가 간단하게 시작을 알리면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란의 팔을 꼭 끌어안은 채로 꽃으로 장식한 길을 쭉 걷는다. 박수 소리가 어쩐지 멀게 느껴지고, 팔에 와 닿는 서로의 온기만이 명확했다. 란은 살짝 고개를 돌려 이엔을 보았다. 이엔과 눈이 마주치면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다.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미소였지만 이엔에게는 그가 다소 들떠있다는 것이 보였다. 이엔은 그런 그가 마냥 사랑스러워 수줍게 웃어보였다. 둘이서 함께 길의 끝까지 걸었다. 앞으로도 길의 끝까지 걷게 되리라.
서로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서로에게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앞날을 기약하는 간략한 정도의 편지였다. 란의 것은 언제나처럼 달큼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었고, 이엔의 것은 어딘지 수줍었다. 편지를 낭독하는 내내 여기저기서 장난스러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거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그들은 이름으로 이어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가족이었다. 그런 가족 중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부부 사이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처럼 느껴졌다.
낭독이 끝나면 카이토가 다소 거들먹거리며 -고마워하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외에 함께 세팅된 피아노 앞으로 가 앉았다. 결혼하면 축가 정돈 쳐줄게. 그렇게 말했던 약속을 지키는 때였다. 매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아름다운 선율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지나치게 좋은 날이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푸른 하늘과, 내리쬐는 햇빛과, 흩날리는 꽃향기와...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까지. 란은 문득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는 웃고 있었지만.
선율이 자연스럽게 멎으면, 란은 고개를 기울여 이엔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사전에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이엔의 뺨이 달아오르고, 여기저기서 환호가 들려온다. 하필 이 타이밍에 닭살을 떤다고 노발대발하는 카이토는 레이지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란은 이엔과 입술을 맞붙인 채로 웃어버리고 만다.
"사랑해..."
"...저, 저도요."
평생을 기억할 기쁜 추억이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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