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창 밖에서 어슴푸레한 빛이 넘어 들어온다. 은은하게 밝아지는 방 안에는 어쩐지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다. 란은 눈꺼풀 안 쪽이 환해지는 느낌에 잠시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그것도 잠시뿐, 그는 곧 눈을 떴다. 매번 이불 속에서 5분만, 5분만 더...를 외치다가 이불을 빼앗기고 마는 평소와는 다른 빠른 기상이었다. 그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부지런해지는 날이 있었다. 그러나 아예 몸을 일으키는 것은 잠시 미루었는데, 제 품 속에서 자고 있는 이엔이 지나치게 따끈따끈했기 때문이었다. 초봄. 아직 해가 뜨기 직전에는 유달리 춥게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꼭 한 사람 분의 체온은 지나칠 정도로 포근하고 달았다.
어차피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이다. 이엔도 눈을 뜨기 전이니 조금 게으름을 피우는 것 정도는 괜찮으리라. 그렇게 멋대로 결론내린 란은 베개에 얼굴을 푹 묻으며 이엔을 바라보았다. 이엔은 참 얌전히 자는 편이었다. 란이 꼭 끌어안으면 조금 더 기대어 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란은 손을 뻗어 조금 긴 편인 갈색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간간히 속눈썹이 움찔거린다. 란은 가만히 웃었다. 참... 귀엽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게 감상이었다.
얌전히 보고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눈가에 입술을 꾹 누르고 말았다. 그랬더니 느껴지는 그 감촉이 마음에 들어 조금 고민하고 만다. 고민은 아주 짧았다. 란은 본격적으로 이엔의 얼굴 여기저기에 쪽,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곧 일어날 시간이기도 하고. 조금 일찍 일어난다고 이엔이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화를 내도 귀여울 것 같기는 한데. 자꾸 닿아오는 입술에 조금 잠투정을 부리던 이엔은 스르륵 한 쪽 눈을 떴다.
"... ...형님?"
벌떡! 몸을 반쯤 일으킨 이엔은 제일 먼저 시간부터 확인했다. 시간은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 이른 새벽이었다. 잠깐 안심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란은 이엔의 허리에 팔을 감아 쭉 끌어당겼다.
"지각 취급은 조금 너무하지 않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예요?"
"그냥... ..."
평소에 란을 깨우려고 무척 노력하는 이엔으로서는 약간 억울한 상황이기는 했다. 형님... 평소에도 좀 그래보세요. 아직 잠기운이 묻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귀여워서 란은 입맞춤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쪽, 하고 따뜻한 입술이 입술을 스치고 지나가자 이엔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란은 작게 웃으며 붉어진 뺨을 손으로 문질러주었다. 좋은 아침.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정했다. 결국 진 것은 이엔이었다. 형님은 이길 수가 없다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타박하면서도 살짝 뺨을 부빈다. 이만큼이나 컸는데도 아직 어리광을 부리는 이엔이 사랑스러웠다.
"아침 내가 할까?"
"오늘 당번은 저예요."
달짝지근한 분위기에 편승해 은근슬쩍 아침 당번을 뺏으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하고 만다. 란은 조금 눈썹을 늘어트린다. 이엔은 그게 괜히 제 마음을 약하게 하려는 수법인걸 알았다. 알면서도 매번 넘어가주는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조금쯤은 생각되지만. 그래서 이엔은 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에엔... 말꼬리를 늘려 부르며 란이 부러 더 청승을 떨었다. 이엔한테 맛있는 아침을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줘...
"저도 해드리고 싶단 말이에요... 평소에 일찍이나 일어나세요."
"갑자기 뼈를 때리네..."
란은 허망한 표정을 짓고는 이엔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그럼... 더 잘래. 괜히 삐지기라도 한 척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이엔은 웃고 말았다. 실제로 다시 잠들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겨주었다. 코끝에 살짝 란의 체향이 맴돌았다. 차분한 향이었다. 둘이 같은 집에서 살아서인지, 아니면 서로 사랑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향이 비슷해져간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엔은 그것이 좋았다. 어쩐지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그런 포근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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