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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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즈노미야 란은 길게 하품을 했다. 창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했지. 일어날 시간인데도 어두운 바깥 때문에 일어나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물론 평소에도 그렇게 잘 일어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괜히 더 일어나기 힘든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알람도 먹통인 바람에 하마터면 지각을 할 뻔 했다. (사실 란은 지각을 해도 괜찮다고 주장했지만 이엔이 그 주장을 단호하게 기각했다.) 허둥지둥 일어나 씻고, 아침을 대강 때우고, 그렇게 아침부터 소동이었더니 이른 오전부터 어쩐지 피곤한 기분이었다.

 유리창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를 BGM삼아 엑셀의 칸을 채우던 란은 문득 아침의 이엔으로 다시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이엔... 우산 가져갔던가?

 전 과정을 전부 복기해보아도 우산을 챙겼던 기억이 없다. 가방 속에 예비용 우산을 넣어두는지도 확실치가 않았다. 그저께 갑작스럽게 비가 와서 사용한 예비용 우산을 베란다에 말려두던 건 기억이 나는데. 아침에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탄데다 아직 비가 내리기 전이니 우산을 들고 있지는 않았다. 오늘 수업은 한 건물 안에서만 있으니 밖에 나와서 비를 맞을 일도 없을 것이다. 집에 갈 때만 조금 맞으면 되는데. 란은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오전 수업 뿐이었던 것 같은데. 규칙적으로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빗방울 소리와 겹쳐져 경쾌했다.

 "호즈노미야씨, 점심 먹으러 안 가세요?"

 사교성이 좋은 직원 한 명이 친근하게 말을 붙여왔다. 란은 가물가물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입었다. 나가서 드실거면 같이 갈래요? 또 한 번 친근하게 말을붙이지만 란은 그냥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리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딱히 무례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직원은 머쓱하게 웃어버리고 만다. 사실 굳이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것에 더불어 오랫동안 이야기할 시간자체가 별로 없기도 했다. 점심시간은 1시간 정도 뿐이니까. 차에 시동을 걸며 란은 힐끔 비어있는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학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정문 앞에 천천히 차를 대고 트렁크에 얌전히 잠들어있던 우산을 꺼내 펼쳤다. 흙바닥 사이로 빗방울이 통통 튀어오르고 있었다. 괜히 즐겁게 느껴져 란은 살짝 미소를 짓고 만다. 이엔이 수업을 듣는 건물까지는 정문에서 꽤 멀었다. 란은 평소 걸음보다는 조금 빠른 정도로 걸었다. 타이밍을 딱 잘 맞춘건지 마침 비가 오는 바깥에 손을 내밀어보던 이엔이 보였다. 이엔, 하고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로 불렀는데도 그는 명확하게 란이 있는 곳을 보았다. 우중충한 하늘과 달리 이엔의 표정은 날이 개듯이 환하게 밝아진다. 란은 다가가 이엔에게로 우산을 조금 기울였다.

 "우산 없을 것 같아서."

 "혼자 가도 괜찮았는데요."

 "내가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

 같이 갈까? 웃으며 속삭이는 말에 이엔이 거절할 리 없었다. 우산이 하나뿐이라는 핑계를 대고 꼭 붙어 팔짱을 끼자 서로 심장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웠다. 건물부터 정문까지가 너무 가까워서, 란은 부러 걸음을 늦췄다. 토도독, 하고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즐거웠다. 비가 오는 날도 나쁘진 않네. 콧노래를 부를 것 같은 표정의 이엔을 보며 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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