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이엔은 선반을 열어보며 으으음.. 하는 소리를 내었다. 약간 난처한 듯한 소리에 란이 빼꼼 부엌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 있어?"
"간장이 거의 다 떨어져서요."
꺼내 든 간장 통에는 까만 간장이 바닥에 얕게 깔려 있었다. 어찌 어찌 탈탈 털어 쓴다고 해도 다음에는 분명히 쓸 수가 없었다. 매번 아직 남았으니까 다음에 사야지, 라고 생각하며 미룬 이의 최후였다. 고민하는 이엔의 모습을 보며 정작 매번 간장사기를 미룬 당사자인 란은 슬쩍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따 사러갈까? 그러고 보니 세제도 거의 다 썼는데.”
“이 참에 다 채워 넣으면 되겠네요.”
후라이팬 속에 간장을 털어 넣으며 이엔이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장을 본 게 꽤 오래 전이니 사야 할 게 많을 것이었다. 차를 가지고 가면 조금 많이 사도 괜찮으니까. 밥을 먹고, 이엔이 장 볼 목록을 꼼꼼히 메모하는 동안 란은 같이 나가는 게 좋은 건지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거실과 욕실, 방까지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확인하는 이엔의 뒤를 란은 내도록 졸졸 따라다녔다.
“형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이엔이랑 같이 나가는 게 좋아서... 장보는 거 즐겁잖아.”
운전이 꽤나 매끄러웠다. 조수석에 앉은 이엔은 살짝 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꽤나 집중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 좋았다. 일상적인 순간임에도 두 사람 다 조금 마음이 설렜다. 아주 잠깐, 평화로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차는 마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오늘은 뭐 살거야?”
“간장이랑, 세제랑, 아, 휴지도 한 통 사고요. 고기랑...”
란은 메모지를 꺼내 하나하나 읽어주는 이엔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에 이엔은 낮게 기침을 한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메모지를 반으로 접어 손에 쥐었다. 세제부터 사러 가요. 부러 또박또박 말하는 이엔은 조금 부끄러워 보였다. 그 뒤로는 그냥 평범했다. 마트 안을 같이 걷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메모해둔 물건들을 카트에 담는다. 꼭 정해둔 물건만 사는 건 아니었다. 란이 평소 잘 먹던 브랜드의 햄을 몰래 카트에 담았을 때, 그걸 30초만에 발견한 이엔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민망할 법도 한데 란은 뻔뻔한 표정으로 이거 맛있어. 같은 말이나 덧붙였다.
“야채도 신선하니까 좀 사면 좋겠네요. 피망은 뺄까요?”
“뭐...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이엔이 빼고 싶다면야...”
“그러다 정말 사는 수가 있어요, 형님...”
장난스럽게 대화하며 걷고 있으면, 한 쪽에서 시식코너를 운영하던 도우미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요지는 시식을 해보라는 건데, 란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이며 동생과 함께 장을 보러 왔냐며 질문을 건네었다. 란은 만두 한 조각을 받아들이며 가물가물 웃는다. 긍정도 부정도 않는 미묘한 웃음은 이럴 때 대답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만두 한 조각을 제 입에 넣고, 다른 한 조각은 이엔의 입에 넣어주면서. 문득 그는 이엔의 눈썹이 조금 처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했냐면... 그냥 그대로 얼굴을 기울여 이엔의 눈가에 입맞춰버리고 말았다. 다른 시선 같은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마주치자 그의 붉어진 뺨이 가장 먼저 보였다. 란은 이번에는 환하게 웃는다. 그는 이엔의 그런 표정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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