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오두막
마법사&제자 AU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이파리에 반짝이는 이슬이 엉겨붙어 있었다. 이엔은 꽃의 색과 모양을 꼼꼼히 살핀 뒤에, 내심 마음속으로 합격점을 내린 뒤에야 꺾어 바구니에 넣었다. 햇빛을 듬뿍 받고 자라난 이 꽃들이 마법 약의 재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무엇도 소홀히 여길 수 없었다. 란은 어떤 재료로도 최고의 약을 만들어내지만, 훌륭한 재료를 쓰면 더욱 멋진 결과를 낼 수 있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기뻤다.
흐릿한 기억 속, 아직 거리를 헤맬 때에 손을 내밀어준 것이 란이었다. 마법사의 증표인 망토 사이로 그의 붉은 눈동자가 다정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같이 가자... 조근조근한 목소리와 안아주는 두 팔만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아있었다. 란은 이엔을 안아 한적한 숲 속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고, 이엔을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항상 함께 있어주며 마법을 가르쳐주었다. 마법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그때부터 이엔은 줄곧 란을 좋아해왔다. 스승으로서든, 아니면...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란의 제자지만 자신의 성취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이엔의 걱정 중 하나였다. 란은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지만, 언제나 이엔의 기대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마법 약의 재료들을 키워내는 것만은 란보다도 이엔의 특기였다. 란은 실력이 뛰어난 대신 게으른 구석이 있어서, 꽃을 꾸준히 돌보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애초에 자기 방도 제대로 청소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한없이 늘어져 있을 것 같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런데도 최고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것만은 대단하지만.
바구니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 란은 아직도 침대에 누운 채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해가 중천...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은 지난 시간인데. 이엔은 조금 웃고 바구니를 협탁 위에 올려 둔 채 침대가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스승님, 그만 일어나세요."
아침도 이미 지났어요. 깨우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이불을 걷어내면 베개에 얼굴을 완전히 묻고 있는 란이 보였다. 이리저리 뻗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좀... 귀여웠다. 가볍게 흔들며 깨우자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겨우 고개를 돌린다. 5분만 더... 새어나온 목소리는 그런 칭얼거림이다. 이엔은 부러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의뢰받은 약 마감이잖아요. 얼른 일어나세요. 오늘이 아니면 별 꽃은 져버린단 말이에요. 한참을 더 침대에서 밍기적 거린 그는 겨우 일어나 방을 나선다.
이건 새벽 이슬을 맞은 물푸레나무 가지고, 이건 100일간 달빛을 받은 장미꽃잎 그리고 이건... 이엔이 짐짓 뿌듯한 태도로 바구니에 담긴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모두 란이 만들어야 할 마법 약들의 재료였다. 란은 꽃잎을 한 장 집어 살펴보곤 이엔에게 다정히 웃어주었다. 잘 키웠네... 언뜻 성의없이도 들리는 칭찬이었지만 이엔의 마음이 크게 부풀었다.
란이 칭찬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이든 칭찬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엔은 그런 칭찬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란 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그를 따라가고 싶은데. 사실 또래의 다른 마법사들에 비하면 이엔은 우수한 축에 속했지만, 하필이면 기준이 란이다보니 이엔은 조금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우울해하는 이엔에게 재료 관리를 맡긴 건 란이었다. 성실하고 꼼꼼한 이엔에게 잘 맡겠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실제로 이엔은 어느 정도 자존감을 되찾았다.
"이엔이 없으면 어쩔 뻔했지... 독립시키면 안되겠다..."
이건 요즈음 란의 말버릇이었다. 이쯤 되어선 진심으로, 이엔이 옆에 없을 때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이엔이 독립하고 싶다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까. 미리미리 어필해두겠다는 비겁한 계산이었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 치고는 쪼잔한 속마음이었지만, 이 귀여운 제자가-사실 제자보다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지만- 떠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란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란의 그런 계산과 달리,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이엔의 마음은 걱정으로 물들어갔다.
스승님께서 내 독립을 생각하고 계시는 건가? 그런 질문이 내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또래의 마법사들은 슬슬 스승을 떠나 독립할 때긴 했다. 오히려 이엔은 다소 늦은 편이었고. 하지만 이엔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나 함께...
"스승님께선 제가 독립했으면 좋겠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목소리에 서운함이 담기고 만다.
"응...? 아니, 오히려 하지 말라는 의도였는데..."
"자꾸만 독립 얘기를 하시니까..."
독립하지 않는다고 눈치를 주시는 걸지도 모르고...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란이 평소의 나른한 태도와 달리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난 이엔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아무데도 가지마. 응? 달래는 목소리도 어쩔 줄 모르는 톤이었다. 급기야 란은 이엔을 끌어당겨 품에 넣었다. 어릴 때부터, 이엔이 기분이 좋지 않아보일 때면 이렇게 품에 꼭 넣고 달래주곤 했었다. 이엔은 조심스럽게 란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가까워진 만큼 란의 심장 소리가 자세히 들려온다. 정말로요? 되물어보는 것은 어리광이었다. 이렇게 물어보면 란이 얼마든지 받아줄 것만 같아서.
"응... 계속 같이 있자."
기대한 대로 란은 그렇게 속삭이며 이엔을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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