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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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의 봄
왕경의 봄은 기슭을 따라왔다. 겨우내 얼어 붙어있던 남산의 지암곡 계곡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붓이끼가 푸르게 물들고 겨울 동백이 지는 자리에 산매화가 피어난다. 곧 덜 녹은 얼음결 아래로 숨죽였던 싹들이 일어나며 개나리 꽃가지를 건드리면 청명한 바람결이 풍령 소리와 함께 찾아들고, 산신의 화동이 새재의 굴곡마다 초롱불을 밝히는 듯이 사위가 밝아진다. 그즈음이면 봄을 알리는 징조는 다 보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잠들었던 세상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입춘을 맞아 보리 뿌리를 캐는 아낙들의 환담과 봄 나비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웃음소리, 겨우내 호롱불 아래서 밤을 지새웠던 농부들이 찌뿌둥한 몸을 가누는 소리, 호드기와 풀각시 스러지는 소리. 왕경의 봄은 기슭을 따라 흘러와 수더분한 빛으로 녹아든다.
하지만 온 골목에 봄빛이 가물거린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겠는가. 구릉과 구릉 사이 야트막한 언덕을 홀로 지키고 있을 복사나무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봄이 왔음을 알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서령은 기슭을 따라 걸었다. 붓이끼와 제비꽃, 산매화와 씀바귀, 쑥부쟁이와 민들레를 지나, 아직 덜 녹아서 버석거리는 오솔길과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개울물을 따라가면서. 걸을 필요가 없었는데도 걸었다. 마치 누군가의 발자국을 쫓아가는 것처럼. 발목에 스치는 마른 들풀의 쌉싸레한 감촉과 뭉개지는 진흙의 부드러움을 느끼면서. 그런 식으로 포개어지는 시간을 체감하면서.
언덕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먼 산봉우리에서 흔들리는 깃발이 눈에 띄었다. 붉고 흰 깃발이었다. 어린 낭도들이 봄을 맞이하는 제례 중의 하나인 수렵회를 대비하여 사전에 산중을 답사하는 모양이었다. 서령은 잠시 멈춰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귓가에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이윽고 쟁쟁했다.
‘송화산, 동대산, 무장산, 마석산, 그리고 여기 남산까지. 제일봉에 깃발을 꽂아 알리는 게지. 이곳은 안전하다고.’
‘흥. 바보 같구나. 고작 낭도들 눈에 뜨일 만한 위험이 진정 왕경의 위협일 리 없지 않으냐.’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지백급간.’
‘또, 또, 흉신 취급하지!’
‘하하, 그렇대도 의미는 있지 않겠어.’
‘어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람은 참 이상하다. 천지와 만물의 불후함에 빗대어 보자면 불티같은 삶을 살다 가는 주제에 온 산천에 자신의 존재를 새겨 알리고자 한다. 나라 간의 다툼도, 세가 사이의 알력 싸움도, 돌이켜 보면 삼천세계의 생멸변천 속에서는 아주 짧은 찰나일 뿐인데도 있는 힘껏 생을 불사른다. 그 불티가 아홉 산과 여덟 바다에 조금의 흠집이라도 내기를 바라면서. 그 섬광이 육도를 헤매는 도심중생들에게 감히 등잔불과도 같은 희망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그러나 억겁이 가당키나 한가. 고작 삼십 해만 지나도 기껏 세운 금자탑은 무너지고 말 텐데. 이름은 잊히고 말 텐데. 전장에서 그가 얼마나 용맹했든 간에, 전우들 앞에서 그가 얼마나 담대했든 간에.
맨발에 덜 여문 땅이 짓뭉그러졌다. 흰 발목이 쉽게도 더러워졌다.
겨우내 전장에서 참 기이한 일이 많이도 일어났다고 왕경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서령 또한 들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무장지졸이 되어버린 잔병들을 모아 고작 삼십 기로 삼천의 포위를 뚫고 나아가 본대의 위험을 알린 선봉장의 용맹함을 서라벌의 모두가 입에 올렸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도 없었다. 선봉에 섰다는 그 화랑과 휘하의 낭도들이 없었더라면 승패의 결과가 뒤바뀌는 것은 물론이요 가까스로 살아 개선한 칠할 남짓 병사들의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사람들을 더욱 감명케 했다. 어느 시대에나 영웅담은 인기가 있었다. 쇠망에 가까울수록 더욱 그랬다.
실로 기우는 초승 같은 시대였다. 연호가 바뀐 후의 혼란함을 놓치지 않고 사벌주와 무진주 등지에서 할거하는 군웅들이 저마다 다른 깃발을 세워 올렸다. 각자 뜻이 다른 이들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일삼으며 목소리를 높였고 권신들의 교만함이 월성의 담장을 넘었다. 왕경의 율법과 호령은 더 이상 9주 5소경 끄트머리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망조라는 것은 눈에 띄는 뚜렷함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랑비에 옷 젖는 듯이, 벌초하던 소매에 풀물이 드는 듯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저무는 듯한 패색에도 아랑곳 않고 백진천은 가야 할 길을 간다는 듯한 태도로 말에 올랐다.
‘다녀오마.’
‘버르장머리 없는 것. 그게 지금 지백급간께 올릴 예더냐?’
‘오, 마땅한 예를 올리면 천우신조의 복이라도 내려주시렵니까?’
무진주 일대를 깔고 앉아 제 세력을 불리던 장순흠이 기어코 병마를 일으켜 역란을 도모했다는 소식은 서라벌의 거리를 술렁이게 했다. 누군가는 불안에 떨었고 누군가는 일말의 기대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서라벌로 군머리를 돌리는 대신 낙동강의 지류 황강을 둥글게 면해두고 있어 대군의 도하 지점으로 안성맞춤인 중야성을 공략해 왔다. 난공불락의 요지라고는 하나 중야성을 취하면 이후 창업군주로서의 행보에 막힘이 없을 것이었으므로 실로 교활한 선택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열흘, 본디 공수성은 공성하는 쪽에 압도적으로 불리하기 마련이라 초기의 전황은 언뜻 살피면 중야성을 지키는 파진찬 김계렴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초여름부터 시작된 수성전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 끝나지 않았고 지지부진하게 지체되는 국면은 성안의 병사들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악재가 겹치는 듯이 역병마저 돌았다. 그것을 기다렸는지 장순흠은 지금까지 비축해 두었던 역량을 모조리 드러내어 중야성을 뒤흔들었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신라군은 공황 속에서 스스로를 좀먹어 가다가 어느새 수적인 열세에 처했다. 이길 수 있는 전투였으나, 수의 우열이 뒤집히는 순간 모든 것은 확신의 범위를 벗어나고 말았다. 전장에서 오는 전령기병의 행색 역시 날이 갈수록 호졸근하고 처량해졌다. 전보(戰報)의 내용보다 전령의 행색으로 말미암아 전황의 급급함을 파악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가 되자,
그해 첫서리가 내리던 날, 진천랑은 스스로 자원하여 중야성으로 떠났다.
본디 아무리 험하고 억센 전장일지라도 기초는 수에 있었다. 전략과 전술의 월등함이 수의 열세를 보완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다. 일당백은 어디까지나 수사에 불과했고 제 아무리 뛰어난 철기 삼십 기라고 해도 삼천의 포위를 어떤 희생도 치르지 않고 파훼해 내는 것은 보통의 기지와 길운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파사 이사금과 병부령 이사부와 같은 웅준호걸이 되살아나 온대도 가까스로 될까 말까 한 일이었다.
일인의 용감무쌍함과 호연지기만으로 수의 절대적 우위를 뒤집을 수 있다면 육도와 삼략과 같은 병법서가 다 무슨 소용으로 쓰이겠는가.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전장지사 역시 그랬다.
그러므로 악전고투 끝에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었다던 낭도철기 서른 기가 전부 살아왔다는 말은 헛소문이었다. 서령은 개중 선봉을 섰던 한 기가 끝내 되돌아오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의 목숨은 맞바꾼 생의 값으로 치러졌다.
시전 거리에서 이야기 도중 누군가 선봉에 섰다던 화랑의 이름을 묻자 가장 적극적으로 소문을 떠벌리던 이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 돌아오는 개선 행렬의 맨 앞줄에 서지 않았던가? 그 말에 서령은 웃었다. 대개 사람들은 산 사람의 이름보다 비절하게 죽은 이들의 이름을 더욱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따금 어떤 이름들은 단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나도 쉽게 잊히곤 했다.
“앞줄은 무슨.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헤맸다. 서령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가면서 전장에 선 진천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 시간을 끄는 지구전이 더는 무리라고 판단한 그는 별동대로 적의 측후를 치는 양동을 제안했으리라. 더 이상 버텨봐야 천천히 말라 죽어갈 뿐이며 이는 실로 적들이 바라는 바일 테니 과감히 결단을 내리시라며 파진찬 앞에서 간언하면서. 그러나 누가 그 어려운 선봉에 나서느냐며 탄식하는 파진찬에게 자신이 기필코 길을 열겠노라며 반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 충정에 파진찬이 감복한다. 신속히 별동대가 꾸려진다. 백진천이 그 선발의 장을 맡는다. 화랑기가 거세게 펄럭인다……. 이윽고 전장의 새벽이 찾아오고.
미련한 녀석. 그 용맹도 기개도 죽어 없어지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후세 사람들이 칭송할 공적도 광영도 스스로는 알지 못할 텐데,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상 그것이 다 무슨 쓸모이며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서령은 봉우리의 홍백기를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살아 돌아오지 못했음에도 스스로의 삶 맞바꾸어 살린 기천의 목숨으로서, 용맹한 선봉장의 기개 넘치는 무용담으로서, 승전보의 기쁨으로서 시대의 산봉우리에 꽂힌 홍백기가 되어 나부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까. 너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길까.
서령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차례 굽잇길을 오르자 마침내 언덕의 고갯마루가 보였다. 앙상한 복사나무 가지가 아직 찬기가 남은 바람에 외로이 흔들리고 있었다. 서령은 그 곁으로 다가가 손을 짚었다. 봄이 되었는데도 복사꽃은 피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진아.”
언덕 아래 까마득한 풍경을 내려다보던 서령이 입을 열었다. 환상인지 기억인지 모를 진천이 곁에 와서 섰다.
‘왜 부르지?’
“너 내가 춤추는 모습 본 적 있더냐.”
‘무서운 소리를 하는군. 네가 춤을 추면 나라가 망한다지 않았어.’
“쓸데없는 잡설은 말고 대답이나 하지 못하겠느냐?”
‘아주 멀리서 딱 한 번.’
가까이서 다시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질 않았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염치 불고하고 떼나 써 볼 걸 그랬어. 진천이 입매를 올려 웃었다. 서령이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여주마.”
‘아서라, 네가 춤을 추면……’
“나라가 망한다고?”
서령이 손을 둥글게 뻗었다.
“그 반대니라.”
시대가 저물고 사직이 위태로우며 종사가 쇠잔하는 때에 사람들은 봄이 와도 봄인 줄 모르고 추위에 떨곤 했다. 꽃망을 맺히지 않는 꽃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따사로운 봄날이 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살 에는 응달의 한기가 가시길, 좋은 날이 오길,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이 우리를 가엾고 처량히 여기길.
봄이 와도 봄이 오지 않고, 가지가 여물어도 꽃이 피지 않고, 기다리는 이는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은 어떤 징조이겠는가. 대신 꽃을 피우고, 봄을 부르고, 떠나간 이를 그리지 않고서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복사꽃이 피지 않았는데 어찌 봄이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연청색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며 굽이치는 물결이 일제히 일어났다. 손끝이 진천의 뺨에 잠시 가닿았다가 이내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멀어졌다. 느리고 완만했지만, 분명한 춤의 첫머리였다. 이윽고 춤사위가 활짝 피어나는 듯이 흐드러졌다. 진실로 복사꽃처럼.
비로소 왕경에 마지막 봄이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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