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25화
돌아온 성녀 11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전 펜슬)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돌아온 성녀 11
루블, 히즈, 보쓰
헬레니온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마데아의 옷에 묻어난 흙을 털어주었다. 아마데아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그의 손길을 만류하며 스스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불현듯 아트레우스에 관해 생각이 났다. 쭈뼛거리며 헬레니온에게 물어보았다. 잘못했다는 건 아는지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아트레우스는, 그게······. 괜찮은 건지······.”
종국에는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뒷말은 먹혀들어 갔다. 몹시 죄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웅얼거리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헬레니온은 아마데아를 안심시켰다.
“아트레우스는 괜찮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다만······.”
아마데아는 그가 말을 길게 끌자 긴장하며 그의 이어진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헬레니온은 싱긋 웃으며 말을 돌려버렸다.
“디아나 님. 거리에 나온 김에 드시고 싶은 건 없으십니까? 이곳에서 조금만 가면 시장가가 나옵니다.”
긴장하다 맥이 풀려버렸다. 헬레니온을 살짝 흘겨보고는 못 들은 척 넘겨버렸다. 사고를 친 장본인인 주제에 염치없이 되물을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아니. 지금은 서둘러 돌아가는 게 먼저다. 내가 얼마나 멀리 왔지?”
“꽤 거리가 있습니다. 거의 30분은 걸리겠군요.”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힘든 줄도 몰랐다. 어쩌면 울면서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데아는 뒤늦게 얼굴에 눈물 자국이라도 남아있는 게 아닌지 의식되기 시작했다.
한번 의식하니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아까 성대하게 넘어지면서 얼굴까지 흙투성이인 건 아닐까? 지금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지?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아마데아는 헬레니온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헬레니온의 시선이 잠시 냉정해졌다.
‘아까의 기운은 누구지? 분명 신성력이었는데······ 왠지 낯이 익어.’
아우레티카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신성력을 지닌 인물이라고는 눈앞의 전(前) 성녀였던 아마데아정도 밖에 없다. 성녀 혹은 성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신성력이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딱히 그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감각은 신성력에서 묘한 익숙함을 느낀다고 외쳐댔다.
“으으······. 어쩌다 이렇게 멀리 온 거지. 날 찾는 게 쉽지 않았겠구나, 헬레니온.”
아마데아가 다시 그에게 말하기 시작하자 헬레니온은 정리하고 있던 의문점을 멀리 던져버렸다. 다시 연상하려면 골치 아프겠으나 그에겐 그녀의 말이 더 중요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꽤 멀리 갔던 것 치고는 나를 빨리 찾았구나. 사람을 푼 것이냐? 우연히 네가 나를 발견했고?”
갑자기 떠올랐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를 이리도 빨리 찾은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한 번 의심하니 모든 게 수상했다. 그가 그레이스에게 거짓말한 것은 오해라고 이해했지만 다른 거짓말을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아마데아의 입가가 굳어감을 예리하게 감지한 헬레니온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대로 더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녀에게만은 숨김없이 다 드러내고 싶은 속내도 있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긴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습니다. 아까 같은 무뢰한들이 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헬레니온의 얼굴을 보아하니 의뭉스레 말을 돌리려는 수작은 아닌 듯했다. 아마데아는 새침하게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들였다. 그러려던 건 아니었으나 더는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도달한 곳은 그가 말했던 시장가였다. 얼마 걷지도 않았건만 아까 그토록 찾던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있는 것 같았다. 시장과 골목은 큰 벽과 벽에 붙은 계단으로 층이 나뉘어있었다. 그렇게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못한 이유를 알 거 같다.
아마데아는 잠시 이렇게 딴짓을 해도 되는지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다 그레이스를 떠올리니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지 곤란해졌다. 역시 잠깐이라도 시간을 끄는 편이 낫겠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아마데아는 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장은 오가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쳤다. 과일 등을 쌓아두고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길거리 음식을 파는 작은 점포 등등. 아마데아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더구나 그간의 사정으로 인해 거의 저택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했기 때문일까. 시장을 구경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헬레니온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그녀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시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의 안내를 따르니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정신없이 눈앞의 점포를 향했다.
“어서 오십쇼. 나란히 데이트십니까? 여기 장신구 좀 보고 가시오!”
아마데아의 시선이 반짝이는 장신구에 고정되었다. 아무리 신전이 세속화되었다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청렴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그녀가 걸칠 수 있는 장식품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성녀 시절에 끼고 다니던 장신구에 비하면 질이 한참 떨어지는 하급품에도 눈이 갔다. 하급품이든 상급품이든 그녀의 눈에는 모두 반짝이는 이쁜 장신구일 뿐이었다.
궁금하면 만져봐도 된다는 상인의 말에 아마데아는 목걸이 하나를 조심히 들어보았다. 원석을 제대로 가공하지 않은 채 박아둔 목걸이는 약간 묵직한 감이 있었다. 그저 원석을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깎아두기만 한 싸구려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데아의 그런 시선을 진즉 눈치챈 헬레니온은 잠시 고민했다. 상인이 파는 물품 중에 그보다 나아 보이는 것도 있었으나 그녀의 시선은 오직 그 목걸이만 향해있었다. 더 나은 것을 사주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이 충돌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고민을 종결시켰다. 둘 다 사면 되는 거다.
헬레니온이 결론은 내리는 사이 그녀는 목걸이를 내려두고 다른 곳을 향했다. 헬레니온은 서둘러 값을 지불하고는 아마데아를 뒤따라갔다.
“목걸이가 마음에 든 게 아니었습니까?”
“되었다. 내가 뭘 잘했다고 너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한다는 말이냐.”
헬레니온은 이미 계산한 목걸이를 건네지 않고 뒤로 숨겼다. 아무래도 속이 시끄러운 모양이다. 그는 그녀의 기분전환을 위해 다른 것을 제안했다.
“그럼 제가 요구하는 건 따라주실는지요?”
그 말에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가던 아마데아가 멈추어 섰다. 목걸이에서 미련을 떨치려 황급히 멀어지던 그녀를 붙잡은 한마디였다.
“······그래. 말해보아라. 내가 할 수 있다면. 아니, 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노력해볼 터이니.”
헬레니온은 순순히 나오는 대답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약간의 장난기도 느껴졌다.
“그럼 오늘 하루는 저와 데이트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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