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정체가 무엇이냐, 말하여라 (上)
칼부림이 일어났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가는 건 쉬웠다. 정확히는,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은열과 율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어도 가볍게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장은 강당이었다. 그것 역시 쉽게 알 수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곳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경찰과 선생님들이 긴급하게 학생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10대의 호기심을 어른들이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어른들도 어른의 일을 해야 했고, 그 결과 아비규환 그 자체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
율은 수치심을 참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사건 해결하러 왔습니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퇴마사입니다!”
은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 사이에 낑겨서 곤란해했다. 율은 뒤따라 오는 일행이 없는 편이었기 때문에 뒤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문득 은열이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열! 잡아요!”
인파 속에서 율은 은열에게 손을 건넸다.
둘은 손을 잡은 채로, 인파를 뚫고 강당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율의 복장을 보고 그를 통과시켜주었다.
——안쪽은 의외로 한산했다. 안전을 이유로 학생들을 밖으로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이 거의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황을 진압했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안에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경찰 역시 몇 명이 있었다. 그 어른들 역시 목표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율과 은열은 강당을 뚜벅, 뚜벅 걸었다.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저건가.”
은열이 손으로 가르켰다. 그 손이 닿은 곳은, 강당 중앙이었다.
여학생이 있다. 단발머리인데, 어딘가 귀기가 서려 있는 것처럼 이상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공포영화처럼 팔을 뒤틀거나 하지 않았다. 네 발로 기어다니지도 않았다. 의자에 테이프로 묶인 채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다만 생김새가 조금 이상했다. 얼굴 일부분이 어둡게 보였다. 썩어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화장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시선을 위로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상한 기운, 율이 이름 붙이기로는, ‘쎄함’이 느껴졌다.
“이런 건 처음 봐.”
은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율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기운’ 말이죠?”
은열도 율도, 괴기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소녀의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색깔로 나타내자면, 보라색과 검은색, 그리고 붉은색이 합쳐져 있다. 인간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요괴의 기운도 아니었다.
그보다, 처음 본다고. 율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은열이라면 모르는 요괴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그도 처음 보는 요괴라니. 그걸 내가 상대할 수 있는 걸까….
“귀연산에 없는 요괴란 말이에요?”
“외래종일 가능성도 있는데, 모르겠어. 단순히 빙의해서라면 내가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 …너한테는 어떻게 보여?”
“저에게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아는 어떤 요괴와도 닮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부딪히는 수밖에.”
은열은 그렇게 말한 다음에 그 소녀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생기자, 그들은 놀랐다. 그리고 은열에게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두 분은 누굽니까? 어떻게 들어 오셨죠?”
선생님처럼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물었다. 율은, 업무 때문에 배운 사무적인 말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 학생이 여기에 뭔가 귀신 관련 일이 있다고 신고했거든요! 그런데 강당에 사람이 모여 있지 뭡니까. 그래서 왔는데….”
시선을 다시 학생 쪽으로 힐끔, 옮겼다. 아직 어떤 상태인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제대로 온 것 같군요. 저 친구는 제 조수입니다.”
은열은 그 말에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율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율의 능글스러운 말에 경찰이 입을 열었다.
“너, 고등학생 아니야? 코스프레하고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에헤이, 저는 엄밀한 사업자거든요.”
여기까지 믿지 않는다면 가문의 이름을 댈 생각이었다. 주위에서 원연화가의 이름을 대면 모를 사람이 없었고 경찰이면 더욱 그럴 것이다. 현덕시에는 기이한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니까.
하지만, 경찰은 그냥 불만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 딱히 돌아가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때 문득, 은열이 입을 열었다.
“율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아.”
그가 입을 열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에 집중했다. 목구멍에다 뭘 발라놨나? 쟤가 입만 열면 뭐 저리 이목을 집중시킨담?
“요괴나 귀신은…. 율의 말대로, 우리가 전문이니까 믿고 맡겨도 돼.”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율과 은열은 중앙으로 향했다. 테이프로 감겨 있는, 그 학생에게로.
“학생한테 이래도 되는 거예요…?”
선생님들 역시, 자신들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을 연 건 경찰 쪽이었다.
“도저히 억제가 안 되어서, 부모님 허락을 받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테이프로 묶어 놓으신 것까지는 모르지만,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은 확인했거든요.”
경찰다운 조치법이로군. 율은 미간을 좁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소녀의 손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동안 뭘 했나요…?”
“같은 반 아이를 찌르려고 했어요.”
선생님이 말하기론 이랬다.
이 학생은 ‘최유나’고, 고등학교 1학년이다. 학교생활 부적응도 아니고, 친구도 몇 명 있었다. 집안이 엄하다는 이야기도 없었고,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체육시간에, 어디선가 칼을 숨기고 들어와서 주변 아이에게 휘두르려고 했다. 패닉한 아이는 선생님에게 달려갔고, 체육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이 몰려와서 칼을 뺏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유나는 이상하게 변했다.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비명을 지르고선, 주변에 있는 아이를 공격하려 했다. 선생님은 경찰과 부모님에게 신고하고,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출동. 그리고 부모님은 부정하면서도, 최대한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진구가 퇴마사를 부른 것도 알 것 같네….”
율은 전체 줄거리를 듣고 나서 그러한 감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은열을 보았다.
“요괴… 짓이겠죠?”
“귀신일 확률이 좀 더 높아. 행동에 규칙이 없잖아. 근데….”
“근데? 그리고 규칙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귀신은 현세에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원한을 중심으로 원하는 대로 행동해. 반면에 요괴는 자신의 욕망이 있어서, 그거에 초점을 맞추면 동기를 파악하기 쉬워. 하지만…. …유나는 그렇지 않아. 그냥 제멋대로야. 제멋대로, 칼을 들고, 주변에 휘둘렀던 게 전부잖아.”
“주변 사람을 해치는 게 욕망일 수도 있지 않아요?”
은열은 고개를 저었다.
“행동에 규칙도 없고, 욕망도 없으면, 그냥 꼭두각시에 불과해. 저건 그냥 조종당하는 것에 가까워.”
마치 단언하는 듯한 말이었다. 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조종당하고 있다면 그 연결 고리를 끊어내면 될 일이다. 몸 안에 들어간 빙의를 끊어내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어떤 사제가 나오는 영화에서처럼 아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그 귀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말이지….’
율은 잠시 고민하다가, 은열과 비슷한 거리 앞에 나섰다. 모든 어른들이 그 두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르침을 떠올렸다.
원연화가에서 배운 것,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 심지어는 어제 요괴들에게서 듣기도 한 것.
율이 소녀 앞으로 다가갔다. 소녀는 고개를 슬쩍 들어 율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서는 희번득하게 웃었다.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웃음이라고 할 수 없었다.
퇴마사?
비웃는 목소리도 아니고 기뻐하는 목소리도 아니다. 그 웃음은 이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미천한 인간을 내려다보며 짓는 웃음 같았다. 가소로움의 웃음. 그것은 가소로움의 웃음이었다.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 금방 구해줄 테니까.”
율은 명찰을 슬쩍 보았다. 명찰에는 ‘김유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존재의 이름은 유나가 아니다. 그 숨겨진 이름을 찾아야 한다.
가장 원시적이고 직설적인 방법은 본인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존재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줄 지는 별개의 문제다.
인간 퇴마사가 이제는 요괴랑 같이 다니나 보지?
“조용히 하시지.”
율은 그렇게 말한 다음, 소녀의 이마에 부적을 붙였다.
의자가 덜컹거렸다. 그 힘이 어디서 난 것인지, 팔다리가 묶여 있는데도 온전히 몸의 힘으로만 의자를 흔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은열이 다가와 의자를 붙들었다. 율은 눈만 돌려 그것을 확인했다.”
“꽉 잡고 있어야 돼요. 튕겨져 나갈 수도 있어요.”
“…성혜가 하는 걸 봤으니까 괜찮아.”
율은 순간, 은열이 물리적인 힘으로만 그를 제지하고 있다고 깨달았다. 요력을 쓰지 않는 건가. 하긴, 주변에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저, 도와드릴까요?”
의자를 붙잡은 것을 보자 건장한 남자들이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오지 마!”
은열이 그렇게 외쳤다. 순간 무슨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어른들은 주저했다.
“…우리 둘은 이들의 힘에 내성이 있어서 괜찮아. 하지만 요괴와 귀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방지하기가 힘들어.”
은열은 그렇게 말한 다음, 자신의 팔을 걷었다. 그리고 율을 보았다. 율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할게요.”
“요괴들에게는 이름이 있어.”
“그렇죠.”
전날 밤, 은열은 율에게 알려주었다. 물론 그 전에 ‘퇴마사니까 알겠지만,’ 하고 운을 띄우기는 했다. 율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걸 찾는 게 우리의 첫 번째 목표야.”
요괴를 퇴마하려면 여러 방법이 있었다. 진언을 외우거나, 퇴마 도구를 사용하거나. 후자는 보통 사람들이 아는 퇴마였다. 부적을 붙여서 약화시키거나, 소금을 뿌려서 내쫓거나. 요괴마다 다양한 약점을 노리는 민속적인 방법도 있고, 퇴마사나 무당만이 알고 있는 방법도 있었다.
전자는 아주 특수한 방법에 속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그 요괴가 처음 생겨난 요괴라면 이름은 어떻게 찾아요? 그리고, 약점도 모르니까 온갖 것을 시행착오를 해야 할 거고요. 그런 사이에 요괴가 가만히 있으라는 법도 없고….”
“대화를 통해 이끌어 내야지.”
은열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율도 그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서양의 퇴마사, 즉 사제들이 악마를 쫓을 때 그런 방법을 썼더랬다. 하지만 그것은 서양의 방법이지 한국의 방법이 아니라고, 율은 원연화가로부터 배웠다.
왜냐하면 요괴는 인간이 아니니까.
물리적으로 쫓기만 하면 되고, 우리는 그 방법을 몇 백년이나 축적해왔으니까. 그걸로 될 거라고 말했다.
‘성혜 삼촌이 왜 집을 나왔는 지 알 것 같네….’
율은 삼촌이, ‘어느 순간부터 가문에서 배울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 걸 들었었다. 그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현장의 일은 집에서 배우는 고리타분한 지식과 들어맞지 않는다.
“나는 요괴를 물리적으로든, 요력으로든 붙잡을 수 있어. 네 역할은 그 요괴를 심문하는 거야. 일단 붙잡으면, 너는 인간의 지식을 이용해 요괴에 닿을 수 있지. 그렇지?”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 역할이기도 하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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