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6. 요괴 본 사람 어디 없어요?

20241021 퇴고전


율은 한옥집에서 일어났다. 등에서 느껴지는 열기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거, 온돌이다.

그래서 순간 자신이 본가에 있는 줄로 착각했다. 설마 또 거긴가?!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율

은 어젯밤 있었던 일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현덕고등학교’에 들어간 요괴를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다가 너무 시간이 늦어졌고, 그만 요괴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은 다음 잠까지 청해버렸다. 은열은 흔쾌하게 방을 내주었고, 밤이 되자 은열을 제외한 모든 요괴가 창파관을 떠났다. 말하자면, 이틀 정도밖에 보지 않은 요괴의 집에서 자버리고 말았다.

“어으, 추워.”

밖으로 나오자 추위가 율의 몸을 감쌌다. 새벽의 산공기는 차가웠다. 안개가 가득한 산은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창파관의 사랑채와 그 앞마당 정도일까. 새소리가 간혹 들려오곤 했다. 그런데 그 새들이 보이지 않아서, 이상한 공간에 툭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5시 반이었다. 전파가 터지지 않아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시계 정도로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화면에서 시선을 떼자, 은열이 보였다. 그는 처마 아래의 마루에 앉아서 마당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당이 아니라 그 근처의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율은 문득 그가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렇게 이른 새벽에 나와서 옷을 다 입고 저렇게 있는 걸까. 원래 일찍 일어나나?

“은열?”

놀라는 대신에 귀가 쫑긋였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개처럼. 율은 그 반응을 보고, 도리어 자신이 놀랐다.

“벌써 일어났구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뭐야, 사람이 부르면 눈을 마주치고 대답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율은 대신 그의 옆으로 갔다.

“말할 때 사람 눈 보고 말하라는 거, 그 스승이라는 사람이 안 가르쳐 줬어요?”

“…그래, 미안.”

은열은 그렇게 말한 뒤 그제야 옆을 보았다.

율은 그의 눈을 보았다. 언제 보아도 슬픔이 가득한 눈동자다. 아니, 슬픔보다는 근심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 은열은, 마치 세상이 내일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처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은열이 더 일찍 일어났잖아요?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길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요.”

“아무것도.”

율은 그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듣고, 현이 왜 그를 떠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은열은 자신이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은근슬쩍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율은 그걸 알고 있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흥 하는 소리를 내어 대화 주제를 돌려버렸다.

“나는 원래 일찍 일어나.”

“얘기하고 싶으면 말고요! 나는 지금, 나를 언제 잡아 먹을지도 모르는 요괴들 사이에서 벌벌 떨면서 자다가 일어난 참인데….”

“안 먹는다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율은 헛기침을 한 다음, 이번에야말로 주제를 돌리려고 했다.

“학교는 보통 5시에 끝나니까, 저녁 즈음에 현덕고등학교에 도착해야 해요. 그래서 아침까지는 요괴들을 좀 더 수소문하고, 인간 세계로 내려가서 요괴에 대한 소문을 수집할 거예요. 어제 이야기했죠?”

은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괴들이 해코지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옆에 내가 있으니까.”

어제 일사천리로 모든 게 결정되었다. 처음에 떠올린 방안은 학교에 잠입하는 것이었다. 은열과 율이 함께 학교에 가보기로 했고, 둘은 정규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수업과 수업 사이에만 다닌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것도 학교 선생님에게 걸린다면 거짓말을 아주 잘 해야 했고, 가능한 한 선생님은 피해서, 학생들 사이에 숨어 다녀서 조사해야 했다. 조사하는 시간보다 굳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 아쉬운 점이었다.

하루나 이틀 정도 그 학교에 다녔다는 증거를 하루 아침에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잠입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침에는 요괴들의 목격담을 수집할 예정이었다.

율은 기지개를 폈다. 그런 와중에, 그를 빤히 바라 보고 있던 은열이 질문을 건넸다.

“요괴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겠어, 율?”

문득 은열은 그렇게 물었다.

청영의 묘사대로라면, 귀연산을 내려간 요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다. 둘째. 동물이 오랫동안 살아 요괴가 되는 영물이 아니라, 여러 동물이 합쳐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셋째.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율은 마지막 사실에 주목했다. 만약에 앞의 두개만 만족했다면, 은열과 율이 당장 산을 내려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호랑이가 내려간 거라면 인간 선에서도 제압이 되고, 영물이 내려간 거라면 아마 원연화가나 다른 퇴마사가 감지하고서 퇴마하러 갔을 거에요. 그게 아니라면 뒤늦게 신고해서 퇴마사를 부르거나, 둘 중 하나는 했겠죠.”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은열은 인내심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감이 잡히는 게 없는데…. 장산범 같은 것도 아닐테고. 삵이나 고양이 같다고 했는데 크기는 그 녀석들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아니면 역시 호랑이인가…. 아, 새로운 요괴일 가능성이 있나? 요즘도 새 요괴가 산에서 내려오곤 해요?”

율은 은열에게 역으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괴는 하나의 종족이 아니라 개념이라서, 언제든 생겨나고 없어질 수 있어. 그러니까 새로운 요괴가 생겨난 것도, 그가 인간을 강하게 해치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

그렇다면 사실 후보를 추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율은 생각했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 머리를 싸매보았자 두통만 일어날 뿐이었다.

“슬슬, 천천히 내려갈까요?”

창파관보다 아랫턱에 사는 요괴들도 있다. 은열은 자신이 안내하겠다며, 앞장섰다.

*

소득이 없었다.

청영 말고 그 요괴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림을 잘 그리는 태호가 몽타주까지 그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요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커녕 털끝조차 보았던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옆동네 호랑이 양반이 이렇게 생겼었나…. 아니, 애초에 이게 호랑이기는 한가?”

“이런 요괴는 처음 보는데요.”

“아니, 그보다 인간이 왜 요괴를 조사하고 다니는 거요!”

…그런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다.

“전혀 소득이 없잖아-!”

율은 귀연산을 내려가며, 절규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은열은 아무런 기대도 하고 있지 않은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율은 요괴들에게 거부까지 당했기 때문에 감정적인 소모가 더 심했다.

“요괴들은 원래 그래.”

은열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하자, 율은 조금 토라졌다는 듯이 답했다.

“뭐가 ‘원래 그래’인 거예요!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지. 왜 인간이라고 그렇게 꼽을 못 줘서 안달인 건가요! 진짜, 듣는 내내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자신의 화를 은열 앞에서만 풀 수 있다는 듯이, 율은 계속해서 분개했다. 인간으로 활동할 때에는 고작 늙은 어르신들이 핀잔 주는 정도였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나, 다양한 연령대처럼 보이는 요괴들에게 고루 무시 받으니 그 자존심이 조금 긁혀버렸다.

“그래도 나는 무시하지 않았으니까, 조사 내용에 거짓말은 없을 거다. 거짓말하는 요괴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옆에 있으니까 안 그러더군.”

귀연산 내에서 대체 은열은 어떤 존재인 걸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율은 은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열 씨는 귀연산에서 대체 어느 정도 위치인 거예요? 촌장? 아니면….”

“일단 촌장은 아니야.”

단호하게 말했다. 요괴들은 대빵(?)이라는 개념이 없는 걸까. 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냥, 존경하는 어른 정도일까. 나는 예전의 힘을 잃어버려서 그렇게 강하진 않아. 힘으로만 따지자면 다른 요괴들이 더하지.”

은열은 거기에 어떤 말을 덧붙이려고 했다. 율은 그 말을 들었다. ‘존경하기로는 백온 선생님이 더….’ 그렇게 말했었다. 새로운 요괴의 이름이 나왔는데, 은열이 얼버무린 것이었다.

대체 누구길래 그럴까.

그러한 의문을 풀기도 전에 귀연산 입구에 도착했다. 은열은 샛길로, 사람들이 보지 않는 나무 뒤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둔갑하고 가야겠지.”

은열은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힘을 집중하는 걸까.

그게 맞았다. 율의 눈에, 근처의 요기(妖氣)가 변하는 게 보였다. 느껴졌다. 근처의 기운이 바뀌고 있다. 은열에게로 모인 다음, 다시 재편성 된다. 그리고…. 사라진다. 요괴다운 기척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율은 눈 앞을 보았다.

귀만 없어졌는데도 제법 학생처럼 보인다. 요괴여서 그런지 얼굴이 시간의 때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교복은 입고 있지 않았고, 한복차림이었다. 그러나 하늘색 머리 때문에 묘하게 현대인처럼 보이는 구석도 있었다.

‘인간 모습도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

율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뭘 그리 빤히 봐.”

“아, 아녜요! 그냥 둔갑이 잘 되었나~ 해서!”

능청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율은 앞으로 향했다. 이제는 인간을 조사할 시간이다.

*

현덕고등학교 근처는 매우 한적했다. 현덕 시 자체가 소도시인 것도 있었지만, ‘학교 근처에 뭐 이렇게 놀고 먹을 게 없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심했다. 율은 가끔 이 학교에 다니는 친구, 진구에게 불평을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사하기는 더 쉬웠다. 학교 근처에는 할 일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여유로운 건지, 매번 의자에 앉아 거리를 지켜보는 어르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이 내려왔어!”

율과 은열의 머리칼을 지적하는 사람, 딴소리만 하는 사람, 자연스럽게 스몰 토크로 이어지다가 산으로 가는 이야기만 하던 사람을 뚫고 드디어 유의미한 증언을 들었다. 율은 눈을 반짝였다.

“범이요?! 최근에 보신 거 맞죠?”

“그렇지. 사흘 전 밤이었으니까.”

청영이 그 날 바로 그 요괴를 보았다고 했다. 이틀 전, 어제 보았다는 목격담이 제일 유효했지만 그래도 본 사람이 아예 없는 것보다야 낫다. 율은 집요하게 질문했다.

“어디서, 언제 보신 거죠? 특이한 점은 있었나요? 사람을 해쳤다거나…. 이 사실을 누구한테 말한 적이 있나요?”

“율, 질문이 너무 빨라. 상대는 어르신이잖아.”

“밤산책하고 있는데, 글쎄, 산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가봤지. 그런데 거기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언덕을 내려왔더래?”

청영의 증언과 일치했다.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요한 키워드를 스마트폰으로 메모했다.

“어느 쪽으로 갔나요?”

“그것까지는 못 봤는데, 마을로 호랑이가 내려오는 건 예삿일이 아니라서 전화로 경찰에 신고했지. 근데 잘 처리했다던데? 마을에서도 별 일 없고. 경찰들이 어떻게 잘 처리한 거 아닐까 싶구만.”

하지만 이야기는 싱겁게 끝냈다.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수사할 곳은 경찰서다.

율과 은열은 그 어르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떠났다. 현덕 시의 경찰서라면 여기서 버스를 타고 20분은 더 가야한다. 즉, 현덕고등학교와 상당히 떨어진 곳을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동선이 꼬이는데…. 그리고 의문점이 있어요.”

“뭔데?”

“호랑이가 처리당했다면 현덕시 내부에서 큰 뉴스가 되지 않겠어요? 사진도 막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그런데 처리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신고가 들어간 다음에 어떻게 된 거지? 진짜 처리하긴 한 건가?”

인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은열은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로, 율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경찰이 엮이면 곤란하다. 그들은 요괴의 존재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을 공직자답게 처리하기 때문에, 오컬트 수사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삐용- 삐용-

경찰차가 은열과 율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둘은 차도 옆의 인도를 걷고 있었고, 차가 지나갈 때의 바람이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경찰차가 빨리 다니는 것을, 율은 그동안 보지 못했다.

“아니, 뭐야? 뭔 일이래?”

둘과 같은 방향으로 걷던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휴대폰을 올리고 있던 사람들은 은열과 율보다 더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뭔 일이지?”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에는 ‘진구’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율?”

전화를 받자 진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침착하지만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어, 진구야?”

율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주로 나오는 것은 현덕고등학교에 대한 언급이다. SNS에 뭔가 올라간 모양이었다.

설마.

“지금 시간 있어?”

“어, 지금 학교 근처인데. 왜? 너네 뭔 일 났냐? 경찰차가 그쪽으로 가던데?”

“아니, 그….”

진구는, 머뭇거리면서 말하기를 망설였다. 은열은 옆에서 조용히 있었다.

“방금 학교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는데…. …학생이 귀신 들린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경찰차는 현덕고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열과 눈을 마주쳤다. 은열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너 무슨 영안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다른 애들도 그래. 갑자기, 얌전했던 애가 발작하듯이 칼부림을 하니까, 뭔 귀신 들린 거 아니냐고 해서…. 혹시 올 수 있어?

“지금 갈 게!”

율은 전화를 끊었다. 내용을 함께 듣고 있던 은열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정보를 재배열했다.

“요괴와 관련이 있을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것도 꽤 높아요. 빨리 가는 게 낫겠어요!”

둘은 빠르게 학교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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