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5.5. 막간

이를테면 그런 풍경.

아무도 없는 교실, 오후 5시 반. 해는 져가고 있고,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남아 업무를 보고 있다. 복도에는 방과후 활동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몇몇 학생들 밖에 없다. 노을빛이 창문에 들어와, 기묘하게 따뜻한 감각을 선사한다.

유나는 그런 교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자신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그렇다. 대학을 어딜 넣을 거냐. 앞으로 무슨 직업을 하고 싶냐. 아니면 유행타는 것 중에 어떤 걸 좋아하느냐.

늦게 찾아 온 방황의 시기였다. 그러나 늦게 찾아왔다고 해서 방황이 특별하게 가볍거나 무겁지는 않았다. 모두와 똑같았고, 유나는 몇 년 전의 자신이 이것을 겪었어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자신했다. 천성이 예민했고 사고를 어른스럽게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또래보다 몇 년 일찍 늙게 살아간다.

교실의 문이 열렸다.

분명히 닫아뒀는데.

일부러 창문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학원 땡땡이를 치고 있었는데.

게다가 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친구라고는 사귄 적이 없다. 아무도 유나를 찾지 않았다.

문에 서 있는 것은 여학생 한 명이었다. 긴 머리, 눈을 가리고 있는 모양. 교복은 현덕고등학교의 것이 맞았으니 외부인은 아니었다. 셔츠에 다는 리본의 색깔을 보니 똑같은 1학년이었다. 유나는 그 여학생을 처음 보았다. 같은 반 학생은 절대 아니었고, 학교 내에서 오가며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누구야?”

학생인 것을 확인한 다음으로는,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 아이는 앞문을 닫은 뒤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유나야?”

낯선 말투.

‘유나 맞지?’도 아니고, ‘이런데서 뭐해?’도 아니었다. 경찰이 용의자를 확인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유나는 멀리 서 있어서, 눈동자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그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데, 왜? 나한테 볼 일 있어?”

“맞아.”

“뭔데?”

그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유나는 문득, 그 아이가 무서워졌다. 그 자리에 오롯하게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이 떠나지 않는다.

밖에서는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 문득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불길한 붉은빛이 창문으로부터 교실까지,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 아이가 아주 가까이 왔다. 검은 긴 생머리. 이마를 가린 앞머리 때문에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커튼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조금씩 그 눈이 보이는 듯 했다.

예뻤다.

그저 예쁜 애였다.

유나는 소리 없이 놀라며 뒤로 주춤였다. 그러나 일어서지는 않았다. 옛날부터 잘 놀라지 않은 성격이기도 했다.

가까이서 본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왜 그렇게 웃냐고 물어 보고 싶을 정도로.

“유나야.”

편하게 부르는 말투였다.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 목소리를 편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 분명할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나는 그 목소리가 편안했다. 낮고, 어딘가 불안한 목소리. 현실에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어?”

유나는 대답하듯이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용건이 있냐는 듯.

“널 찾고 있었어.”

그러니까 나를, 왜?

유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눈을 보니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그 아이가 이곳에 찾아온 게 어떤 종류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난 뭘 해야 할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다면, 나는….

“유나야.”

반복적으로 부르는 이름.

유나는 이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아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어딜 보는 걸까. 유나는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왜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이미 그 시점부터 정상적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응.”

“있잖아.”

“응.”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많아.”

잠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유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유나가 입을 열었다.

“아주 많아.”

이미 그것으로 답이 다 끝난 것 같았다.

그 아이는 한 발자국 멀어져서, 유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그리고 씩 웃었다.

유나는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차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곧 있으면 학원이 끝날 시간이니까, 의심받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야하지 않나? 유나는 빠르게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를 만났다는 기억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서 교실을 떠났다. 내일 학교에 올 때에는 정말 저지르겠다는 심정으로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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