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8. 정체가 무엇이냐, 말하여라 (下)

율은 부적을 소녀의 머리에 붙인 다음, 의자에서 몇 걸음 떨어졌다.

원래라면 굿으로 귀신을 쫓아야 한다. 무당이라면 이러한 귀신과 대화하여 달래는 방식으로 보내거나, 적절한 의식을 통해 귀신의 맥을 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원연화가는 무속인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을 개발해왔다.

왼손에는 부채를 들었다. 부채에는 복잡한 무늬의 동양화가 그려져 있었다. 원연화가의 문양과, 그 주변에 불꽃이 그려져 있는 모양새였다.

오른손에는 방울을 들었다. 긴 막대의 끝에 방울이 여러개 달려 있어 마치 꽃처럼 보였다.

방울을 흔든다. 그 소리에 소녀가 반응한다. 아니, 소녀 안에 있는 요괴가 반응한다.

원연화가의 무령(巫鈴)은 신을 불러 들이는 방울이 아니라 내쫓는 방울이다.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고 그런 힘을 부여 받았다. 요괴들은 이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 역시, 그 날카로운 소리가 불길하다고 느낄 것이다.

으르렁거린다. 울부짖는다. 사나운 소리가 난다. 요괴가, 소녀의 몸 안에서 팔딱이고 있었다.

의자가 거의 부서질듯이 덜컹거렸다. 은열은 힘을 꽉 주었지만, 요괴의 힘을 빌려서도 그 힘은 물리적으로 막기 힘든 모양이었다.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어.”

은열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이상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은열 역시 요괴의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원연화가의 퇴마사가 요괴와 함께 다닌다는 사실만큼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네. 바로 할 게요.”

품 안에서 다른 부적을 하나 더 들었다. 그리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불꽃을 불러 일으켜야만 한다. 평소에도 했던 것처럼.

이 주변에 있는 기(氣)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불러와야 한다. 손 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부적에 쓰인 경문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왼다.

화륵, 하고 불이 피어 오른다. 부적 끝에서 약한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적을 태우지 않는다. 율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리고 한탄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가시오, 어서 가시오. 인간들 방해 말고!”

율은 부적을 소녀의 옷 앞에 내리쳤다. 불꽃이 소녀의 옷으로 옮겨 붙었다.

키에에엑-!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다. 부적에서 나온 불이 소녀에게 옮겨 붙었고, 그것이 몸을 한 번에 집어 삼켰기 때문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선’을 넘으려고 했다. 은열의 너머로, 율과 가까이 하여 그 소녀를 어떻게든 구출해주려 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이건 단순한 굿이에요! 피부는 안 탑니다! 타고 있는 건, 요괴의 혼(魂) 뿐이에요!”

율은 다급하게 외친 다음 요괴를 보았다. 원연화가의 불로 인해 전신이 타오른 것처럼 보았던 그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은 요괴인가? 율은 그 생각을 하며 다음 계획을 실행했다.

“이대로 불타오르고 싶지 않다면 말해. 네 이름은 뭐지? 귀연산에서 왜 내려온 거냐?”

요괴는 그 소리를 듣고서, 고통스러워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던 은열이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일이 뭔가 제대로 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퇴마된다면 그대로 사건해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요괴가 나타난다면? 이 녀석이 단순한 심복이라고 한다면?

요괴가 웃었다.

절대로 이름을 말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그 때 은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을 꺼!”

율은 그 말을 듣고, 부채를 크게 휘둘렀다.

거대한 바람이 불어 그 불을 꺼뜨렸다. 퇴마 실패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율은 다음 계획을 빠르게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소녀를 두어시간 정도 묶어 둔 다음에 진짜 제대로 된 굿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또 어떻게 구하며, 굿에 필요한 재료는….

“윽….”

——소녀 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육성이었다.

괴로워하는 소리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언가 토해낼 것 같은 소리였다. 그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요괴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대표적인 형태는….

“구웨엑!”

“으악!”

구토였다.

주변 어른들이 전부 비명을 질렀다. 여자 고등학생의 입에서, 차마 형용하기 힘들 정도의 혈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 속에는 타액도, 아침으로 먹은 음식물도 섞여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 시뻘건 색깔이었다. 아니, 토사물이 섞여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액체는 그렇게 탁해 보이지 않았다.

“…나갔나?”

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부채와 방울을 다시 치켜 들었다. 경계할 용도였다. 여차하면 다시 흔들어야 한다.

소녀가 멍하니 고개를 들고선, 율을 바라 보았다.

눈동자가 제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풀썩.

땅으로 쓰러지려는 것을 은열이 붙잡았다. 퇴마 과정에서 테이프가 풀려버린 것인지, 유나는 그대로 쓰러져 땅에 떨어지려고 했다. 하마터면 머리카락 전체가 피에 젖을 뻔했다.

“도, 돌아온 겁니까?!”

담임교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율은,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상황을 살펴보았다. 조심스럽게 유나에게 손을 뻗어, 생사를 확인했다.

맥은 뛰고 있었고, 기이한 기운 역시 없어져 있었다.

율은 다른 사람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고 봐야죠…. 사건이 완전 해결된 건 아니지만.”

은열이 어느새 율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율에게 손을 뻗어, 그의 옆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잘했어.”

뭐야, 저 반응은? 강아지를 예뻐하는 것도 아니고…. 율은 그런 생각이 들어, 흥 하는 소리를 내었다.

“퇴마사로 돈 벌어 먹고 살려면 이정도는 해야 한답니다!”

“그러게. 높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겠어.”

마치 자동응답기 같은 답변이었다. 목소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아서, 더 그랬다. 율은 은열을 보고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그, 청영 씨가 보았다고 했던 그건 뭐였을까요….”

스스로 말하고서 계속 생각했다.

유나가 토한 피에서 어떤 생물이 꼬물꼬물 기어나오거나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도, 둘의 눈에는 보일 것이다. 하다못해 무언가 빠져나간 기운이라도 느껴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재빠르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조금 더 조사를 해보자. 일단 저 꼬마가 무엇에 신들렸는지도 알아봐야 하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그동안 어떻게 기다려요.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아서 샅샅이 뒤져도 모자랄 판에.”

은열은 그의 말에 ‘그런가.’ 하는 말로 응수했다. 그렇지만 끝까지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그때, 학교 관계자들이 율에게 다가왔다.

“퇴마사 님 맞으십니까? 어떻게 하신 건가요? 유나는 괜찮습니까? 그래서 뭔 일이 일어난 겁니까?”

조금 더 있다가는 방송용 마이크까지 들이 댈 기세였다. 율은 수완 좋게 그 답변에 대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하하! 이런 걸 해결하는 게 저희의 일이라서요! 유나는 괜찮을 거예요. 귀신이 들린 직후라서, 깨어나면 몸 관리를 잘 해주시고….”

은열이 그것을 보았다. 그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율의 손을 대뜸 잡았다.

콱, 하고 잡는 그 손길이 야성적이었다. 율은 순간 놀라 제자리에서 움찔거렸다. 은열은 주변 사람들에게, 눈썹 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이런 말만 남겼다.

“저희 퇴마사님이 좀 바쁩니다.”

그렇게 말한 뒤, 은열은 율을 끌고 강당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할 생각이 없던 율은, 순간 당황하여 은열을 보았다.

“잠깐, 은열?!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일단 나와봐.”

은열이 막무가내로 율을 끌고 갔다.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율은 갑작스러운 그의 돌발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여기에 남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끌려만 갔다. 주변 사람들이, 퇴마사의 손을 잡은 요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학교를 빠져 나오지는 않았다. 유나가 깨어난다면 상태를 보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은열은 율을, 사람이 잘 찾지 않는 도서관 건물 뒷편으로 데려갔다. 율은 이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은열도 이곳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일텐데.

“갑자기 왜 끌고 온 거예요?”

율은 괜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 정도로 따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중요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은열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늘 이런 표정이긴 하지만….’

“수상쩍은 게 있어.”

퇴마할 때 느끼기는 했었다. 일이 너무 쉽게 풀렸다는 기분이었다. 청영이 보았다던 그 요괴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귀신 들린 아이를 내쫓는 일을 한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영혼의 힘이, 보통은 아니었다.

“귀신치고는 너무 강하지 않았어요? 거의 굿을 해야 될 수준이던데요.”

“맞아. 그리고 내 힘이랑 비슷한 걸 느꼈어.”

응?

율은 은열이 중요한 사실을, 너무 빠르게 지나쳤다고 느꼈다.

“은열, 당신의 힘이랑 비슷하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낱 귀신이?”

“봉인되어 있는 거대한 요괴의 힘 같은 거야. 그리고 그건 네 힘과도 닮아 있어.”

율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은 표정에 반영되어, 떨떠름한 얼굴로 나타났다.

“제 힘이요…?”

“응. 요기의 흐름을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 그래서 이 세 개의 관련성의 연결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야.”

은열은 그렇게 말한 뒤 흠,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 말을 하려고 부른 거였나. 저 한복판에서 이야기했다간, 괜히 꼬투리가 잡혀 범인으로 몰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세 가지 힘이 관련이 있다면 대체 어디서 연결을 해야 한단 말인가.

“잠깐, 제 힘은 원연화가의 힘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내 힘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요괴의 힘이지. 물론 봉인 당했지만.”

그리고, 산에서 내려온 짐승형 요괴의 힘.

“생각보다 더 거물을 상대하는 걸 수도 있겠어. 그러니까…. 조심하자.”

은열의 말에 율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거나, 자신이 뭔가 빼먹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율은 이 일이 끝나면 다시 성혜에게 찾아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한 뒤, 두 사람은 다시 학생들이 있는 밝은 곳으로 나왔다. 학교는 일상을 되찾았다. 학생들이 교내를 지나다니며 서로의 교실로 향하거나, 매점에서 자신의 허기를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유나는 지금 보건실에 있겠죠?”

은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지체 없이 보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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