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검은 안개의 행방
유나는 보건실에 있다가, 조퇴하여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보건실로 간 은열과 율은 헛걸음을 한 셈이 되었다.
대신 자신들이 학교 내에서 아주 유명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헉, 유나 퇴마해주신 퇴마사님 맞으시죠! 몇 살이세요? 고등학생 아니세요?”
실제로도 똑같은 나이거나 자신보다 형인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율은 재빨리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2층에 있는 보건실에서 학교를 빠져 나오려면, 어느 쪽의 문을 지나쳐도 복도를 꼭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동선을 잘 짜야만 했다. 반면 은열은 그런 것에서 좀 더 자유로워서, 그냥 율의 손을 꽉 붙잡고 파도를 헤쳐나가듯 복도를 빠르게 지나갔다.
“실례합니다. 저희가 좀 바쁩니다.”
이번에는 손을 잡는 게 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은열이, 그냥 손을 잡는 게 아니라 거의 깍지를 낄 기세로 강하게 쥐었기 때문에 손이 좀 아팠다. 율은 그 손에서 느껴지는 힘과, 크기를 받아 들이며 놀랐다. 자신의 손이 작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의 손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작게 느껴졌다.
“좀만, 천천히 가도,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잖아.”
은열은 그게 싫다는 듯이, 묵묵하게 앞으로만 걸었다. 학교를 빠져나올 때까지 은열과 율에게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 모두에 답해줄 수 없었다.
둘은 학교를 나와 유나가 머무르고 있는 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고 난 다음에는, 그녀를 찾기 쉬웠다. ‘방금 막 입원한 고등학생’을 찾자, 병원 측에서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 보았고 율은 유나의 이름을 댔다. 간호사가 율에게 환자 본인과의 관계를 물어보자, 그냥 친구라고 얼버 무리기만 했다. 은열과 율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유나가 누워 있는 휴식실로 향했다. 정식으로 입원한 건 아니었고, 그냥 잠시 쉬는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유나는 교복을 입은 채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유나는 좁은 침대와 칸막이가 전부인, 공동 병실의 형태를 띈 휴식실에 있었다. 셔츠를 걷어 올린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고, 단지 천장을 보면서 ‘이게 다 무슨 일이지’라고 말하는 듯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이 유나 앞으로 다가오자 유나의 시선이 율을 향했다.
율은 그녀를 몇 시간 동안이나 보았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는 사이다.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율은 꾸벅 인사했다. 은열 역시 율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가볍게 허리만 숙였다. 요괴라고 인간 꼬마애 한테는 인사하기 껄끄럽다, 이건가.
유나는 그 둘을 못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기울였지만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 체육관! 저한테 불 붙이신!”
이걸 기억한다고?
율은 소스라치게 놀라 유나의 침대 가까이로 갔다.
“기억하세요?!”
격하게 끄덕이는 고개. 율은 어떤 희망을 보았다.
—퇴마 과정에서 의식이 완전히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은, 요괴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주변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입을 꾹 닫고 있었을 테지. 하지만 퇴마사인 자신에게는, 입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에 빙의한 요괴라는 녀석에 대해.
유나는 율을 보고 조금 놀란 듯, 기쁜 표정을 지었었다. 그렇지만 곧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이 다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은열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있구나.”
“어디까지 기억하세요?”
마치 취조하는 콤비 형사처럼, 둘은 이어 질문했다. 유나는 침대 시트를 꾹 쥐었다.
“거의 대부분이요.”
유나는 그렇게 말한 뒤에 주변을 살펴 보았다. 병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 셋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율은 유나가, 이제는 더 이상 일반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빙의된 사람이라도, 선을 넘은 이상 ‘이쪽의 풍경’을 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퇴마사 님은, 그런 게 보이는 거죠? 제 몸에 들린 것 같은 게요.”
율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귀신 같은 걸 봤어요?”
“좀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이번이 처음이에요.”
유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테이프에 묶여 있었을 때와는 정반대의 이미지였다. 그때는 마치 날뛰는 짐승 같았지만, 지금은 훨씬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이었다. 요괴가 한 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망쳐 놓을 수도 있었다.
“당시 상황을 좀 말해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괴롭지 않은 선에서….”
율은 대뜸 물어보긴 했지만, 뒤에 그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유나는 아주 명확하게 진술하기 시작했다.
“학원에 가기 싫어서 그냥 교실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교실 앞문으로 누가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평범하게 인사하고 그랬었는데….”
유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기억을 최대한 살리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그 다음부터는 어느새, 뭐랄까, 그 애한테 정신이 팔려서 말 안 해도 되는 것까지 다 말하고….”
“혹시 이름을 말했어?”
“네. 이름을 계속 물어보고, 또…. 자꾸 제 마음에 대해 물어봤어요. 그런데 거기서 답을 안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이름을 빼앗기고, 홀린 정신을 그대로 내어주고…. 그러니까 그 지경까지 갔구나.”
은열은 안봐도 뻔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 말투가 유나를 나무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어서 참 기묘하게 들렸다. 한편 율은 유나가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를테면 요괴가 어떤 말을 했던 걸까. 정확하게 어떤 말을. 무엇이 그녀를 홀린 걸까.
요괴를 찾는 데에는 그런 것도 도움이 되었다.
“요괴가 대체로 뭘 물어봤어요?”
“네?”
“그게 수사에 도움이 돼요. 요괴가 구체적으로 뭘 물어봤는 지 전부 알고 싶어요. 그때 느꼈던 모든 걸요.”
율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지 알았다. 진심을 말한다면 사람은 쉽게 넘어 온다. 이럴 때에는 화려한 언변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게 더 유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나를 빤히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장난치는 거 아녜요.”
그런 시선과 목소리가 좀 부담스러웠는지, 유나는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서 입을 오랫동안 열지 않았다. 그러다 한숨을 푹, 내쉬고선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일어났던 일을.
“틀림 없어.”
병원에서부터 귀연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열은 확신하는 듯이 말했다. 처음에 병원에서 나오면서는, 율도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귀연산까지 걸어가느라 그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현덕시 시내부터 귀연산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야 했다.
“뭐가요?”
율은 헥헥대면서도 은열의 말에 답해주었다. 그러면 또 은열이 주저 없이 말하기 시작한다.
“‘검은 안개’가 한 짓이 맞을 거라는 이야기야.”
거기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았다. 율은 이 사건이, 어떤 악독한 요괴가 장난을 치고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름 없는 어떤 요괴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그 비대한 자아를 전염시켜 다른 사람을 부추긴 사례로 보였다. 하지만 은열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검은 안개’요?”
율은 어제 아란이 말했던 그 요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은열은 그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정해진 형태가 없어. 맹수도 될 수 있고 인간도 될 수 있고, 동시에 그 아무것도 될 수 없지. 그래서 ‘안개’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고. 그리고 그 녀석의 주특기는 사람을 부추기는 거였어.”
사람을 부추기는 요괴. 요괴를 부추기는 요괴.
요괴는 본디 사람의 욕망을 종용하고,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한다. 그런 명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었기에 요괴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분분했다. 사람을 도와주는 도깨비 이야기도 다양한 마당에 단 하나로만 국한할 수는 없었다.
요괴가 인간을 해하는 존재라고 해도, 이렇게 인간을 부추기는 요괴는 좀처럼 없었다.
그것도 아주 나쁜 방향으로만 이끄는 요괴는 그렇다.
“그렇지만 ‘검은 안개’가, 청영 씨가 봤던 그 맹수가 맞다면 이 사례랑 좀 안 맞는 거 아닐까요? 게다가 유나 씨는 빙의된 사례였잖아요.”
“…귀신을 사역하는 요괴에 대해서는 못 들어봤어?”
율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힘이라면——율이 상대할 수 없다.
그런 요괴는 존재해서는 안된다.
힘이 너무 강력해 영계마저 통솔하는 요괴가 있다면 반드시 인간 사회에 해를 줄 것이다. 그건 이미 선대 퇴마사들이 전부 해결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데….
“그 정도 요괴가 지금 저희의 앞에 있다고 말씀하고 싶은 거예요?”
은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착했기에, 아무런 동요를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안개는 원래 인간들이 봉인해둔 것으로 알고 있어. 마치… 내 힘을 봉인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그 봉인이 풀렸다면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겠어?”
은열은 그렇게 말한 다음에 율의 눈을 보았다.
“검은 안개는 요괴들에게도 해가 되는 요괴야. 안개는 나, ‘푸른 소매’와는 다르게 혼돈을 즐겨. 이 세상을 자신의 멋대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게 만들 거야.”
은열은 그렇게 말한 다음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귀연산 입구로 향하는 계단을, 두 사람은 조용히 올라갔다. 그 사이에 드리운 침묵이 이 일의 무게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건 아주 끔찍한 일이 되겠지.”
은열은 중얼거리듯이 말한 다음, 계단 위에서 율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니까 함께 해결하는 거야.”
율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귀연산의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남자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율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 어제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는 은열을 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요괴와 인간의 벽을 허무는 요괴를.
어느새 그의 모습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 솟은 귀와, 다리 밑으로 보이는 거대한 꼬리가 보였다. 그리고 자신보다 키가 크게 자라났다. 원래 보았던, 푸른 늑대 요괴의 모습이 보였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요괴라면 그럴 필요 없잖아요. 인간들이 죽건 말건 알바 아니잖아요. 율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제가 일하는 방식이 은열 씨랑 안 맞을지도 모르고, 제가 그 요괴를 죽여버릴 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퇴마는 원래 그런 작업인 거, 모르시는 거 아니잖아요?”
—이상하게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싶었다. 은열이 자신에게 친절한 이유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게 친절한 이유에 대해. 율은 항상 궁금했었다. 인간의 일에 간섭하는 요괴가 어떤 존재인지. 은열이 어떤 존재인지.
은열은 다만 또, 답하지 않고 묵묵하게 산을 오를 뿐이었다.
“제 말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은열.”
율은 다급하게 올라가, 은열의 옷깃을 잡았다. 답을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은열은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무시한 적 없어.”
은열은 몸을 돌려, 다시 율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두 걸음 내려가 율과 눈을 맞추었다.
“다만 말할 필요가 없을 뿐이야. 내가 인간에게 관심이 있는 이유, 물론 있어. 하지만…. 그걸 말한다고 해서 네가 납득하는 것도 아니잖아.”
논리적이고, 진실되었다. 그래서 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여전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이유가 없이 인간을 도와준다면, 적어도 그걸 통해서 은열이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요괴라면 인간따위는 무시해버렸을 것 같은데. 그래서 궁금했는데, 왜 이런 답만 듣게 되는가.
율은 고개를 숙이고서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요…. 도와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제가 너무 실례되는 말을 했네요.”
“…….”
은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산을 조금 오르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려가긴 이미 늦은 것 같은데.”
해가 지고 있었다. 인간들이 닦아둔 길이 거의 끝나고, 흙먼지로 가득한 요괴의 땅으로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그 아래에는 빛으로 반짝였지만, 어쩐지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 오늘 밤도 신세져도 될까요….”
“너도 처음 보는 요괴 집에 두 번이나 묵을 생각을 하고 있잖아.”
“그, 이제부터는 파트너잖아요?!”
둘은 그렇게 떠들썩하게 집으로 함께 돌아갔다. 율은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이 이렇게 귀가하면서 말을 많이 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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