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외장통각
TRPG 룰 키즈나 불릿의 삼촌조카 페어 이야기 두번째.
202x년 모월 모일. 나는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다.
아무래도 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죽은 기억조차 없이, 눈을 감았다 떠보니 아침이 와있던 것처럼 죽음 그 다음이 와 있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괴물 같은 것이 있어 그것이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녹여 죽이고 있으며, 나는 그것에게 죽었지만, 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체가 녹지 않고 남아버려서 그 괴물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나를 되살렸다고 한다. 그놈들을 죽이라고. 내 일이 아니라면 진짜 어디의 3류 소설 설정인가 싶을 텐데 이게 놀랍게도,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전직 미소녀 현직 미소녀 시체 인형 킬러란 거다.
시체를 되살려냈다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안 좋은 점도 있었다.
대표적으론―그렇네.
나는 눈앞에 앉아 커피를 들이키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녹슨 쇠 같기도 하고 해지는 색 같기도 한 붉은 머리에, 회색이 섞인 녹색 눈. 일본인 치고는 상당히 드문 외모다. 나와 지독히 닮은 외모기도 했고. 죽었다 깨어나서 1년간 함께 활동했던 파트너가 사실은 내 삼촌이었다니, 요새는 아침 드라마 설정도 이렇게 짜면 욕 먹겠지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상황이다. 남들 보기엔 진짜 어떻게 이걸 몰랐나 싶어 갑갑하기 그지없었겠지만, 내게도 변명이라 할 만한 건 있었다. ―죽었다 살아난 부작용으로 아빠와 그에 관한 기억을 싸그리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빠와 관련된 영역이 지워지며 삼촌도 머릿속에서 같이 포맷되고 말았습니다. 라거나 뭐라거나.
지난 1년간의 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나 또한,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부분만 빼놓고 태어난 듯 너무도 깔끔한 상실이 감탄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있었으니 아버지가 존재했을 테고, 어머니가 동생을 새로 임신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는 것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버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쪽으로는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마치 뿌리 쪽 그루터기만 깔끔히 잘라내어진 것처럼. 그런데 하물며 그 아버지의 동생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겠는가.
…그 결과로 미안한 짓을 잔뜩 해버리고 말았다. 아빠가 있다면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좋겠다거나, 아빠 같다거나, 기타 등등. …어떻게 본다면 그 아빠의 핏줄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게 웃긴 점이었지만.
나는 매끈하게 절단된 기억의 단면을 더듬기만 하다가, 결국 아프지 않다는 사실만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있던 사지가 절단된 거라면 환상통이라도 느끼련만 정신 문제에서는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아빠의 기억은 없으니 아빠에 대해선 찔려도 아프지 않다. 없다는 사실 자체에 상실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난 1년간 몇 번인가 해보고 결국 소용없다고 깨달은 뒤 그만둔 짓을 다시 시작한 건, 거기서 조금이라도 통증이 느껴질 만한 곳이 있었으면 바랐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걸려서 아픈 부분이 있다면, 그걸로 나에게 그가 바라는 부분이 조금은 남았다는 사실이 증명될 테니까. 나는 조금 시무룩해져서 테이블에 엎어졌다.
"…저기, 쿠-쨩."
…역시 조금 어색하다. 원래는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도. 불과 1년 전까지의 나와 지금의 나는 딱히 다른 사람이 아닐 테고, 약간의 기억상실이 있을 뿐인데 그 사이에 생사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한번 죽었다 살아나긴 했군. 나는 팔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민 채로 그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응, 왜 그러니?"
처음 봤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이라고 생각했지. 진짜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도 더해서, 내게는 이것저것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 저렇게 웃음으로 이것저것 넘기는 거라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으니, 어차피 빨리 죽을 것에게 그리 정주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내가 그의 입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쩐지 서운해서 '그럼 나도 미즈 에이 할래!' 로 받아쳤던가.
괜히 말했다가 혼란스럽게 만들면 어떡해. 네겐 시간도 없는데.
그 언젠가, 그가 쥐어짜듯이 말하던 것을 떠올리자 그렇게 열심히 생각을 쥐어짜도 없던 통증이 일순 꾹, 하고 가슴 한가운데에 퍼졌다. 마치 어딘가에 두고 온 감각의 스위치를 그가 대신 쥐고 있기라도 한 듯이. 아마도 이제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나 대신 그가, 내가 다칠 때마다 중절모를 푹 눌러쓰곤 하는 것과 비슷하게.
"감정이나 인연이나 하는 거 굉장히 이상하네."
"갑자기?!"
"그치마안-."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테이블에 돌돌 이마를 굴렸다. 통각이 사라져 조금은 편하기도, 슬프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있구나, 내 아픈 곳. 아마도 내가 당신의 아픈 곳일 터인 것과 마찬가지로.
첫날 1200자 썼고 그다음날 1000자 썼으면 2일차 800자 챌린지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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