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쏟아지는 장대비

크로레드

퇴고X

(a)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레드를 쫓던 병사들도 비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레드는 그 틈에 또다시 들키지 않고 성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젖은 머리카락을 터는 사이, 가벼운 소나기는 순식간에 장대비로 변해 창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까마귀 한 마리가 레드의 창문을 시끄럽게 쪼았다.

“알았어, 알았어. 열어줄게.” 레드가 중얼거리며 창문을 열자마자, 까마귀는 잽싸게 날아 들어와서 레드의 침대 위에 자리를 잡았다. 깃털에 묻어 있던 빗물에 이불이 축축하게 젖었지만, 레드는 밀어내지 못했다.

“나한텐 멋대로 침대에 올라가지 말라더니.” 레드가 불만스레 말했지만, 까마귀는 조금의 반응도 없이 깃털만 고르다가 또 다른 장난감을 찾아서 레드의 책상으로 올라가 뒤적였다.

지난 다례식 이후, 비가 오는 날마다 까마귀가 찾아온다. 레드는 이 까마귀를 ‘크로포드’라고 믿고 싶지만, ‘과연 정말로 크로포드일까?’ 하는 의심도 항상 가졌다. 이런 건 크로포드답지 않았다. 크로포드는 좀 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마냥 그런 건 아니었지만….”

레드는 까마귀가 물어뜯으려는 일기장을 뺏어서 서랍 깊이 집어넣었다.

그 일기장은 크로포드가 까마귀로 돌아간 후, 성에 방치된 그 애의 방을 정리하다 찾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레드는 그걸 읽었고, 16년을 함께 하고도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레드는 어렴풋하게도 엿보지 못했던 꿈이 그 애한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레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희망이 안 보였다. 레드는 느릿하게 까마귀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거센 빗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정말 잠들기 힘든 밤이 될 거 같았다.


(c)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에 크로는 급히 성을 향해 날았다. 하지만 가벼운 소나기는 순식간에 장대비로 변했고, 워낙 멀리까지 나가 있던 탓에 가능한 한 빠르게 날았음에도 창문을 통해 들어온 까마귀는 온몸이 물에 푹 젖어 있었다.

진짜 까마귀라면 비를 맞아도 상관없지만, 안타깝게도 크로의 반은 인간이다. 씻고 나왔는데, 몸이 살짝 으슬으슬한 게 분명 내일 감기가 찾아올 것 같았다.

“뭐 하세요?”

그리고 하나 더 안타까운 사실. 크로의 방은 바로 옆에 고용주 되는 공주의 방이 있다. 평소엔 어떻게 해야 크로를 따돌리고 도망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레드가 비 오는 날에는 꼬박꼬박 찾아온다. 예전에는 없던 버릇이 어느날 생겼다.

“비 오잖아? 같이 자자.” 레드는 뭘 새삼 묻냐는 듯, 마치 자신의 침대 되는 것처럼 크로의 침대를 차지했다.

“안 돼요.” 크로가 엄격하게 말했다. “비 맞아서, 감기 기운이 있어요. 공주님까지 걸리면 여왕님 얼굴을 어떻게 보나요.” 레드가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크로는 아랑곳 안 했다. 때로는 강경하게 나갈 필요도 있다.

레드는 짜증 난다는 듯 베개를 쥐고 눈을 굴리다가, 씨익 웃었다. “그럼, 명령이야. 어서, 내 옆으로 와서 누워.”

“하아….” 물러날 기세 없어 보이는 레드의 모습에, 크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분부를 따릅니다.” 장난스럽게 커트시 한 후, 크로는 레드의 옆으로 누웠다.

공주의 웃음소리와 함께 창문으로 비가 끝없이 부딪혔다. 크로는 정말 잠들기 힘들 밤이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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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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