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닿지 않아

길레븐

‘해리 후크 개자식…’

저 높이, 팔이 안 닿는 곳에 걸려있는 뜨개질을 보며 일레븐이 생각했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잡을 수 없고,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봐도 소용없다. 빌어먹을. 저 정도 높이라면 해리도 단번에 올려두진 못했을 것 같다.

‘내가 갈고리에 옷까지 만들어줬는데, 이렇게 나와?’

비록 그 옷이란 게 하트 무늬 분홍색 천으로 만들었고, 해리 후크가 자는 사이 걸어 둬 그놈이 아무것도 모르고 동네를 배회해 지금까지 조롱할 때 쓰긴 한다만… 하여간 일레븐 나름의 애정 표현이었다. 그걸 이런 식으로 돌려주다니.

몇 번 더 노력했지만, 결과는 전부 실패다. 뭐에 걸렸는지 막대기로도 도통 안 떨어진다. 일레븐은 입술을 피나도록 꽉 깨물기를 반복하다 우르술라의 선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는 없고, 길과 몇몇 선원들 그리고 늘 있는 늙은 손님들뿐이다.

길이 일어났냐고 불렀지만, 해리가 훔쳐 갈 때 길도 옆에 있었을 거란 확신이 있어 일레븐은 그 인사를 무시했다. 대신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해적을 걷어차 밀어내곤 그가 앉아있던 의자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바닥을 구른 해적이 성질내는 소리와 선원들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지만, 맞받아쳐 욕할 생각도 안 들었다.

“내가 꺼내줘?” 그 뒤로 길이 쫓아와서 물었다.

일레븐은 몸을 빙글 돌려 길을 노려봤다. ‘못하게 했어야지.’

“하지만 갈고리는 네가 너무했잖아.”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들은 길이 변명했다. “물론 정말 잘 어울리긴 했어.”

일레븐은 한숨 쉬곤, 높이 걸린 뜨개질에 집중했다. 하지만 의자로는 부족했다. 고작 손 반 뼘 차이가 이렇게 크다고? 짜증이 몰아쳤다.

“음….”

뒤에서 일레븐이 하는 걸 가만 보던 길이 두 손으로 그를 번쩍 들어 의자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곤 일레븐이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짧은 사이에 성큼 의자로 올라가서는 가볍게 뜨개질을 꺼냈다.

“엇, 찢어졌네.” 길이 당황했다.

천에서 뜯어낸 얇은 실이니 길의 힘으로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지는 건 당연했다. 일레븐도 그걸로 화낼 마음은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기도 하고. 찢어진 뜨개질을 들고 눈치를 보는 길에게 일레븐이 말했다.

“…너, …이거.” 오랜만에 말하는 탓에 목소리가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아, 일레븐은 그 짧은 말에도 몇 번이나 목을 가다듬었다. 일레븐은 하려던 말을 바꿨다.

“…잘했어.”

길의 손에 들린 뜨개질을 넘겨받은 일레븐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길은 헤실헤실 웃었다.

‘어딜 봐서….’ 일레븐은 이걸 고치는 건 마법을 써도 힘들 거라곤 굳이 티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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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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