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냉커피

체스터크로

브램블 만에서의 밤, 크로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멀리까지 날아본 건 처음이다. 옆 침대의 공주님은 깊이 잠들었고, 크로는 그녀를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랜턴을 들고 방을 나왔다. 복도가 조용한 걸 보니, 체스터와 에이스도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원더랜드에선 여행이 흔하지 않으니, 여관도 밤에는 불이 다 꺼지고 카운터도 비어 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크로는 어둠 속 작은 불빛에 의지해 무언가 마실 걸 찾다가, 식당 한쪽에 내용물이 조금 남은 커피 주전자를 발견했다. 코를 가까이해 냄새를 맡자, 깊은 탄 향이 올라왔다. 크로는 조심스레 불을 켜 주전자를 끓였다. 하지만 여전히 큰 소리가 나는 거엔 겁을 먹게 되어, 주전자에서 튀는 소리가 올라오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불을 끈 후, 컵을 찾아 남은 커피를 모두 따랐다.

그러나 선뜻 마셔볼 생각은 못 하고, 가만히 노려보았다. 여왕은 모든 아이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고 명령했다. 규칙을 어기고 싶어 한다니, 크로는 새삼 자신이 공주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미 폐하에게 거짓말을 해서 브램블 만까지 왔고, 루트비어까지 마셔봤는데… 커피를 마신다고 문제가 생길까? 올라오는 향은 무시하기에 너무 유혹적이다.

크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며 한 모금 입에 가져댔고, 그녀에겐 너무 뜨거워서 그만 컵을 놓칠 뻔했다. 커피는 썼다. 씁쓸한 맛 뒤로 약간의 산미가 느껴졌다. 그리고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크로는 한 번 더 홀짝이곤, 커피와 랜턴을 챙겨 창가 쪽 식탁에 가서 앉았다.

창문을 살짝 열자, 거친 바닷바람과 함께 달빛에 비치는 바다가 보였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크로는 레드가 여왕이 되고, 자유를 찾으면, 이곳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이 합법적일 테니 말이다.

그때, 맞은편 의자가 끼익하며 움직였다. 크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밤색 머리카락의 소년—체스터가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체스터는 한 손엔 랜턴을, 다른 손에는 종이와 펜을 들고 있었다.

“그건 뭐야?” 체스터가 관심갖고 물었다.

“커피.” 크로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모금 홀짝였다. “나도 한 번쯤 마셔보고 싶었어. 아버지는 커피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시거든.”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더니?” 체스터가 빈정거렸다.

“멋대로 생각해.” 크로는 다시 체스터에게서 시선을 떼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눈이 시림에도 크로는 계속해서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맞은편에 앉은 체스터는 크로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다가, 종이에 무언갈 쓰기 시작했다. 힐끔 보니, 편지처럼 보였다. 샬럿 이모에게. 크로는 체스터가 여관에 들어올 때 내세웠던 이름을 떠올렸다. 사적인 편지를 읽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크로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하지만 체스터의 생각은 달랐는지, 한참을 쓰던 편지를 크로에게 내밀었다. 크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히 체스터를 보았다.

“이상한 곳이 있나 읽어 봐.”

“이모님께 보내는 편지 아니야?” 크로가 갸웃했다.

“맞아.” 체스터가 망설였다. “혹시라도 무례한 부분이 있을까, 걱정되어서 그래. …이모가 우리 가족과 어떤 사이인지도 난 모르잖아.”

크로는 편지를 받아 들었다. 조금 악필인 게 문제일 뿐, 내용은 크게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 사이 체스터는 꽤 식은 크로의 컵을 잡았다. 커피를 마셔본 적 없는 건 체스터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마셔볼래.” 크로에게 통보에 가까운 허락을 구하곤, 체스터는 크로가 입 댄 것과는 반대쪽으로 커피를 마셨다. 체스터는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한 모금 더 마셨다.

“맛이 이상해.” 체스터가 중얼거렸다. “분명 쓴데, 맛있어. 얼음이 있다면 더 좋을 텐데.”

하지만 이미 불이 꺼진 식당에서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는 건 불합리한 규칙을 어기는 것과는 다른 행동이란 걸 체스터도 잘 알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공주님이 여왕이 된다면…, 언제든 마실 수 있을 거야.” 크로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나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겠지.” 체스터에게 그건 단순히 커피를 얘기하는 것처럼 안 들렸다.

하지만 체스터가 묻기 전, 크로는 편지를 다시 그에게 건네주며 말을 돌렸다. “이대로 보내도 괜찮을 거야.” 크로는 창문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올라갈게. 커피는…”

“내가 치울게.” 체스터가 말했다.

“그래.” 크로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자, 체스터.”

“너도, 크로포드.”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