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6
호러horror와 무슨 사이였냐고? 글쎄다. 아무 사이 아니었지.
어느날의 후배 질문에 그렇게 답한 건, 귀찮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저랬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는다는 놈이 굳이굳이 따라와서 뭘 묻는가 했더니 고작 저런 거라 웃음이 터졌다.
키아라에게 그 질문은 꼭 파이브와 무슨 관계였냐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 키아라 로미티가 키아라 하그리브스가 되기 이 년도 전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놈 말이다. 벤은 키아라 하그리브스가 되고 일 년 후에 사라졌지만, 하여간 그게 그거였다. 별로 기억이라 할 만한 게 없다.
한창 불안한 반항기를 제대로 겪고 있던 기존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키아라가 No.8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끼워준 적은 없었다. 거기에 끼워달라고 매달리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니꼬운 게 없는 건 아닌데 여기가 길거리는 아니니까 그 뒤통수에 돌을 가져다 박을 수도 없는 꼴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다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건 사촌이 알려준 방법인데 들었을 당시는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속으로 혀를 찬 것과 달리 막상 해보니 꽤 괜찮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하나 있었네.
중얼거림에 담배 대신 입에 물고 있을 막대사탕을 까던 후배가 눈을 빛냈다. 취재를 그렇게 좀 해보라고 타박을 하며 키아라는 담배를 길게 내뿜었다.
“그렇게 굴면 좋아?”
얼굴에 뱉은 담배 연기에도 화내는 것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하긴 클라우스와 그렇게 붙어 있으니까 담배엔 익숙하려나. 키아라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벤의 질문을 모른 체 했다. 애초에 남의 방에는 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나가라는 손짓만 하고, 그걸 따라 쉭쉭대며 뱀이 기어가는 소리가 어두운 방을 채웠다. 벤은 그걸 신경 쓰지 않고, 방 한 면을 채운 책장에서 그의 방에 있어야 하는 게 맞는 책을 찾아 꺼냈다. 젠장. 키아라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분명 지난번에 다시 가져다 뒀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뱀이 일을 안 한 건지 공기가 안 통하는 와인병에 담가버리고 말 테다. 벤은 그걸로 볼일은 끝났다는 듯 곧장 다른 말 없이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답하지 않을 이유는 또 뭐가 있냐 싶어져서, 그리고 놈이 마음에 안 들어 할 게 분명한 대답이 하나 떠올라서, 키아라는 변덕을 부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정말 불쌍하잖아.”
오랜만에 내는 목소리는 조금 불안하게 떨렸지만 이상하진 않았다. 발음이 어눌했을까? 그런 거까진 키아라 스스로 알아챌 수 없었다. 닫히던 문이 아주 잠깐 멈칫했고, 키아라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문이 끝까지 닫히며 난 탕 소리는 쓰기는 총알이 나가는 소리와 똑같은 탕이지만, 실제론 정말 다른 소리였다. 물론 어느 쪽이든 사람의 속을 후벼파는 건 똑같다. 기대만큼 기분이 좋아지진 않았다.
후배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게 키아라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제가 뭔 복이 있어서 저렇게 사람 좋은 놈을 곁에 두게 된 건지. 쓰린 속을 숨기면서 키아라는 괜히 집 가서 굿즈 버리진 말라고 웃었다.
그 이후를 회상하자면 눈치는 디에고가 봤다. 벤은 더 이상 간섭할 생각 없다는 태도였고, 키아라가 벤에게 입을 연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평소와 특별히 달라진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디에고 그 멍청이는 평소엔 없는 눈치가 갑자기 살아났던 건지, 가운데서 쓸모없게 불안해했다. 그래도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가끔 못 견뎌서 화내는 꼴을 보기는 싫었지만 안 그랬다면 그거대로 문제 있는 거라 병원에 보내야 하는 거니, 건강하다는 증거 정도로 받아들였었다.
그래도 장례식엔 참석했거든. 나름 교복도 잘 갖춰 입고 갔어.
그 지랄을 하더니 지가 제일 불쌍해졌다고 비웃었지.
…좀 그렇게 보지 말지. 그게 끝이거든. 더 할 얘기 없어.
키아라는 다시 입을 꽉 다물었다. 담배 끝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난간 너머에 시선을 맞추고 있으려 노력한다. 이런 상황이 싫다. 쓸데없이 착해빠진 놈. 그리고 그만큼 이기적인 놈. 빌어먹게도 그를 사랑해서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사랑했다.
정말로.
아마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루던 그 사랑이 지금까지 밀려 이따위 취향을 만들었으리라. 세상에 벤 하그리브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키아라라고 다르지 못했다. 모든 형제가 그를 사랑했고, 키아라는 결국 그 형제 중 하나였다. 가족이란 게 이미 정신적으로 닮은 부분이 지나치게 많아진 걸 알게 되어 끊어내기가 어렵다. 사랑받지 못할 거란 확신이 증오를 만들었다. 사랑받지 못할 거란 공포가 그럼 차라리 네가 너무 싫어서 신경쓸 수 밖에 없는 대상이 되자고 외쳤다.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끊임없이 현실로 끌어내렸다.
정말로 네가 싫어.
꾹꾹 누른 한 마디는 눈물을 잔뜩 머금어, 누구에게 향한 말인지 그 자신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의 특별함이 되고 싶었으므로, 자신을 신경 써주는 그 사람을 향한 말이라고 세뇌하듯 속으로 되짚었다.
- 카테고리
-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