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
디에고키아라
뭐든지 뚫어서 박살내려는 창. 단순히 뚫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키아라 하그리브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잘 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을 꺼내 달래는, 아주 간단한, 정말 별 거 없는 능력. 주로 인질들의 안정을 꾀하는 역이었던 걸 생각하면 방패가 아니냐 하지만, 이 능력은 창이 맞다. 꺼내진 마음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기 일쑤니 말이다. 적성을 살리자면 사이비 교주 정도가 제일 좋은 직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굳이 형제와 직업이 겹치고 싶지는 않다. 당연하지만 키아라는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능력을 사용하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았고 그걸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왜 문제인지 교육받을 환경은 아니었다는 정도의 변명은 가능했다. 이 소리를 왜 하냐면, 지금 키아라 하그리브스가 딜러에게 보여주고 있는 보석이 전부 강제로 만진 상대의 진심을 이용해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구해온 건데… 아까워서 손 끝이 덜덜 떨렸다.
“저게 그렇게 귀해?”
“그래, 귀하지…”
내가 63년에 떨어진걸 알자마자 저거부터 회수하러 갔을 정도로. 디에고의 물음에 키아라가 침울한 목소리로 답해줬다. 다른 것들도 많지만, 파이브가 어떻게 알았는지 콕 집어서 인도의 별을 처분하라고 해서… 빌어먹을. 라일라한테 죽을지도 모르는 와중에도 지킨 보석가방이 이렇게 비워지기 시작한다. 걔가 열세살의 몸만 아니었어도 이상한 소리말라고 했을텐데. 질질 끄는 키아라에게 나중에 다시 찾게 해줄테니 적당히 하라고 기어이 파이브가 화를 냈었다.
보석을 사러도 아니고 팔러 이곳에 오는 날이 올 거라곤 키아라는 생각도 안 했다. 이 곳을 찾는 조건이라도 바뀌었으면 그걸 핑계로라도 대는건데, 세상에 바뀐 거라곤 자기들이 입양 안 된 것 뿐인지 너무 그대로라서 기분이 이상할 정도였다.
“야, 혹시나 해서 묻는데.”
“하지 마.”
“너, 설마 저거”
“묻지 말라고”
“훔쳤어?”
“젠장.”
나름 경호원 대신으로 끌고 온 디에고인데 쓸모가 없다. 아니 정말로 쓸모가 없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하지! 그럼 인도의 별을 내가 돈 주고 샀을까?! 아니면 길에서 주웠겠니?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키아라는 참았다. 디에고의 시선이 의심으로 가득 차있지만 참았다. 아니지, 저건 확신이다. 저 망할 디에고. 미묘하게 변한 분위기를 디에고도 눈치채긴 한 건지 더 말하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지만 돈은 잘 받았다. 이런 짓을 한 게 한두번도 아니고, 지금 당장은 소란스러운 짓을 안 저지를거다. 나가는 길에 총 한번 정도는 맞을거같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할 일이다. 빠져나와 일단 사람이 보이지 않자 키아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서 훔쳤냐고 물어봐?! 제정신이야?”
“넌 그놈의 도벽을 여태껏 못 고쳤지!”
“지금 네가 화낼 때야? 멍청한 디디에, 루서는 차라리 닥치고라도 있지 넌…”
“그래서 저건 또 언제 훔쳤어? 잠깐, 다른 것도 절도품이야? 설마 유도라가 말했던…”
“아니거든!”
이 곳에 올 때는 전부 빼서 바냐에게 맡기고 왔지만, 평소 키아라를 둘러싼 온갖 장신구들이 디에고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키아라는 아니라고 곧장 부정하지만 거짓말이 하루이틀 일인가. 디에고의 끊임없는 추궁에 키아라는 맞서 바락바락 받아치는 탓에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라고 부정이라도 계속하면 끊길 대화가 섞여나오는 키아라의 자백에 디에고가 더 뒤집어졌다.
“뭔짓을 하고 살았길래 마피아랑 알아!”
“그거야 당연히 히어로 활동하던 때 알게 된 사이지!”
“그게 뭘 자랑이라고 말해!”
“멍청아 네가 물어봤잖아!!”
사람이 안 사는 동네라 망정이지 밤이라는 자각조차 없다. 차를 세워둔 곳까지 가는 내내 말싸움이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너는 언…”
차에 도착해서도 올라가던 디에고의 목소리가 멈췄다. 차문을 열려던 손을 멈췄다. 키아라 역시 무언가 눈치챘는지 말은 그대로지만 손 끝이 흔들렸다. 유일하게 끼고 온 팔찌가 조용히 흔들렸다. 어떻게 할지, 익숙하게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는다. 그만둔지 10년이 넘었지만, 어릴 때부터 해온 일에 대한 버릇은 몸에 배어있다. 일단 문 열어. 그러면 곧장 쏠 거야. 눈치챈 걸 티 내지 않으면서 키아라가 말했다.
디에고 하그리브스는 방패다. 궤도를 바꿔, 모든 걸 겨냥하는 그 능력은 창이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키아라에겐 저거야말로 방패였다. 뭐든지 날려버리는 방패. 물론 키아라 역시 무언가-이를테면 칼이라든지-를 던지는 디에고를 더 좋아헀지만, 디에고가 궤도를 바꾼 것에 건진 목숨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운전석의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총소리에 맞춰 날아와야 하는 총알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다. 마치 개한테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키아라가 작게 박수를 치며 웃고는, 비명이 들린 쪽으로 발을 옮겼다.
“다른 짓 하지말고 총만 뺏어.”
“너라면 죽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 여기 영감은 간지 빼면 무덤 가야해서, 방금도 아마 경고 사격이었을 걸. 신분도 없는 놈의 거래를 받아주는 건 한 번 뿐이라는 뭐 그런 뜻? 자기가 사는 입장이면서 뭐가 그리도 까다로운지 하여간 영감 그러니까 아직도 후계자를 못 정했지. 저러다 전쟁나야…”
디에고는 대꾸하는 걸 그만뒀다. 재잘재잘 떠드는 말 사이사이 들으면 안되는 것들이 들렸지만 적당히 무시했다. 저게 말한다고 그만둘 것도 아니고, 이제 화내기도 지쳤다. 이곳이 맞을거라 추정해 도착한 곳에는 핏자국 뿐이었다. 다리 쪽에 맞은 건가 바닥에 질질 끌린 자국이 있었다. 확실히 한 번 더 쏠 법도 한데 안한걸 보면 키아라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살아있으니 다행이네.”
“쫓아갈까?”
“아니, 만약 죽었다면 우리도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
“그래서 계속 불안한 꼴이었어?”
“뭐?”
“아까부터 말이 많은 게 겁 잔뜩 먹은 꼴이길래.”
맞잖아? 디에고가 능글거렸다. 키아라가 노려봐서 무서워 할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그 나이일 때도 무서워한 적은 없다. 키아라는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망할 디에고 하그리브스. 쓸데없을 정도로 잘 알고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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