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 리퀘스트 / 연성교환

우리, 내기 할까요?

Type: Lemonade

- 캐릭터+키워드 3~6개 정도만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프리타입 Type: Lemonade 신청글입니다.

- 파이널판타지14 장르 / ㅎㅉㄹ님 커미션 신청글

- 캐릭터 이름 제외 전문공개 허가를 받아 전문 올립니다.  

- 신청자님 이름을 A, 신청자님 언약자분을 B로 두었습니다.

- 언약자관계인 두 사람의 '평소에 보고 느꼈던 분위기를 토대로 글을 써달라'라는 요청 및 캐릭터와 '포카포카한 분위기'의 키워드만 받고 오마카세로 작업했습니다.

- 신청 글자수는 공미포 6천자. 총 공미포 6,197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내기 할까요?

copyright by. Mer

 

언젠가 당신이 그랬지. 발렌티온 때는 둘이서 둘만의 집 옥상에 올라 따뜻한 코코아를 나눠 마시며 별을 보고 싶다고……. 아마 서로가 너무 일이 많아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흘러지나가듯 하는 그 말을 붙잡고 내가 뭐라고 했더라? 그래, 기억을 하는지 못하는지, 내기해보자고. 기억을 해서 그날 나란히 옥상에 올라가 코코아를 나눠 마실 수 있게 준비하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그리고 이기는 사람에게 지는 사람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그때 당신은 자신이 없다고 했지만, 소원권이 걸린 만큼 지지 않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었지. 사실 그 뒤로 당신도 나도 너무 바빠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있잖아,

어쩌면 좋지?

 

이번 내기는 아무래도 내가 이길 거 같아요. 이게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냐며 웃겠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 * *

 

연한 레몬색의 퐁실한 꼬리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주방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달달한 향이 가득 풍겨오고 있었다. 달력은 어느덧 2월을 가리키고 있다. 날짜마다 그어진 X자 표시는 어느덧 12까지 그어져있었고, 이는 오늘이 13일이라는 것을 뜻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하트가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어느덧 발렌티온이네. 바빠서 정신없는 사이에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자칫하다 둘 다 내기에서 져서 무승부가 될 뻔했어.”

 

그거는 안 될 말이지. 무려 소원권이 걸린 내기다. 너무 바빴던 것도 사실이고, 까먹을 뻔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날짜가 지나가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두고 그 내기가 기억났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그녀였다. 후후, B님한테 소원권 얻은거로 뭘 부탁해볼까나……. 행복한 고민과 함께 주방에 채집해온 초콜릿 재료들을 와르르 쏟아둔 것이 벌써 두어시간 전이다. 처음에는 옥상에 올라가서 마실 따뜻한 코코아만 준비해둘 예정이었지만, 역시 코코아만 준비하는건 뭔가 아쉽지……. 시간도 여유있게 남은 김에 이것저것 잔뜩 준비해서 놀래켜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다보니 손을 놀리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다 준비할 생각을 하니 신나는것은 별개로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해졌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까닭이었다. 자신도 자신만의 일정이 있는데 언제까지고 주방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중대한 이벤트를 허투로 보내는 것은 본인이 납득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힘내서 손을 바삐 움직여야지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준비한 초콜릿이 이거로 충분하려나 모르겠네…….”

 

다른사람한테 링크셸로 연락해서 좀 캐다달라고 해야하나? 한켠에 산처럼 쌓여있는 재료들을 흘금 보고 만들 레시피의 재료양을 가늠하며 모자르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는 듯 밑재료를 다 준비하고도 쌓여있는 재료들을 보며 그녀는 쓴웃음을 흘렸다. 예상보다 너무 많이 준비했던 모양이었다.

 

“자연파괴범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네, 정말로…….”

 

브라우니, 파베 초콜릿, 코코아, 초코쿠키……. 만들고 싶었고, 만들 예정이었던 목록들을 다시금 되새기며, 본격적인 베이킹에 돌입했다. 코코아는 당일에 옥상에 올라가기 전, 빠르게 타면 되니까 따로 보관해두고, 일단은 쿠키와 브라우니 먼저……. 베이킹은 평소에도 커피쿠키를 구우면서 단련한 것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지만, 그래도 역시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어서, 긴장하며 계량하고 재료를 섞고 하던 손짓은 어느덧 처음 반죽한 브라우니와 쿠키를 오븐에 넣을 즈음엔 될대로 되라 식으로 계량기도 쓰지 않고 재료를 때려넣으며 공장마냥 재료를 섞어 반죽하고 오븐에 밀어넣고를 익숙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 이기세면 오늘 안에 목표치를 달성할지도 모르겠다고, 다 굽고나면 커피쿠키나 구워서 중용의 공예관에 납품할까 따위의 시답잖은 고민을 하며, 그녀는 쿠키와 브라우니를 굽고 초콜릿을 굳히고 있었다.

 

*

 

“좋아, 완성!”

 

제법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 것들을 바라보며, A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린다. 옆에서 다른 지인들이나 동료들이 봤으면 공장이라도 차릴 셈이냐고 물었을 법한 양을 빠르게 만들어낸 그녀는 예쁘게 잘 구워진 것들만 골라서 예쁘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언약자에게만큼은 예쁘고 맛있는 것으로 주고 싶은것은 누구나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양이 비틀리거나 쪼개진 쿠키와 브라우니를 입에 던져넣고 맛을 보면서 쿠키와 브라우니 등을 포장한 그녀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달콤하고 맛있는 맛과 예쁘게 포장된 것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준비는 끝났다. 해가 지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고, 내일 과연 제 언약자가 제시간 내에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찍왔으면 하니까, 내일은 집에 일찍 들려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정도는 보내두자. A는 바쁘게 종이에 편지를 써내리고 배달부 모그리에게 들려보냈다. 링크셸로 연락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어느 던전이라도 들어가서 바쁜 사람을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겠지……. 이렇게 편지로 초대하는 것도 나름 신선한 초대이지 않을까 싶어 홀로 만족한 채, 포장하고 남은 쿠키와 브라우니들을 대강 소분해서 바구니에 나눠담기 시작했다.

 

“의리초코로 부대원이나 신세진 사람들에게 조금 돌릴까……?”

 

제가 만든 것을 좋아해주던 지인들의 목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대강 선물할 사람의 목록을 정리한 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바구니에 소포장해서 담고, 예쁘게 달아둔 리본과는 반대로 달아둔 네임태그에 적힌 글은 ‘의리초코’, 단 4글자 뿐이다. 굳이 이 이상을 적어줄 필요는 없겠지. 발렌티온 전에 자신의 언약자에게 전해달라며 모그리를 독촉해 편지를 보냈던 그녀는, 모그리를 또다시 불러, 모그리에게 소량의 초코쿠키와 함께 바구니들을 전달하고 지인들에게 배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부려먹는 것 아니냐고 꿍시렁대던 배달부 모그리는, A에게 쿠키와 브라우니를 조금 받고 금새 환해져서 바구니들을 싸지고 날아갔다. 단순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너무 단순해서 사기당할까 걱정이라고 걱정해야하는걸까……. 저걸 몰래 빼먹지는 않겠지 등의 걱정을 하며 주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난장판이 된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 언약자에게 제때 편지가 도착했고, 그녀가 시간이 된다면, 분명 오늘 저녁에 와줄테니까, 그전에 이 난장판을 정리해야만 했다. 겸사겸사 저녁도 좀 차려둘까……. 오늘 저녁은 뭐가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초코범벅이 된 주방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 * *

 

저녁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해가 뉘엿뉘엿 져갈 즈음, A의 집앞에 도착한 B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달콤하면서 맛있는 냄새에 저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정작 자신에게 오늘 저녁에 와달라고 불렀던 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언약텔레포도 타지지 않았으니 집에 계실텐데, 혹시 주방에 계시나? 하고 소리쳐 제 언약자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A님 나왔어요! 세상에 이게 무슨 냄새에요?”

“어라? B님 왔어요? 언제 왔어요?”

“방금이요.”

 

언약반지로 텔레포가 안 타져서 어디계신가 싶었는데, 역시나 집에 있으셨네요? 그보다 집안에 너무 단내가 풍기는데, 뭐 만들었어요? 킁킁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와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언약자를 보며 A 또한 깜짝 놀란다. 생각보다 일찍 상대가 도착한 탓이었다. 아직 저녁준비 안 끝났는데……!

 

“뭐하고 있었어요? 이 냄새는 뭐구요?”

“저녁준비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무슨 냄새인지는 저녁이후의 즐거움으로 남겨줘요.”

“으응?”

“그보다, 저녁준비 다되면 오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왔네요?”

 

말을 돌리는듯한 물음에 B는 웃으며 거기에 응해준다. 오늘은 생각보다 일이 일찍 마무리됐거든요. 지금 주방을 넘어 집안가득 퍼져있는 달디단 향의 정체 엄청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나중의 즐거움이라 했으니 저가 캐묻지 않아도 알아서 알려줄터였다. 대충 짐작가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저녁을 먹고난 뒤면 제 짐작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니 지금은 제 언약자가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미소와 함께 조리대 위에 늘어둔 재료들을 흘긋 훑는다.

 

“저녁, 오늘은 뭐 하려고 했는데요?”

“글쎄요, 사실 거창하게까진 아니어도 잔뜩 뭔가 해보려했는데, 시작도 전에 B님이 와버렸으니…….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것 있어요? 모처럼이니 그것으로 해줄게요.”

“음 같이해요. 혼자보단 둘이 하는게 더 빠르니까.”

 

그렇게 둘이서 준비한 저녁식사는 단촐하다고 한다면 단촐하고, 단촐하지않다고 한다면 단촐하지 않았다. 저녁식사 준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빨리 와버렸으니 무언가 먹고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해주겠다는 A의 말에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먹고 싶다고 B가 답해서 스테이크와 샐러드에 이어 약간의 훈제치킨과 와인이 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포도주항구에서 직접 공수해온 와인은 맛이 좋았고, 식탁위에 놓인 꽃과 촛불이 은은하게 분위기를 돋궜다. 여전히 오늘이, 아니, 내일이 무슨 날인지도 제대로 짐작도 못한 상태로 그저 오늘따라 유독 로맨틱한 저녁식사자리가 마련된 듯 하다고 웃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드는 제 눈앞의 상대를 보고, A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아아, 정말로 이 사람, 나와 한 내기는 바쁜 와중이라 송두리째 잊어버린 모양이네. 큰일이네, 정말로 나한테 소원들어주게 생겼는데요, B님. 그러나 그 말은 절대로 입밖으로 내지 않고, A는 승리를 확신한 상태로 그저 맑게 웃으며 기분 내보고싶었다는 말정도만으로 얼버무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가끔은 둘이서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즐기며 둘만의 저녁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요?”

“그렇네요.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도 못해서 이렇게 느긋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되네요.”

“그쵸? 종종 이렇게 먹을까요?”

“나쁘지 않죠. 미리 언질만 준다면 시간 빼서 올게요.”

“무리하지는 말구요.”

 

따위의 소소한 대화와 함께 두 사람은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면서 즐겁게 저녁식사를 이어나갔다. 물론 내기따윈 완전히 잊어버린 B와는 별개로 A는 머릿속에서 상대에게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고민하느라 행복한 상상을 덤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본인을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 * *

 

이제 슬슬 가야겠네요. 내일도 일찍부터 일이 많아서 일찍 가서 쉬어야겠어요. 저녁식사를 끝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B가 일어나려는데 A가 붙잡았다. 이 사람, 분명 내일이 무슨 날인지 전혀 인지 못한 것임에 분명했다. 난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데, 평소라면 저렇게 바쁘면 붙잡지 않겠지만, 그래도 날이 날인데 한 번쯤은 붙잡아도 용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붙잡았다. 애처로운 눈빛을 만들어 보내는 것은 덤이었다.

 

“조금만 더,”

 

같이 있어요. 내일이 설마 무슨 날인지 아예 눈치도 못 챈 것은 아니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던 눈이 사르르 접히며 눈꼬리가 보기 좋게 휘었다. 아무리 바쁜 일정이 있었다고 해도 차마 거절할 수 없을 그런 눈웃음이었다.

 

“정 너무 늦을 것 같으면 여기서 자고가요. 여기서 자고 출발해도 딱히 상관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조금만 더 같이 있어달라는 언약자의 말을, B님은 무시하지 않을거죠?”

“알았으니까 그만 보채도 괜찮아요.”

“유후, 신난다!”

 

목적을 달성했다는듯 환하게 웃던 A가 B에게 그보다 정말 내일이 무슨 날인지 전혀 몰랐냐고 다시금 묻는다. 내일이요? 무슨 날이에요?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반응에 어쩔 수 없다는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A가 제가 준비한 선물상자를 건넸다.

 

“이게 뭐에요?”

“아까 그 단내의 출처에요.”

 

열어봐요.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상자를 열어본 B는, 내용물을 확인한 직후에야 내일이 무슨 날인지를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다. 발렌티온, 내일이었어요? 응, 이제 발렌티온까지 몇 시간 안 남았네요. 정말 몰랐어요? 어쩐지 도시들이 예쁘게 꾸며진 하트천지다 싶었는데……. 벌써 내일이었구나……. 바빠서 전혀 눈치를 못챘어요. 미안함을 내비치는 모습에 A는 키득키득 웃으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네요.”

“응? 무슨 소리에요?”

“뭐야, 설마 정말로 이것마저 완전히 잊은 거에요? 한 번 잘 생각해봐요.”

“아니, A님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얼른 생각해봐요, B님.”

 

우리가 전에 무슨 내기를 했을지. 웃으며 건네는 말에 B는 곰곰히 제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꽤나 떠올리는데 오래 걸리는가 싶었으나, 이내 어떤 날의 기억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발렌티온 때는 둘이서 둘만의 집 옥상에 올라 따뜻한 코코아를 나눠 마시며 별을 보고 싶어요.’

‘그럼 하면되죠.’

‘바빠서 잊어버릴 거 같은걸…….’

‘그럼, 내기 할래요?’

언젠가 둘이 했던 내기가, 잊고 있었던 그 내용이 생각난 듯, 아 하고 짧게 내뱉은 그녀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웃었다. 미안, 잊고 있었어요.

 

“요 근래 바빴잖아요. 그럴 수 있죠.”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상대가 바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오랜만에 얼굴을 비춰 미안함만 가득 품고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미안함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어차피 누군가 기억하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였는데 기억해내지 못했다고 미안해할 일은 더 아니었고. 아무튼 그랬다. 요는 그것이다. 내가 이겼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와서, 그대로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물었다.

 

“그래서? 이제는 무슨 내기를 했는지, 전부 기억났을 것 아니에요? 다시 한 번 말해 봐요. 내가 이긴 게 맞죠?”

“그래그래, 네가 이겼어. 응? 내가 진 게 맞으니까…….”

 

그러니까 그만, 거기까지. 이거 엎지르면 다쳐.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있다. 누가 보면 코코아를 엎질러 다칠까봐 일단 인정하는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상황이었지만,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기에, 그럴 리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만족스러운 답을 들었다는 듯이 물러나고 나서야 안심하는 표정을 보며, A는 짓궂게 장난기가 가득 피어오른 얼굴로 코코아잔을 하나 내밀었다. 제몫으로 탄 것이 분명한, 단내가 폴폴 풍겨오다 못해 마시멜로까지 얹어진 그런 코코아가 아닌, 상대의 취향을 맞춰서 탄 듯한, 적당히 달면서 우유거품으로 예쁘게 라떼아트까지 그려둔 것이었다.

 

“곧 12시에요.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별이 잘보이니까, 지붕위로 올라가면 예쁜 별구경을 하면서 발렌티온을 맞을 수 있겠네요. 얼른 올라가요.”

“그래요, 잊지않고 준비해준 덕분에 즐거운 발렌티온을 즐길 수 있겠어요.”

“어머? 그렇지만 B님은 대신 내 소원을 하나 들어줘야한다는거, 잊지 말아요.”

“알았어요.”

 

못이기겠다는 듯 웃으면서, B는 A와 함께 지붕위로 향했다.

 

*

 

지붕 위에서 마주한 밤하늘은 정말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예쁘고, 아름다웠다. 하늘도 두 사람을 돕는 것인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보름달까지 떠있었다면 별이 그 빛을 뽐내지 못했겠지만, 오늘따라 하늘에 뜬 달도 그믐달에 가까웠다. 즉, 별들이 맘놓고 제 빛을 뽐낼 수 있는 환경이 맞춰져있다는 소리였다. 그 탓인지 하늘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정말, 이번 발렌티온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하루의 시작부터 이렇게 잊지못할 광경과 추억을 만들게 되었는걸요. 웃으면서 말하는 B를 보며 A는 뿌듯함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 온종일 투자해서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덕분에 나도 올해 발렌티온은 어느 때보다 행복한 기념일 될 거 같아요.

 

“내년에는 누가 이길까, 똑같이 내기해볼래요?”

“나쁘지 않죠. 내년에는 기필코 내가 이길거에요.”

“어머? 과연? 내가 또 이길 수도 있죠.”

“다음에는 꼭 내가 이길거에요.”

“어머, 기대하고 있을게요.”

 

한 손에는 코코아를, 다른 손에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의 얼굴에 코코아만큼이나 달달한 미소가 피어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두 쌍의 눈에 빼곡하게 수가 놓였다.

 

“그래서 소원은 뭐로 빌지, 골랐어요?”

“음, 소원은요…….”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B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가, 이내 사르르 접히며 눈꼬리가 예쁘게 곡선을 그린다. 두 사람의 두런두런 속삭이며 낮게 흘리는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가르고 들려온다.

 

이번 발렌티온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쁜, 별이 한없이 쏟아지던 그런 밤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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