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노을이 예쁜 날에 (2020.02.23)

당신에게 영원할 약속을

  • 청랸 결혼식

  • 시점이 왔다갔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 랸더 캐붕이다? 절 죽여주십시오 사랑해요 앤오님...

 새벽녘, 옆자리의 사랑이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한 그는 조심히 빠져나와 침대 밑에 감추어둔 상자를 소리없이 열었다. 만든 이의 정성이 담겨 흔한 삐걱임 하나 내지 않은 채로 침묵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나무로 만들어진 함은, 안에 얆다리한 면사포를 담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녘 빛을 담은 듯, 새하얀 광택을 내는 듯, 날실과 씨실로 이루어져 두 사람은 거뜬히 덮을 듯 길고 커다한 면사포는 제 위로 꼭 일곱 번째, 자랑스런 형님의 솜씨였다. 결혼식 준비를 할 때 예복을 맞추면서도 면사포는 준비한게 있다 호언장담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저 그런 것보다는 다른 걸 씌워드리고 싶었으니.

 함을 다시 조심히 닫고, 침대 위로 올라와 조용히 걸터앉은 이의 얼굴에 숨길 일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어쩜 자는 모습도 사랑스러우신지. 쑥스러워 입 밖으로 내는 것이 드문 말들은, 내보니 생각보다는 별 것이고, 별 것이 아니라. 항상 활자와, 문자와, 글과 단어와 씨름하는 이는 다시는 놓치지 않을 온기 옆에 자리잡았다.

 내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되겠죠, 들릴지 모르는 말을 작게 읊조리고는 평안한 잠을 맞이했다. 이제 잃는 두려움과 사라질 조마조마함이 사그라들었으므로.

 9월 26일의 아침, 제시간에 기상한 청사는 옆자리의 이를 깨워 약간 늦은 아침을 먹었다. 둘 다 긴장했는지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는 상을 앞에 둔 상태가 간질간질해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의아한 청안에 그저 웃어주고, 식탁을 정리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쳐지나가듯 진심을 꺼냈다.

 "사실 저만 긴장할까 걱정되었습니다. 아니라 다행이군요."

 약간 짖궂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릇을 들고 뒤돌아 있던 채라, 등 뒤 리안더씨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청사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나중에라도 물으면 돌아올 대답이, 행동이, 표정이 있었으니까. 뒤로 미뤄도 언젠가는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깔끔히 정리된 상을 앞에 두고, 둘은 다시 머리를 맞대었다. 오늘 식의 거행은 오전 중, 앞으로 약 6시간 가량의 여유시간이 남아있었으며 그 중 4시간은 치장에 쓰일 예정이었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엄한 표정의 손윗형제들을 떠올린 청사는 그렇게나 시간이 걸리냐는 반문에 살짝 웃으며 답했다.

 "원래도 그러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처음 해보니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손윗형제들이 경험하신... 경험의 축적이랄까, 그렇습니다."

 그래도 여즉 의문이 남아있는 표정으로 납득해준 눈 앞의 이를 보며, 그는 몇 번이고 행복하다는 감정 아래에 줄글을 달았다. 아침에 마주보는 것, 돌아오는 인사가 있다는 것, 웃어주는 눈이 있다는 것, 대답을 돌려준다는 것... 나열하면 끝도 없었지만 아직 꺼내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것들을.

 남은 2시간 동안 뭘 할지는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둘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우르르 몰려온 준비팀에 둘로 나뉘기는 했지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음..."

 그러고보니 전달하는걸 깜빡했다는 침음성이 청사의 입술 새로 새어나왔다. 어제 분명히 준비는 따로! 라고 못 박아 놓으셨는데.

 "깜빡했습니다... 저희 준비는 따로 하는걸로 되어 있더군요."

 팔에 하나씩, 허리에 하나, 총합 셋의 손윗형제에게 끌려가 리안더로부터 멀어지며 청사는 미안함에 눈썹 끝을 슬쩍 내려트리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어째서 따로입니까?! 하는 질문에는 입을 닫고 시선을 피하며 손을 흔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각자 다른 차로 끌려가며 나중에 보자는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너희 준비는 절대 같이 못 시킨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안 울 자신 있니?'

 '.......'

 그렇다고 결혼식 날의 아침에 치장하는 리안더씨를 보다가 행복해서 울어 버릴 것 같다는 본심을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청사로서는 아주아주 억울한 일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그의 눈물샘은 그의 이성과는 별개였으니까.

 완전한 결별은 아니고, 네 시간 후에 다시 뵐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하고 외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밀어넣어진 봉고차의 문이 닫혔다. 닫히자마자 청사는 투정부리는 막내의 눈으로 자신들을 납치한 준비팀, 그러니까 제 가족들을 보았다.

 "재미있으신가요?"

 "엄청."

 그래도 결혼식 파토보다는 낫지 않냐며, 핸들을 잡은 열 번째 손윗형제가 킬킬댔다. 정말 파토날 뻔 한 것을 알고 있던 청사는 그저 한숨만 쉬었고. 제가 결혼하기 너무 이른 나이라니, 스물일곱 먹은 성인이라고 토로하고 토로하고 따지다 못해 꺼내든 비장의 한 수가 정말 먹힐 줄이야.

 '가족이 늘어나는거잖아요. 좋지 않으세요?'

 물론 그게 먹힌건지, 아니면 당시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제가 먹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청사의 가족은 청사에게 약했다. 그가 딱 그의 가족에게 약한 만큼. 싸워봤자 승자도 없는 무의미한 싸움은 그때로 종결되어 거의 서른 명에 가까운 인원이 청사의 결혼식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하객부터 시작해서 식순까지 무엇 하나 가족들이 신경써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게 감사해 치장은 잘 모르겠으니 마음대로 해주세요! 한 것의 여파가 이렇게까지 올 줄이야. 그러나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 것은, 제 가족이 저에게 나쁜 일을 할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확신이 깃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청사는 의욕으로 가득한 차량 안에서 수그렸다. 제발 적당히 해주세요, 하는 바램을 담고.

 장장 네시간 반 만의 대장정이 끝난 뒤, 청사는 겉으로는 매우 반짝였지만 속으로는 매우 너덜해진 상태가 되었다. 얼굴에 바르는 것의 종류는 얼마나 많고, 받아야 하는 마사지는 또 얼마나 길던지. 심지어 그 기나긴 시간동안 청사는 핸드폰마저 빼앗겼다. 들고 있다 헤실거리면 치장이 망가진다는 지극히 타당하고 억울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도 이만큼 준비한 리안더씨가 기다리신다고 생각하니 또 묘하게 기운이 나서, 청사는 결국 제 발로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꼼꼼하고 철저한 제 가족들은 식장 입장 전까지 둘을 절대 붙여놓지 않을 생각임을 깨달은 뒤라, 약간 해탈하기까지 했다.

 두 명을 동시에 보지 못하고 따로 보아야 할 하객분들에게 약간 미안하기는 했지만, 안 울 자신이 있냐는 반문에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으므로.

 "우회전, 멍청아!"

 "아 여기 일방이거든?!"

 그 와중에도 시끌시끌한 차량은 잘만 달렸다. 운전대를 잡은 쌍둥이 동생 한 명과, 그 옆에 앉은 또 한 명의 쌍둥이 동생을 보며 청사는 그저 미소지었다. 면허 딴지 반 년이라고 들었는데 꽤 착실하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무사고 면허 운전자로만 커주면 된단다, 하는 생각을 하고는 무심코 머리장식을 만지작거렸다.

 머리카락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틀어올려 고정한 은색의 비녀는, 끝에 옅은 금색의 투명한 구슬과 쨍하도록 새파란 구슬이 차례차례 순서를 지켜 아래로 늘어진 장식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음에 드시긴 하셨구나, 하고 그는 결국 혼잡함 속에서 다시 웃었다.

 로망은 드레스지! 아니야 한복이다! 로 싸우시던게 엊그제 같은데, 결국 둘 다 입히면 된다는 합의- 무려 100개의 도안을 기각시키고서야 가능했다- 를 내고서야 잠잠해진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곧 식장에 들어가 그 꼼꼼히 골라놓은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신부 복장을 한 리안더씨는 좀... 음, 심장에 많이 해로울 것 같았다. 달아오른 얼굴은 화장이 어느 정도 가려주었지만, 붉어진 귀끝도 가리지는 못해 결국 옆에 앉은 누이에게 팔꿈치로 쿡 찔러지기까지 했다. 조금 억울했지만, 할 말은 없었다.

 도착한 식장은 애써 섭외한 야외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너무 수수하지는 않지만, 너무 화려하지도 않게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 서 있는 흰 기둥 사이로는 하얗고 파아란 아기자기한 꽃들이 은빛의 천에 장식되어 늘어져 있었고, 의자는 적당히 조정해 앉을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다.

 크게 격식을 따질 것도 아니니 마음껏 해 보았다는 말을 증명하듯 주례를 설 단상은 없고, 대신 출처가 분명한 꽃바구니만이 긴 버진로드의 끝에 놓여 있었다. 주례는 시우씨가 서 주시기로 하셨으니 근처에 마이크는 있었지만 그다지 분위기 있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비밀의 정원]에 나오는 정원 같은 모습이랄까. 오기 전의 담쟁이덩굴로 덮인 담장도 그렇고, 내부의 모습도 그렇고. 맞냐는 뜻으로 아마 이 일을 책임졌을 열다섯째 누이를 슬 보자 당당한 미소가 돌아와 짐작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청사씨!"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 멈추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소리가 들려 뒤를 휙 돌아봤다. 오셨다는 반가운 미소를 걸치고 마중하려고 했는데- 시야가 나무판에 가로막혔다. 격파용 나무판처럼 가볍지만, 결코 투과해 볼 수는 없는 나무판이었다.

 청사는 정말정말 억울해졌다. 여기까지 와서 진짜 이러실겁니까? 하고 항의하며(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옆의 손윗형제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전부 눈을 돌렸을 뿐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나무판에 놀라셨는지, 가만히 있는 듯 발이 멈춘 리안더씨도 물론 귀여웠지만. 솔직히 약간 어리광을 부려버릴 뻔 했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저,"

 그러기를 얼마간, 청사는 심각하게 망했다는 경종이 울려오는 것을 감으로 느꼈다. 여기서 더 망할 일이...?

 "그, 사정은 들었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있구나! 누가 얘기하신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정말 작정하신 모양이었다. 삽시간에 붉어진 얼굴을 나무판이 가리는 것이 다행인지, 상황을 눈치챈 리안더씨가 떨어진 반대편의 텐트로 걸어가시는게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사는 당장 주저앉고 싶어졌다.

 이 상태로 주저앉으면 시간이 지체된다며 다시 끌려가기는 했지만. 진짜 너무한것 아니십니까, 누이형님들...!

 반쯤 넋나간 얼굴로 천막 안으로 들어온 그는 당장 드레스룸으로 밀어넣어져, 강제로 탈의당했다. 딱히 부끄러움은 없었지만 정말 넋이 나갈 것 같다는 마음으로 청사는 눈 앞의 웨딩드레스를 보았다. 식은 저것으로, 피로연은 한복으로 하겠다고 작정하셨지, 하는 기억을 되새기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드레스는 최악을 가정한 것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어깨를 훤히 드러내는 다이아몬드형의 상의를 고정하는 목 부분에는 자그마한 크리스털이 수놓아져있어 확실히 눈에 띄었지만,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에는 별다른 장식이 달려있지 않아 수수한 편이었다.

 마네킹에서 옷을 벗겨내자, 등이 전부 파여있다는 점까지도 눈에 들어왔지만 크게 문제될 점은 아니었다. 간편하게 맞춤식 드레스를 걸쳐입은 그는 눈 앞의 세 면으로 되어 있는 거울에 왼쪽 어깨를 비춰보았다. 아무래도 총상이라 그런지, 흉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야 별 것 아니니까.

 흡족하게 돌아선 청사는 눈앞의 악귀나찰들을 마주치고는 흠칫 굳었다.

 "저, 잘못이라도...?"

 "흉이, 졌었니?"

 "네."

 "이만큼이나?"

 "양호하지 않습니까?"

 정말 양호하지 않나? 등 뒤의 리안더씨가 맞는 것 보다야, 흉터 하나쯤은 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었는지, 이를 빠득 가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몇 초가 지났을까, 전쟁터에서 적의 수급을 회수하러 나가는 장군처럼 나갔다 들어온 형님 한 분이 꽃바구니를 들이밀었다.

 "흉터야, 영광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이건 아니지?"

 "네?"

 "치장한다. 디자인과 전부 붙어."

 흘긋 본 꽃바구니 안은 파란 끝을 가진 장미들 투성이라, 작정하셨다는 생각만을 짧게 한 후 그는 얌전히 몸을 맏겼다. 장미덩굴에 휩싸인 듯 드레스 곳곳을 멋스럽게, 그러나 과하지는 않게 치장한 뒤에서야 그의 가족들은 반 보 물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의 흉터는 그대로 보였지만, 그 쯤이야 네 선택이니 존중해주겠다는 표현인 것을 청사는 놓치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감사했다. 하객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와 결혼 축하한다는 축하의 말을 쏟아낼 때도,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 결국 식을 올리는 시간이 될 때도, 양측 입장! 이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질때도.

 천막을 걷어준 두 동생들에게 짧게 목례하고, 소중히 들고 온 함에서 꺼낸 면사포를 얼굴을 가리지 않게끔 반 접어 머리에 걸치고도 그는 흔들림 없이 발을 내딛었다. 흰색 단화가 드레스 자락 사이로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감추는 것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눈을 들었고, 마침내 그의 사랑과 눈을 마주했다.

 옅어 흰색에 가까운 금발은 똑같이 빈틈없이 틀어올린 머리도, 자신의 것과는 다르게 비녀 끝에 검정색과 파란색의 구슬이 늘어지는 장식도, 놀란 듯 크게 떠지는 푸른 눈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눈에 담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곧 울 것도 같았지만, 기여코 미소짓는데 성공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 가실까요?"

 물망초와 라일락으로 이루어진, 보라색에 가까운듯 오묘한 파아란 끈으로 구성된 부케를 잡은 손이 머뭇거리다 뻗어졌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의 뒤로 망토처럼 흰 베일이 드리워진 흰색의 드레스를 입은 이가 제 손을 잡았다. 걸어오는 발걸음에 흰 꽃잎이 붙은 듯 장식된 치마 밑단이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전해주는 이 없는, 전달받는 이 없는 결혼식. 그저 이대로 손을 잡고 올라가, 맹새한 뒤 쭉 같이 하겠다고 서약할 뿐인 그런 식. 오롯이 두 손으로 건내받을 내일에 긴장감이 점차 가라앉았다. 따지고보면 차일걸 각오하고 고백한 것 보다야 이게 덜 떨리기는 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도 같다.

 어느새 손을 맞잡고 음악에 맞춰서 빠르게, 느리게, 천천히도, 가만히도 멈춰서서 서로의 드레스 끝을 장식한 꽃들을 보고 웃음짓다가. 그렇게 느긋하게 식장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떨리지는 않은 채로, 익숙한 목소리의 축사를 들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축사를 해주시던 시우씨가 미묘한 표정으로 리안더씨와 그의 머리카락을 흘긋 보고는 다시 축사를 이어가는 작은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서로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맹세합니까."

 대답만큼은 자신있게.

 "네."

 두 목소리가 겹쳐서 울렸다. 하나는 그의 것, 하나는 리안더씨의 것. 딱 맞은 타이밍에 맞잡은 손을 두고 서로 마주보고 다시 웃었다. 시우씨가 가져와주신 바구니에 작은 부케와, 곱게 짜인 베일을 두고 안에 있는 팔찌를 들어올렸다.

 잘 끊어지지 않게 많이 신경썼다며 뿌듯해하신 만큼, 끝은 전통매듭을 쓰고 전체적으로는 고운 자수가 놓인 팔찌였다. 청사도, 상대도 손을 많이 쓰니 반지는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았다며 아래로 세 번째 동생이 해준 세심한 배려였다.

 검정색 바탕에 흰 자수로 청사초롱의 막대를 문 사자를 수놓은 것이 리안더씨의 것, 파아란 바탕에 흰 자수로 사자를 비추는 청사초롱을 수놓은 것이 그의 것. 누구 취향이랄까봐, 직관적인 비유였다. 웃으며 서로의 손에 서로의 팔찌를 걸어주고, 넘치는 사랑스러움에 그대로 눈앞의 이를 꼭 껴안았다.

 결혼식의 메인 이벤트가 막을 내렸다.

 "수고했어~"

 "아니요,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식 뒤에는 피로연이 있었다. 맹세를 나눈 곳을 기준으로 둥글게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고, 대부분을 서서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로 준비한 음식이 긴 테이블 위로 늘어졌다. 앉아 다과를 즐길 이들을 위한 티테이블도 곳곳에 배치되었고, 그와 리안더씨는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피로연마저 드레스인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누이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개량 한복 위로 쾌자를 덧입는 식으로 피로연의 복장을 준비했다. 치마는 이미 입혔으니 다음은 바지라는 주장도 받아들여, 움직이기는 훨씬 편했다.

 윤기나는 검정색의 쾌자 끝에는 청사초롱이 나열한 길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파란색의 쾌자 끝에는 아이보리색 사자가 뛰노는 풍경이 수놓아졌다. 이것도 설마 맞춤제작입니까? 물으니 당연하지 않냐는 듯 돌아오는 끄덕임이 얼마나 듬직했는지.

 삼삼오오 떠드는 하객들의 사이로 인사를 다닌 후에는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배를 채웠다. 서로 떨어져 있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작은 테이블 위로 오갔다. 알고보니 리안더씨는 그가 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치장하며 핸드폰을 빼앗기는 순간 전해들었다고 한다.

 역시 조금 쑥스럽기는 하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고 반박하니 돌아오는 웃음이 그렇게 눈부실수가 없었다. 울기에는 리안더씨가 아까웠습니다, 는 언젠가의 어느 날 말해주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배를 채웠다.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된 결혼식의 끝에서는 청사가 운전대를, 리안더가 조수석을 차지하고 근처에 잡아둔 바닷가의 팬션으로 허니문을 가는 것이 예약되어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못마땅해하는 낌새도 있었지만, 웃는 얼굴을 보더니 그거면 되었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어 집으로 보낼 짐도 늘어나버렸고, 리안더씨의 어머니는 생각보다 멋지신 분이셨다.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며 또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혹 내일 일어나면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말에 꼬집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리안더씨는 많이 귀여웠지만. 그건 운전대를 놓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 전에 해야 할, 그가 계획한 일도 있었고. 도로가 한산한 것을 확인하고 슬쩍 옆으로 눈을 돌려 리안더씨에게 웃어보인 청사는, 어딘가 후련해보이기도 했다.

 팬션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가 뉘엇뉘엇 질 무렵 청사는 리안더의 손을 맞잡았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잠시 산책에 어울려주시겠습니까?"

 어둑어둑, 이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길은 들고나온 손전등이 아니었다면 한 치 앞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기만 했다. 서로 맞잡은 손으로, 나누는 온기로 있음을 확인할 뿐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돌연 청사가 발을 멈췄다. 손전등을 모래바닥에 꽂아두고 리안더의 손을 맞잡았다.

 "좀... 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리안더씨라면 들어주실거라고,"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도 청사는 그저 웃었다. 이쯤이야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얼떨떨한 채로 어둠에 묻힌 청안에 웃는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한때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안주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원래 타고나기를 욕심쟁이였다. 옆에서 누가 부정하더라도 그랬다. 조금 더, 하고 손을 뻗는 것은 특기였고, 움켜잡는 것은 자신있기도 했지만, 전부 자신 없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니 이건, 비밀이야기로 합시다. 작게 속삭인 청사가 어느 틈엔가 챙겨나온 베일을 자신과 리안더의 위로 덮었다. 심호흡을 했다. 입을 열었다.

 "사실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연인으로 남아있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름을 바꾸면 관계를 재정의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생겨나겠죠. 그 과정에서의 미묘한 차이를 맞춰나가다가 영영 헤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눈은 똑바로 정면을 보고, 손은 제대로 상대를 맞잡고.

 "아, 리안더씨가 확신을 주지 못하신건 아니니까 걱정하신다면 넣어두시고요."

 파아란 눈에 웃는 상태로 비치는 것이 저 뿐이기를 바랍니다. 손을 내주고도 멍하니 서있는 상대가 저 뿐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으니까, 딱 이만큼만 해주세요.

 "한 걸음. 딱 한 걸음 떼어내기가 그렇게 힘들고, 그냥 지금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진득함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리안더씨와 만난 이후로 알게 된 것들이 두 손에 넘칠 정도로 많으니 하나 추가되는 것 정도는 별 것도 아니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결혼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덮인 베일을 손전등이 빛났다. 반짝이는 베일에는 작게 여러 덕담이 수놓아져 있었고, 끄트머리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각자의 언어로 수놓아져 있었다. 평생 함께, 날실과 씨실이 엮이듯 함께 있기를. 청사의 바람이었다.

 "말이 두서없죠? 죄송합니다. 저도 이런 건 처음이라... 여러가지가 처음이죠. 결혼식도, 상견례도, 이후의 절차도,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모든 절차가 처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바람이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했고.

 "아마 앞으로도 이것저것 많은 일을 겪겠죠. 방공호만큼 큰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큰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도 있을겁니다. 그래도 딱 하나, 기억해주셨으면 하는게 있습니다. 리안더씨, 저는 당신이 주는 변화마저 사랑합니다. 그게 줄 간격을 맞추지 못하고 인쇄 할 때 튀어나간 글자와 같던, 아니면 새 장의 첫 들여쓰기와 같던 말이죠."

 이건 너무 편집자스러웠나요? 머쓱하게 웃은 청사가 그럼에도 검정으로 물든 눈을 빛냈다. 온전히 눈 앞의 상대만을 담아냈다. 손전등 불빛에 비춰, 제대로 보이는 것이 반절이면 어떤가.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손잡고 잘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면 되는 일인 것을.

 "저는 당신에게 확신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일도 뜨는 해와 지는 해를 같이 보겠다는, 언제까지도 당신을 오롯이 사랑하겠다는 확신을요. 충분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걸어갈 때, 손을 놓지 않아줄 것이라는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리안더씨도 그런 확신이 있었으면 한다고 청사는 반쯤 어둠에 잠긴 얼굴로도 웃었다. 맞잡은 손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말로 전부 풀어내니 쑥스럽네요. 그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 붉어진 얼굴은 그도 상대도 마찬가지라, 웃음만이 나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어찌되던 괜찮을 것 같다는 미묘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저 손전등을 놓고 가도 저 어둠이 무섭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손끝의 온기로부터 온 것이라.

 "자, 이제 돌아갈까요? 집(home)으로."

 청사초롱은 비로소 평생 비추어줄 상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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