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의 시대

프리랜서 헌터가 균열과 공무원을 대하는 방법

[아르마 코르니스] 알마라트

  웨에에엥-.

    사방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몇 십년 전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었을 낯선 소리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소리였다.

“오후 6시 48분, 8구역 37, C 주식회사 건물 내부형 균열 예측. 인근 국민 여러분은 즉시 K건물 비상대피소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이렌 소리 위로 차분한 기계 음성이 겹친다. 근처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수근거리면서도 익숙하게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내부형 균열이 발생하는 장소에 있다가는 자칫 던전에 삼켜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균열 정도는 일상이라, 사람들의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 라트로는 그 인파를 구경하며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

“아, 좀 큰 균열 없나.”

    막 도착한 정보원의 문자에는 ‘3급’이라는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이번 균열이 3급으로 예측된다는 정보였다. 균열 열리는 게 랜덤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수확 좋은 2급 균열은 뉴스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국제안전관리협회에도,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각성자, 소위  ‘프리 헌터’에게 중요한 것은 등급 높은 균열로 인한 인명피해 같은 것이 아니었다.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은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부산물과 던전에서만 채집할 수 있는 진귀한 아이템들. 길드에 던전 공략 용병으로 고용된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오늘처럼 혼자 움직일 때는 희귀한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1, 2급 던전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3급이라니? 내부형 균열, ‘던전’이니만큼 어느정도 아이템은 건지겠지만 3급 던전의 아이템은 비싸게 팔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라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법칙’이고 ‘제2세계’고, 하여튼 인생에 도움 되는 일이 없어.

“라트로 에스투스.”

    신세한탄으로 다시 한 번 새어나가는 한숨 위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짜증, 언짢음, 못마땅함. 어쩌면 분노까지 담고 있는 듯한 목소리. 라트로가 잘 아는 목소리였다.

“오늘은 빨리 왔네? 저번에는 내가 들어가고 나서야 오더니.”

    사람 성질을 돋우는 얄미운 목소리에도 상대, 아르마 코르니스는 이렇다할 대답이 없었다. 그저 평소같이 미미하게 인상 쓴 표정으로 넓은 로비를 가로질러 오고 있을 뿐이었다.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아르마의 뒤로, 출입통제선을 치는 S팀 팀원들이 보였다. 국제협회의 미국 지부 S팀. 라트로는 흥미롭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3급 균열에 S팀은 필요없을 텐데?

“균열 공략 방해죄 처벌, 어제자로 강화됐는데. 뉴스 안봤나?”

    어느새 카운터 너머에  팔짱을 끼고 선 아르마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균열 공략 방해죄 처벌 강화, 더 많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종종 균열을 방치하는 길드 헌터나 프리 헌터들을 겨냥한 조치였다. 인명피해 최소화를 목적으로 균열을 공략하는 협회 공무원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고 들었다. 유명한 프리랜서 헌터 중 하나, 라트로는 히죽 웃으며 카운터에 턱을 괴었다.

“우리 대애단하신 아르마님이 계시는데, 내가 그런 짓을 하겠어?”

    걱정마~. 라트로는 더없이 가벼운 어조로 덧붙였다. 어차피 3급 균열에서는 건질 것도 없는데, SSS급 공무원님과 여기서 더 척지는 일은 라트로로서도 사양이었다. 어차피 명확한 이유가 없으면 공무원이 각성자를, 그것도 협회에 등록된 정식 헌터를 균열에서 쫓아내지는 못하니 옆에서 적당히 괜찮은 것만 챙겨 나올 생각이었다. 

SSS급, 인류의 구원자, 국제협회의 1등 각성자, 지고 있는 이름도 하나같이 거창하신 눈앞의 공무원 나리는 언제나와 같이 짜증스럽게 구겨진 표정을 돌려주었다.

“걸리적 거리면 바로 공무집행방해로 쫓아낼 테니까 알아서 잘해.”

“예에, 예. 그렇게 걱정되면 손가락이라도 걸어줄게.”

    웃으며 건넨 농담은 장렬하게 씹혔다. 아르마는 라트로를 보지도 않고 막 생성되기 시작한 균열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균열은 점점 몸집을 불리며 25층 짜리 건물을 통째로 잡아먹고 있었다. 조금, 지나치게 비대하게. 아르마를 따라 균열로 눈을 돌린 라트로가 문득, 두 번째로 느껴지는 위화감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공무원님.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어느새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총 하나를 소환해 낸 아르마가 대답 없이 고개만 돌렸다. 이거 혹시, 설마하니.

“이 균열, 몇 급이야?”

“1급.”

    협회 미국 지부 최고라는 S팀이 파견된 이유가 있었다. 균열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아르마가 라트로의 균열 진입을 구태여 막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라트로는 생각했다. 이거… 횡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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