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떠나는 이야기
약속되지 않은 재회
*작업곡
0.
게게로에게는 못된 습관이 있었다.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든 결론을 내린 채 상대에게 통보하고 마는 것이다.
1.
그날도 게게로는 태평하게 누워있었다. 나 역시 일주일 만에 찾아온 휴일을 즐기며 앉아있었다. 여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며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간혹 이 녀석이 덥지는 않을까 쓸모없는 걱정을 하며 움직이던 부채의 무게가 아직도 생생했다. 흘러간 시간이 오감으로 자각되는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게 있다면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었다.
우린 곧 떠날 생각이네.
오늘 간식은 체리가 좋겠구만. 헛된 것을 조를 때와 똑같은 말투였기에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뭐? 되물어보던 내 어조가 꽤 멍청하게 들렸다. 다행스럽게도 오래된 요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다. 단순히 알 필요가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잠깐 묵고 가는 여행지에 마음을 두고 가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자그마한 관심과 일탈을 즐기면 족했다. 그들에겐 돌아갈 장소가 있었다. 필요 없는 동행자는 짐과 같은 무게일 게 분명했다. 나는 반문과 동시에 납득하고 말았다. 게게로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누운 채 나를 위한 설명을 풀어놨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행복이 있기 마련이라고.
우리를 위해 시간을 쓰지 말고 자네의 행복을 찾으라 했다면
너희가 곧 내 행복이라 반박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유령족은 아들의 성장을 이유로 꺼냈다.
키타로의 성장이 멈춘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아아. 인간의 관점에서는 말이야.
음. 유령족은 천천히 자라는 법. 내 아들이기에 장차 커질 게 분명하지만-
내가 보지 못할 미래의 광경이 게게로의 언어로 꺼내졌다. 하얀 손을 흔들며 온몸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던 평소와 달리 게게로는 매우 정제된 움직임을 보였다. 나 역시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고개를 젖힐 힘조차 없었다. 게게로의 길디긴 자랑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키타로는 훌륭하게 자랄 것이다. 그러니 자네는 걱정하지 말아라, 고.
한없이 자애로운 언행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산 지 십 년 남짓이 지났다. 자라지 않는 아이. 고작해야 세 단어로 이루어진 단어가 얼마나 잔혹한지 깨닫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돌을 던지는 아이를 쫓아내며 벌어둔 시간이 소진되기에도 충분했다. 유령족은 타인에게 쉽게 상처 입히지 않았다. 그건 타인 역시 유령족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키타로는 웃자라고 말았다.
아니, 이 역시 내 편협한 시선이었다. 키타로는 너무 빨리 자라나고 말았다.
아이를 보며 어른스럽다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아버지보다 성숙해 보일 정도였다. 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며 투덜거리는 키타로에게 간식이나 용돈을 쥐여주던 행위는 내 욕심에 가까웠다. 자라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비슷한 마음의 발로였다. 게게로의 푸른 옷자락이 선명하게 박혀왔다. 너희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 일상이 깨지지 않았으면 했어. 언젠가 이 행복이 깨질 거라 믿고 있으면서도 정확한 일자를 찾으려 굴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한 자의 말로라 칭하기엔 너무 거창했다. 딱딱하게 굽은 주먹을 폈다. 습관적으로 긍정했다.
이후 자세한 대화는 떠오르지 않는다.
태연을 가장하여 대화를 나눈 끝에 내가 슬퍼할까 걱정하던 게게로가 마침내 뒤를 돌아보며 웃어 보이던 순간만 기억난다. 얇은 백색의 머리카락이 네 움직임을 따라 흔들린다. 남자치고는 커다란 눈이 순박하게 접힌다. 달려와 안기는 몸놀림이 참으로 가벼웠다. 눈치 보는 개 같다며 타박하던 순간 직감했다. 난 이 순간을 잊지 못하겠구나.
햇빛이 밀려온다. 이제는 홀로 남아 게게로의 자세를 따라 해본다. 볕이 좋은 여름날, 마당이 아닌 집 안을 바라보던 심정을 헤아려본다. 널 이해하지 못하리란 믿음이 전제로 깔린 고찰이다. 어떤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난 너희를 그리워할 테니까. 허전한 옆자리를 매만지다 눈을 감는다.
적어도 떠나는 날 마지막 인사정도는 해주지.
참으로 사랑스럽고 매정한 이들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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