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학교

“너 아직도 그 초딩겜 하냐?”

“너같이 현찰박치기 게임 하는 것보단 훨씬 낫거든.”

“그건 가치있는 소비였다니까!”

핸드폰 속 데이터에 정신이 팔려 50만원으로 천장을 찍은 B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빽 소리를 질렀다. A는 B가 현질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뒤집는 꼴을 번번히 봐 곧 저 입술 사이에서 삐져 나올 말의 순서를 알아 그만하자며 도리질 쳤고 둘은 그대로 헤어졌다.

A는 OOO온라인의 골수팬이다. 출시한지 20년도 더 된 온라인 게임인데 매니아 층도 탄탄히 있을 뿐더러 특유의 귀여운 그래픽 덕에 어린 학생이 유입되는 일이 잦았다. A 또래의 유저들은 ‘급식충 새끼들 게임에서 물 흐린다’며 뉴비 캐릭터에게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았으나 A는 여러 게임을 해봤으면서도 OOO온라인만큼 정붙인 게임이 없어 제발 이 게임이 오래가길 바라는 사람인지라 신규 유입이 보이면 돈이나 아이템을 주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최근에 주운 뉴비가 제법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A는 이 게임에 조금이라도 신선한 공기가 나부끼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오후 연강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자취방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하이]

[하이]

6시 10분, 늙어빠진 직장인들이 들어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고 학생들은 한창 학원에서 썩고 있을 때다. 뉴비 C는 오늘도 A보다 일찍 접속해서 귓속말로 말을 걸었다. A가 기다렸다는 듯 답장하는 타자가 빨라졌다.

[오늘은 검은 숲 스토리 퀘스트 깰 수 있을듯? 딱 지금 해야해 이따가 사람들 접속 많이 하면 자리 없어]

[아] [응]

C는 말이 길지 않은데도 타자가 느려 사냥을 하다가도 타자를 치기 위해 줄에 매달리거나 안전지대로 걸어가는 다소 답답한 행동이 있었으나 A는 그런 점마저 뉴비의 귀여움으로 전부 참을 수 있었다. 게임이 괜히 게임인가? 시간낭비 하면서 시시덕 거리는게 게임이지. C는 A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있는 몬스터 50마리쯤 잡고 잡템 다 먹어둬 퀘스트 아이템 아니라서 이거 모아두면 바로 깰 수 잇음 ㅇㅇ]

[오]

C는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아이템을 먹었다. A는 뿌듯하게 지켜보며 C를 해치지 않게 주변 몬스터를 마저 해치웠다.

[근데]

아이템을 열심히 먹던 C가 말문을 열었다. A는 간단하게 대화창을 열고 ‘ㅇㅇ’이라고 답장하며 상대의 답을 기다렸다.

[A는 어떻게 해야 잘 씻는지 알아?]

[?]

뜬금없는 질문에 A는 순간 커맨드 키 입력을 까먹어 콤보가 끊겼다. 다행히 몬스터에 몇 대 맞는다고 죽을 레벨이 아니라 C의 말을 좀 더 기다릴 수 있었다.

[나] [학교에서]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해서]

[아 그래?]

A는 솔직히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렇게 어린 학생이었나? 말투만 보면 영락없는 중~고등학생이었는데 스스로 씻는 법도 잘 모른다면 훨씬 어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너 몇살인데?]

[12]

정말 생각보다 어리다. A는 이걸 어찌 답장하나 생각하다 화면 속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당하고 있을 폭력을 떠올리자 측은지심이 들었다. 외동으로 태어나고 자라 아이와는 연이 없는 팔자였으나 타자를 움직여 C에게 하나하나 질문했다.

[너 평소에 어떻게 씻는데? 씻는 시간은? 물은 뜨거운 물 써 따듯한 물 써?]

[물로] [10분 정도] [뜨거운 물이 나오면 뜨거운 물]

[바디워시는 써봤어? 샴푸는?]

[바디워시랑 샴푸는 있는데 많이 쓰면 안대서 잘 안써]

뜨거운 물이 가끔 나오고 샴푸나 바디워시 쓰는 것으로 잔소리를 해주는 집에서 용케 컴퓨터는 사줬다 싶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이름도 모르는 C의 자존심에 상처를 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A는 ‘ㅈㅁ’ 이라며 시간을 벌고 인터넷에서 ‘아이 목욕 교육’,‘씻는 법 교육’ 등을 검색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한참동안 타자도 없이 A가 설명하는 씻는 방법을 들었고, 느리게 대화창이 갱신되었다.

[고마워] [우리 엄마는] [이렇게 안 알려줬어]

[아냐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이제 잘 씻고다녀 애들이 싫어하지 않게 ㅋㅋ 왕따당하면 슬프잖아]

‘좆같잖아’ 라고 쓰려던 걸 지우고 ‘슬프잖아’로 바꿨다. 아무리 학점 말아먹은 지방대생이라고 해도 어린 아이에게 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아이는 F1을 눌러 캐릭터로 웃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이야기 했다.

[저 미안한데] [앞으로도 물어봐도 될까] [나 모르는게 많아서] [친구들이] [싫어해] [학교에선] [이런거 잘 안 알려줘]

[ㅇㅇ 당연히 괜찮지 언제든 물봐 그럼 오늘은 질문 더 없어? 없음 스토리퀘 ㄱㄱ]

[ㅇㅇ] [ㄳ]

짧은 대화가 끝나고 둘은 다시 사냥에 열중했다.

A는 C의 작은 학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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