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리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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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2 훈련로그 w. 아모르

낙원탈출기록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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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은 유별나게 예민해서, 아무리 거짓으로 칭칭 둘러쳐도 어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레아 리크먼’이 ‘비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된 후보이기도 한 그런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지각에 반응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마다 대놓고 어깃장을 놓으며 불신을 드러내는 축이 있었고, 자기 또한 어른들에게 속내를 숨기고 조용하고 알 수 없는 외관 뒤로 은신하는 축이 있었고, 무기력과 허무감에 허우적거리다 가라앉아가는 축이 있었고…….

‘로드 아모르’는 그 중에서 레아가 가장 안쓰러워하는 부류였다. 말하자면, 과잉 순응.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요정처럼 사랑스러운 금발을 한 소녀는 요람에서부터 매일 어디에서나 아부와 찬사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왔음에도 꼭 남의 집에 얹혀살게 된 고아처럼 힘껏 눈치를 보며 예쁘게 굴었다. 마치 어른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의 존재뿐만 아니라 내용까지도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처럼, 아모르는 자기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 이상으로 ‘쓸모’를 잃고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뒤돌아서는 연인의 옷깃을 붙잡고 애원하듯 필사적으로 낙원의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아모르의 명랑은 공포의, 웃음은 고독의, 행복과 지족은 절박함의 산물인 것. 그 빛보다 그늘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은 필히 레아 리크먼의 창조성과 헌신이 아스마 레만 키라즈의 결핍에서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주 지구’가 형성되고 조가 구획되어 공동체의 모든 일들이 일목요연히 함께 계획되고 실행되기 시작한 뒤로 아스마는 로드들을 찾지 않았다. 굳이 피해다닌 것은 아니나 안부를 살피지도 않았고, 종적을 감추어도 그러려니 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배움반이나 도서관을 만드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관여했지만, 그것 역시 기회가 오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손을 떼버렸다. “보모가 필요한 나이는 지났으니까요.” 하고 그는 말하고, ‘이런 걸 부모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몇몇 상냥한 이들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렇게 대우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 또한 알고 있는 바였으나…… ―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기만과 예속의 관계는 새장과 함께 뒤에 남겨두고 와야 했다. 정상적인 부모나 친척, 이웃이나 보호자처럼 그가 장성한 아이들의 생활을 넘겨다보고 개입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스마 레이는 지하에서 보낸 10년 동안 아모르의 마음과 삶에서 일어난 변곡에 대해 다 알지 못했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단지, 어느새 두려움과 그늘을 떨치고 개선하는 영웅처럼 위연하게 일어선 용태뿐. 그런데도 아모르의 말에서 그는 가슴에 찬란한 물결처럼 벅차게 밀려와 부딪히는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네가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는 세계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랐는데. 너는 그것을 끌어안고서 여기, 이 순간에 서있기로 했구나.

달이 뜬 밤하늘은 어둡고 흐리다. 태양을 닮은 금빛 눈동자도, 반짝이는 금발도 도시의 창백한 인공 조명에는 바랜 밀색으로 비추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워요, 아모르.”

한순간 아스마는, 꼭 검은 머리카락을 발치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린 낙원의 서기관 시절처럼, 경탄하는 듯한 경어로 말한다.
눈앞에 선 가엾고 외로운 소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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