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기와 하얀 날개의 가인
챕터 1 훈련 로그 w. 아르셀리아
옛날 옛적에, 어느 산골에 외로운 산지기가 살았습니다. 숲에서 동물을 잡아 고기와 옷을 얻고, 나무열매를 따먹고 씨앗을 심어 새 나무들을 길렀습니다. 산지기의 오두막에는 짐승 가죽과 나무 묘목들, 먹다 남은 음식 따위가 아무렇게나 널려있었습니다.
어느날 산지기는 덫으로 희고 아름다운 새를 잡았습니다. 새의 목을 비틀려는 순간 새가 맑고 고운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를 살려주시면 은혜를 갚을게요.”
산지기는 가여운 생각이 들어 새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보니 집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부엌에는 맛있는 요리가 지금 막 완성된 듯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습니다. 산지기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산지기가 집에 도착하자 깨끗한 집과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간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자 산지기는 누가 왔다 갔는지를 알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러 나가는 척하고 옷장 안에 숨어있었습니다. 하늘에 햇님이 걸리자, 지붕에 난 작은 창으로 하얀 새가 날아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등에 한 쌍의 커다란 날개가 달린 가인으로 변했습니다. 가인은 집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치우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지기는 옷장 안에서 뛰쳐나와 가인의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살아주세요.”
가인은 곤란해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죄를 지어서 잠시 이 땅에 와 있는 하늘 나라의 사람이에요. 10년이 지나면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하지만 산지기가 너무나 간절하게 부탁했기 때문에, 가인은 결국 산지기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산지기는 행복했습니다. 사냥에 실패해도 싱글벙글 웃음이 나고, 나무를 심는 것도 신바람이 났습니다.
하지만 10년 뒤, 가인은 정말 하얀 새로 변해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산지기는 아이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사흘 밤낮을 울다가, 가인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약초꾼 노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산지기는 하얀 새가 날아간 쪽으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다가 벼랑에 매달려 밭을 가는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어르신, 하얀 새가 어디로 가는지 보셨나요?”
산지기가 물었습니다.
“이 밭을 다 갈아주면 가르쳐주지.”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산지기는 벼랑에 매달려 넓은 밭을 다 갈았습니다. 노인은 씨앗 한 줌을 주면서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노인이 가르쳐준 길로 계속 가자 이번에는 구멍이 난 독으로 물을 긷는 여인이 보였습니다. 산지기가 물었습니다.
“부인, 하얀 새가 어디로 가는지 보셨나요?”
“나 대신 물을 길어주면 가르쳐주지.”
여인이 말했습니다. 산지기는 손으로 구멍을 막고 물을 길어다주었습니다. 여인은 물 한 바가지를 퍼주면서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여인이 가르쳐준 길로 계속 가자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얘들아, 하얀 새가 어디로 가는지 보았니?”
“우리랑 놀아주면 가르쳐주지.”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산지기는 아이들이 실컷 놀아서 잠이 올 때까지 아이들과 놀아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하나 알려주면서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가르쳐준 길로 가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나왔습니다. 산지기는 노인이 준 씨앗을 심고 여인이 준 물을 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르쳐준 노래를 불렀습니다.
훨훨 나는 꾀꼬리는 둘이 서로 정다운데
외롭구나! 나는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
그러자 땅에서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와 순식간에 하늘 높이까지 쑥쑥 자라났습니다. 산지기는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구름 위까지 이르렀습니다. 구름 위에는 날개가 달린 사람들이 궁전 같은 집을 짓고 나라를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구름에서 구름 사이를 건너갈 때는 큰 날개를 펴고 새처럼 훨훨 날아갔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궁전에는 산지기의 반려인 하얀 새가 살고 있었습니다. 산지기를 본 반려는 크게 기뻐하며, 산지기에게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주고 구름 침대에 눈 이불을 펴주었습니다. 또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와 거미줄로 짠 날개옷을 주었습니다. 날개옷을 입은 산지기는 하늘 나라의 사람들처럼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산지기는 한동안 다시 만난 반려와 꿈결처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고향의 숲과 강이 그리워졌습니다. 작은 오두막과 돌보던 나무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산지기가 돌아가겠다고 하자, 반려는 고향의 숲 깊은 곳으로 산지기를 데려다주며 말했습니다. 땅에 내려선 다음에는 날개옷을 접어 품 속에 넣고, 결코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요. 하지만 산지기는 집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그 경고를 어기고 집까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늘을 날아오는 산지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 눈물로 산지기를 환영했습니다. 산지기는 반려가 준 금은보화로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사입히고, 책을 사서 학교에도 보냈습니다.
불행하게도, 욕심 많은 임금님의 시종이 산지기의 모습을 보고 임금님에게 알렸습니다. 부자가 된 산지기의 소문을 들은 임금님은 산지기를 궁전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보물을 얻은 곳과 날개옷에 대해 캐물었습니다. 산지기가 딱 잡아떼자, 임금님은 괘씸해하며 시종을 불렀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임금님. 이 자가 하얀 옷을 입고 구름 위에서 훨훨 내려오는 것을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잘못 본 겁니다, 임금님. 하얀 눈발이 날리는 것을 보고 착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산지기가 시치미를 떼자, 임금님은 경비병을 불렀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임금님. 이 자가 울창한 숲의 나무들 위로 거침없이 쭉쭉 날아가는 것을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잘못 본 겁니다, 임금님. 나무의 우듬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착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산지기가 또 시치미를 떼자, 임금님은 나무꾼을 불렀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임금님. 이 자가 오두막의 지붕 위를 빙빙 맴돌다 내려앉는 것을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산지기는 더 이상 시치미를 뗄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날개옷을 꺼내 임금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감히 임금에게 거짓말을 해?”
임금님은 산지기의 목을 자르고 날개옷을 빼앗아 입었습니다. 하늘 위로 높이높이 날아오르자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임금님은 누가 또 보물을 숨겨놓고 있나 목을 빼고 여기저기 들여다보며 날아다녔습니다.
한편 산지기의 아이들은 산지기의 소식을 듣고 지체없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궁궐에 살금살금 들어가 산지기의 목과 몸을 가져왔습니다. 둘째는 긴 실과 바늘로 산지기의 목을 도로 꿰맸습니다. 셋째는 약초꾼 노파가 알려준 몇 가지 약초를 잔뜩 캐서 쌓아놓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색색의 불꽃과 함께 매운 연기가 모락모락 구름 위까지 피어올랐습니다.
‘산지기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가인은 쏜살같이 땅 위로 내려와 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가인이 산지기의 목을 만지고 입술에 숨을 불어넣자, 잘린 상처가 다시 붙으며 산지기의 얼굴에 피와 숨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인이 주문을 외우자, 날개옷을 입고 남의 굴뚝으로 집을 훔쳐보고 있던 임금님은 못생긴 새로 변해 굴뚝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탐욕스러운 까마귀는 굴뚝의 재와 검댕이 묻어 새까맣게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욕심쟁이 임금을 물리치고 산지기를 되살린 가인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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