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바등-재희무현

[재희무현] 점검은 미리미리 (전체연령가ver)

의족 고장난 김재희

“아, 오늘 너무 좋았다. 그쵸?”

“네에.”

선선한 가을 바람에 무현이 코트를 여미며 기분 좋게 웃었다. 집에서 나가기 싫어하는 재희를 어르고 달래 겨우겨우 약속을 잡은 무현은 간만에 꾸미고 나와 제대로 된 데이트 코스를 돌았다. 집에서 단둘이 침대나 뒹굴거리자며 뻗대던 재희 또한 무현이 이끄는 대로 성실하게 따라가 불고기 맛집과 유명 카페, 파인 다이닝에서 저녁까지 함께 들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린 둘은 한산한 주택가를 천천히 걸었다.

“칵테일 바 야경도 좋았어요. 오늘 날씨가 좋아서 달도 보고.”

“네에.”

바에 가는 것까지는 계획에 없었던 일이지만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루프탑 바에서 마신 칵테일도 맛있었다. 도수가 낮은 걸로 한 잔씩만 한 터라 알콜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무현은 그저 기분이 좋아 들뜬 표정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무현의 걸음에 맞춰 따라오던 재희의 눈은 줄곧 무현을 보고 있었기에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밤하늘은 맑았고 달빛은 밝았으며 시원한 바람이 딱 기분 좋게 뺨을 훑고 지나갔다. 늦은 시각 달빛과 가로등으로 환하게 밝혀진 골목길엔 무현과 재희 뿐이었다. 적막한 길 한쪽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어깨와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무현은 재희의 양 손이 제 귀를 감싸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엇.”

털썩.

“….”

“….”

무현은 얼빠진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바닥으로 꺼진 제 연인을 가만히 내려봤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눈을 끔뻑거리며 서 있던 무현은 3초쯤 지난 후에야 뒤늦게 후다닥 쭈그려 앉으며 재희와 눈을 마주쳤다.

“괜찮아요?!”

무현이 걱정스레 재희의 양 뺨을 감싸쥐었다. 갑작스레 현기증이라도 온 걸까? 영양이 부족했나? 아니면 당이 떨어졌나? 나름 신경쓴다고 썼는데 본인이 들어먹어야 말이지. 무현이 그의 증상을 살피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는 중에 재희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발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요.”

“네? 발가락이요?”

“신경 회로가 끊어진 것 같네요.”

“…신경 회로요?”

재희의 말에 무현이 몸을 더 숙였다. 바지 밑에 있는 재희의 발목을 쥐고 흔들어보자 안에서 기계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무현이 걱정으로 눈썹을 휘며 재희의 의족 위를 짚었다.

“아예 안 움직여요? 어떡하지?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잘 안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해서 점검 받지 않았어요?”

“….”

“…김재희?”

“….”

재희가 시선을 피했다. 무현은 꼭 잘못한 걸 아는 강아지마냥 검은자를 도로록 굴리는 재희를 보던 무현은 재희의 등짝을 있는 힘껏 갈겼다.

“점검 받으라고 했지!!!!!”

“아, 아야…!!!”

“진작에 받아서 고쳐놨으면 이 야밤에 갑자기 의족이 고장났겠어요?! 어?! 이 말 안듣는 고집쟁이같으니라고! 무진이보다 더해, 아주!!”

“아야! 아야!”

밤 중에 때아닌 타작 소리는 금방 멈췄다. 무현은 지금 재희 등짝을 때려봐야 자신만 지치고 이 말 안듣는 똥강아지는 별 타격도 없을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현은 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손등으로 슥슥 문지르고 있는 재희를 업었다가 몇 걸음 못 가고 낮은 담벼락에 앉혔다. 집도 멀지 않아서 그냥 업고 갈까 했는데 회로가 끊어져 축 늘어진 의족이 덜렁거리며 무현의 보행을 심하게 방해하는데다, 재희의 키가 무현보다 커서 등에 매달려 있는 재희도 머리가 고정되지 않고 흔들려서 불편해했다. 무현이 고장난 의족을 노려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재희가 허벅지를 들어보였다.

“의족 뗄까요?”

“떼서 뭐 어떡하려고요?”

“음…. 가방에 넣을까요. 좀 튀어나오긴 하겠지만….”

재희가 떼어낸 의족을 메고 나온 나일론 크로스백에 꾸겨 넣었다. 의족보다는 짧은 길이의 가방에 억지로 쑤셔넣은 의족은 발 부분이 튀어나와 모양새가 꽤나 웃겼다. 무현은 의족을 뗀 재희를 가만히 보더니 안아볼까요? 하고 제안했다. 재희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무현은 재희의 날개뼈 아래와 허벅지 아래로 두 손을 넣고는 흡,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중에 뜨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무현의 목을 팔로 두른 재희가 눈을 깜빡거렸다.

“오. 들만 한데요? 의족 빠지니까 꽤 가볍네요.”

“무현 씨야말로 운동 좀 열심히 하셨나본데요.”

“가방이나 매줘요.”

무현이 뿌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숙여주자, 재희가 담벼락에 놓여 있던 크로스백을 무현의 어깨에 걸어주었다. 재희를 안은 자세를 조금 고친 무현이 이내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무현이 집을 향해 걷는 동안 재희는 상대의 어깨에 제 팔을 걸친 채 무현을 가만히 구경했다. 재희가 종종 무현을 안아든 적은 있어도 자신이 안기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기분이 묘했다.

“하여튼, 내일 날 밝으면 바로 수리 맡기도록 하세요. 두랄루민 맞춤제작 의족이 무슨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재희 씨는 좀 더 소중하게 의족을 다룰 필요가-.”

“무현 씨.”

“왜요?”

“저희 아까 하려던 거 해주세요.”

"아까 하려던 거요?“

그게 뭔데. 무현이 조곤조곤 늘어놓던 잔소리를 멈추고 재희를 쳐다보자 재희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어깨에 걸쳤던 손을 들어 무현의 뒷통수를 감싸며 제 쪽으로 확 당겼다.

부딪친 입술이 말랑거렸다. 눈을 크게 떴던 무현은 가늘게 휘며 웃는 재희의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허락해주는 무현을 보며 재희가 입을 벌리자 무현도 그를 따라 혀를 내밀었다. 무현의 뒷통수를 덮었던 손이 슬쩍 내려오며 무현의 뺨을 문지르다가 가볍게 감쌌다. 더운 숨을 섞던 그들은 무현이 휘청하며 담벼락에 한쪽 어깨가 부딪친 후에야 떨어졌다.

“….”

“….”

“안에 들어가서, 더 해요.”

“…좋아요.”

누가 제안했는지, 누가 대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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