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어바등-재희무현

[재희무현] 다큐멘터리, 그 후.

-외전: 다큐멘터리 이후

-재희랑 무현이 사귀고 있습니다

이거 ㄱㅈㅎ 아냐?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며칠 후, 익명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새벽 1시에 올라온 글에는 다큐 인터뷰 장면 중 하나를 크롭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얼굴은 어둡게 가렸지만 두 다리가 전부 의족인, 늘씬하게 잘 빠진 몸매의 남자 사진이.

세상에 양 다리가 의족인 사람이 어디 김재희뿐이겠냐마는 김재희의 팬들은 다 알아봤다. 매일같이 사진을 들여다 보는데 얼굴을 가리고 의족 색 좀 바꿨다고 못 알아볼까.

그러고보니 김재희 모델 한 지 얼마나 됐어?

2년 안 됐어.

그 전에 뭐 했다고 했지?

인터뷰는 거의 안 했는데, 아 여기 한 번 말한적 있다. 아르바이트 전전했다고만 써 있는데.

김재희 중고등학생 시절 사진은 있는데, 20대 초반부터 중반에 뭐 했는지 아는 사람?

사람이 없는 새벽 동안 글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금의 모습만 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랄하게 활짝 웃고 있는 졸업 사진이 올라오자 최근에 유입된 팬들은 경악했지만 이미 놀라고 기겁하고 받아들인지 오래 된 기존의 팬들은 졸업 이후 재희의 흔적을 찾느라 혈안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설마 진짜야…?”

준해커의 실력으로 온갖 SNS와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까지 샅샅이 뒤진 팬 한 명이 퀭해진 얼굴로 의자에 기댔다. 진짜…?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은 아침 8시, 출근하며 커뮤니티에 접속한 사람들의 입에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 자극적인 루머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목을 끌 수 있다면야 아무래도 좋을 족속들이었다. 김재희를 덕질하던 익명 사이트에서 제기된 의문은 밤하늘에 달이 제대로 뜨기도 전에 세계 1위의 동영상 사이트에 게시되었다.

유명 모델 K씨, “사람 죽이는 사이비종교인?” 논란 총정리

ㄴ미친 거 아냐? 사이비여도 돌을 던질 판에 테러까지 한 사이비?

ㄴ유명 모델 좋아하네 얘가 누군데

ㄴㄴ김재희 모르냐? ㅈㄴ 잘생겼는데. 아 근데 테러범이었다니 그건 쫌;

운동을 다녀와 개운한 몸으로 이부자리를 펴던 무현은 화면에 뜨는 김소원의 이름을 보고 전화를 받았다. 밤에 전화드려서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한 그는 이내 무현에게 ‘아셔야 할 것 같다’며 링크를 보내줬다. 링크를 누르자마자 대문짝만하게 뜨는 눈만 검은 막대기로 가린 재희의 얼굴과 그 밑에 박힌 빨간 글씨에 무현이 기겁하며 재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희 씨, 괜찮아요?”

[아, 보셨어요?]

“네…이거 큰일 아니에요? 아니, 재희 씨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정황만 가지고 저렇게 사실인 것 마냥-”

[그치만 무한교에 몸 담았던 건 맞잖아요.]

“…그…렇긴 한데 테러를 한 건 아니잖아요. 이대로 냅둬도 돼요?”

[뭐어….]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곧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큐에 나올 때부터 언젠가 터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속사도 알고 있고. 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좀 시끄럽다가 조용해질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현은 정말 괜찮은게 맞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통화를 끊었다. 그래, 소속사도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무현은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정 일이 안 풀리면 뭐, 내가 먹여 살려도 되는걸.

며칠 지나면 조용해질거라던 재희의 말은 완전히 틀렸다. 연예계 논란 계정에서 올린 영상을 본 사람들은 자극적인 제목에 클릭했다가 말을 잃게 만드는 재희의 미모에 홀렸다. 어그로로 먹고 사는 놈들은 시청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여기저기서 재희의 미모가 빛나는 화보들을 긁어 모아 영상을 올렸다. 화보 활동만 하던 재희의 얼굴이 전국에 알려지는건 순식간이었다.

얼굴이 알려지자 논란은 더 커졌다. ‘듣보잡 모델이 테러리스트 사이비종교인이었대~’와 ‘모두가 얼굴을 아는 모델이 큰 인명피해를 냈던 해저기지 테러범 사이비를 도와 해저기지에 잠입해 있었대!’는 우주와 해저만큼이나 달랐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소속사는 며칠 사이에 김재희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드물어지자 급하게 기자회견을 잡았다. 자연 소강은 이제 기대할 수 없었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길 뿐이었다. 무현은 그 사이 재희와 연락도 하지 못했다. 떳떳치 못한 경로로 재희의 번호를 알아낸 듯한 기자가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는 바람에 재희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소속사 건물에 붙잡혀 있었다. 무현은 초조하게 기자회견 실시간 방송을 켜놓고 재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웅성거리는 기자들의 머리가 빼꼼 보이는 화면에 갑자기 후레쉬가 쏟아졌다. 곧이어 화면 밖에서 소속사 대표로 보이는 여자와 재희, 경호원 두 명이 탁자 앞으로 걸어왔다. 재희와 대표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대표는 한 손을 들어 기자들을 조용히 시키더니 한 명을 지목했다.

[JHB 김동준입니다. 다큐에 나온 붉은 늑대가 김재희 씨 본인 맞습니까?]

[네.]

재희가 깔끔하게 긍정하자 또 한 번 카메라 소리가 회장 안을 가득 메웠다. 화면 안의 재희는 웃고 있지도 않았고 당장 죽어버릴 것처럼 텅 빈 표정도 아니었기에 무현은 일단 안심했다. 대표가 또 다시 손을 든 기자들 중 하나를 지목했다.

[크브크의 유진아입니다. 그럼 해저기지를 테러한 무한교의 신자였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네. 하지만 테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어요.]

[네,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확인했습니다. 관련해서 형사처벌도 받지 않으셨더군요.]

여성 기자는 재희의 말을 폰에 녹음하며 적당히 하고 앉으라는 듯 눈치를 주는 기자들의 압박 속에서 한 마디 더 물었다.

[지금도 무한교의 교리를 믿습니까?]

중요한 질문이었다. 대표가 처음 골랐던 두 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동요 없이 대답하던 재희는 시선을 들어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미소지었다.

[아니요. 이제 아니에요.]

무현은 그가 저를 향해 보낸 웃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뒤로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은 직설적이고 무례했다.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인격 모독적인 질문은 대표가 대신 답하며 회견은 사십 분이 조금 지나서야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선 대표는 무척 피로해보이는 것과 달리 재희는 들어왔을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재희와 진행한 기자 회견은 그날 8시 뉴스에도 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모델의 사이비 신자 논란은 그렇게 끝이 나는 듯 했다.

지금은 탈퇴했다지만 어쨌든 논란의 대상이 된 이상, 소속사는 재희의 은퇴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죄가 없다고 판명된 재희가 위약금을 물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계약할 회사가 없으면 모델 일도 힘들테니까. 하지만 비관적이었던 예상과는 다르게 재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왜요…?”

룸으로 된 식당에서 숟가락을 뜨던 무현이 진심으로 의아하게 물었다. 나물을 씹어 삼킨 재희의 눈이 한 바퀴 굴렀다.

“너무 유명해져서요…?”

과거에 사이비에 몸을 담았던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게 못박은 기자회견이 종료된 후에 인터넷에선 더 격렬하게 토론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죄가 확실한 누군가를 질타할 때보다야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제가 불타기는 훨씬 쉬웠다.

사람이 잘못을 할 수도 있지. 직접 테러에 가담한 것도 아닌데, 반성한다고 하잖아!

사이비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데 대중에게 노출되는 모델이 사이비 신자였다는게 말이 돼!

그럼 한 번 죄지은 놈들은 얼굴도 들지 말고 살란 말이냐! 게다가 재희는 죽은 형이 다시 보고 싶어서 사이비에 빠진 것 뿐이다! 나쁜 건 그런 사람들을 사이비로 끌어들인 ㅅㄲ들이지!

김재희 상황이 안타까운 건 맞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그런 과거가 있어서 되나!

양쪽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시끄러웠다. 조금 소강될 만하면 양측에서 번갈아 나타나 장작을 던져 넣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재희가 화재사고에 휘말려 친형제를 잃었다는 것이 드러나며 재희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더 기세등등해졌다.

무현은 재희가 보여준 화면을 들여다보다 물었다.

“괜찮아요? 형 잃은 거…이렇게 밝혀져도?”

“뭐 어쩔 수 없죠. 사실 소속사에서 슬쩍 푼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재희가 어딘가 먼 곳을 응시했다가 곧 무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참을 입을 달싹이던 재희가 무현의 눈을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떨궜다.

“…이제 진짜, 형이 죽은 게 사실이 된 것 같아요.”

“….”

“지금까지는 그래도, 뭔가, 어떻게 잘 하면 다시 형이 있는 세상에 갈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마주보고 앉아 있던 무현의 눈이 커지더니 급하게 식탁을 돌아 재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재희 대신 무현이 그의 옷소매로 재희의 뺨을 문질렀다.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재희가 축축히 젖어든 소매로 제 양뺨을 붙잡고 걱정스레 쳐다보는 무현을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형이 보고 싶어요.”

“그래요.”

“…납골당에 같이 가주실래요.”

“네, 언제든.”

속삭이듯 말한 재희에게 마찬가지로 속삭이며 대답한 무현은 제 품에 무너지듯 안기는 재희를 꽉 끌어 안았다.

떠들썩했던 시간이 지나고, 몇 주가 흐른 뒤에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계정에서 비하인드 영상을 몇 개 풀었다. 재방송을 하기 전에 화제를 띄우기 위해 비교적 가벼운 내용의 영상을 올렸는데 그 중 하나에 재희의 인터뷰가 있었다.

재희의 팬들은 긴장하며 영상을 클릭했다. 혹시나 또 안티들에게 빌미를 줄까 염려했던 내용은 기도식에 참가하지 말라고 말렸다던 친구에 대한 자랑뿐이었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구했는지,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 친구의 얼굴이 궁금해서 15,000개의 계단을 올랐다는 이야기에 대해 웃으며 늘어놓던 붉은 늑대는 카메라에 제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표면이 매끄럽고 뽀얀 식물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웃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웃고 있다고 다들 확신했다) 재희의 영상은 재희의 팬카페에 먼저 퍼날라졌다가 곧 여기저기로 공유되었다.

재희의 ‘친구’를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떤 잡지의 인터뷰어는 기회를 벼르고 있다가 재희를 만나자 몇 가지 질문 뒤에 화제의 ‘친구’에 대해 물었다.

성실하지만 반쯤 죽은 눈으로 대답하던 재희의 눈에 반짝 하고 돌았던 빛을, 인터뷰어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어를 순간 넋놓게 만든 화려한 외모의 모델은 상대방에게 쉿- 하고 검지를 입술에 대며 웃어 보였다.

왜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있었던 거야. 인터뷰어는 직원을 속으로 원망했다. 친구에 대한 질문이 잘려서 삽입된 페이지를 보며 인터뷰어는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재희와 그 친구는 알 필요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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