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무현] 서른 살이 넘어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가벼운 글입니당
-https://glph.to/ynmrdy 전편은 읽지 않아도 되지만 이어지는 세계관임.
-외전:백상아리어쩌구 이후. 재희랑 무현이 사귀고 있습니다.
-재희가 무현이랑 만나면서 쪼끔 밝아졌습니다. 캐붕과 날조 주의
-ㅍㅅㅌㅇ에서 옮겨 왔습니다.
"-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
재희의 시선이 맞은편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남자의 손목에서 떠나지 않았다. 벌레에 물렸다기엔 부은 것 같지는 않았고, 어디 부딪쳤다기엔 크기가 국소적이었다. 게다가 여러 개. 어떻게든 다른 이유를 찾아내려 머리를 굴려봤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그거 아냐?
"재희 씨?"
"...네?"
"제 말 듣고 있어요?"
"...어...2층에 신 팀장님 오신다고요?"
"그건 아까 끝난 얘기고요."
무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하지만 재희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기엔, 무현의 손목의 저 흔적이 너무나 거슬렸다.
"그거 뭐에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재희가 손가락으로 무현의 손목을 가리켰다.
"응? 뭐가요?"
"벌겋게 된 거요."
덧붙이자면 재희는 괜히 오해하고 싶지 않아서 물어본 것 뿐이었다. 손목의 흔적을 발견한 무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타오르는 꼴을 보려는 의도는 절대 없었다.
루비처럼 달아오른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읽어버린 재희는, 그대로 일어나 달려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에서 울고 있었고 그대로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시계를 보려고 폰을 켰다가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막 충전기를 꽂은 순간이었다.
[♩♪~♫~♪♩♩~♫]
갑자기 들려오는 짧게 편곡된 클래식 음악에 재희가 어리둥절해하며 방을 나왔다가 초인종 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대문이 아니라 현관에도 초인종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입주 몇 년차에 처음 알았다. 현관 카메라가 연결된 패드에 가까이 다가가자 무현의 얼굴이 보였다.
의외였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대문을 뚫고 들어와 현관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 뿐이었으니까. 의외인 점은, 비밀번호를 알면서도 무작정 열고 들어오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세요, 이렇게 아침부터 연락도 없이."
[폰이 꺼져 있어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요.]
패드에서 나는 전자음에 현관문 바깥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재희는 방전된 폰을 떠올렸다가 뒷머리를 긁었다.
"...왜 찾아왔는데요?"
[재희 씨가 어제 갑자기 그렇게 가버렸잖아요! 걱정되어서 왔어요.]
으음...
걱정돼서 이렇게 부리나케 찾아왔다니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움찔거리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잡아 누른 재희가 일단 문을 열어주려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거 오해에요.]
재희의 눈이 휙, 패드로 돌아갔다. 실제 무현은 문 밖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카메라에 비친 무현의 모습이 패드에 있어서였을까. 재희의 기분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뭐가 오해인데요?"
[그으, 제 손목 보고 화난거죠?]
재희가 팔짱을 꼈다. 무현에겐 재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겠지만, 재희는 이 정도 심술은 부려도 되지 않나 싶었다. 화면 속의 무현은 난처한 얼굴로 뒷목을 슥슥 문지르다가 어깨가 들릴 정도로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화면이 꺼졌다.
...
그 순간 무현이 뭔가 말을 하긴 했나보다. 현관문 밖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음을 확실히 했다더니, 이런 식으로 성능을 확인하게 될 줄이야. 인내심이 닳아버린 재희가 쿵쿵거리며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갑자기 열자 깜짝 놀란 무현이 제자리에서 가볍게 펄쩍 뛰었다. 새빨갛게 익은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무현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으로 재희를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아...암튼 그런 거라고요. 오해하지 마요."
"미안한데 못 들었어요."
"...예?"
"못 들었어요. 다시 말해줘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재희의 목소리에 짜증이 조금 서렸다. 무현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조금 충격먹은 표정을 지었다. 재희를 올려보던 무현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일 때 쯤에야, 재희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울-"
"제 입으로 해 봤다구요!!! 됐습니까!!?"
그리고 무현이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정원을 가로질러 대문 밖으로 달아나 버린 무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재희의 입에서 ...허? 하는 소리가 나지막히 흘러나왔다.
둘이 다시 마주 앉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정신 차리고 뒤쫓아간 무현은 이미 차를 타고 사라진 후였기에 재희는 폰이 어느정도 충전되자마자 무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택시를 타고 무작정 향한 치과는 휴무일이었기에 재희는 머리카락을 뽑을 기세로 머리를 감싸쥐다가 2층으로 내려갔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과거 팀원인 백애영이 하릴없이 기구 위에서 운동 중이었다가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재희를 보고 다가왔다. 표정 변화 없이 인사를 건네는 애영에게 재희가 혹시 무현 씨를 봤냐고 묻자 서지혁이 데리고 근처 카페로 갔다고 알려 줬다. 재희는 대충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바로 그 카페로 향했다.
애영의 말대로 카페에서 지혁과 마주 보고 앉아 테이블에 엎드려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던 무현은 재희가 다가오자 헉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지혁은 재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란 것을 바로 눈치챘는지 자리를 비켜줬다. 재희는 지혁이 넘겨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무현을 쳐다봤다.
"......"
"......"
"그러니까, 당신이 스스로 손목에 한 거라고요."
"그거 확인하러 온 거에요?"
"왜요?"
재희의 질문에 무현의 입이 꾹 다물렸다.
"왜요?"
"그, 키, ㅅ, 맠...어떻게 해야 잘 남기나 궁금해서요!!"
무현이 폭발했다. 실제로 폭발한 건 절대 아니고, 아무튼 재희가 느끼기엔 그랬단 뜻이다. 창피한 사실을 제 입으로 내뱉고야 만 무현이 한계를 넘은 수치심에 테이블 밑으로 꺼졌다. 재희는 무릎 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현의 존재감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작게 큭큭거리며 시작한 웃음이 하하, 하는 소리로 커지자 테이블 밑에서 무현이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재희를 째려봤다.
그날 밤 기어코 무현의 손목을 가져다가 제 순흔으로 뒤덮는 재희를 올려 보며 무현은 간지러움에 눈을 감았다.
제목 고쳤다 전보다 가벼워서 맘에 드는군요
tmi 1: 폰이 방전된 이유는 무현이 계속 전화걸어서
2: 무현은 재희가 들었으면서 놀리려고 다시 물어본 줄 알고 도망감
3: 무현이 도망와서 저도 모르게 문 닫은 치과에 갔다가 터덜터덜 내려가는걸 지혁이 발견하고 인사하러 갔다가 심상치 않은 기세에 카페에 데려갔음. 별 얘기를 한 건 아니고 무현은 그저 절망하고있었고 지혁은 아무 소리나 떠드는중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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